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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귀환 vs 신작의 도전.'
깊어가는 가을, 연극 한 편과 함께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두 시간 안팎의 공연에서 잊고 지내던 삶의 한 단면을 포착해낼 수 있다는 것이 연극의 본질적인 매력이다. 대사 한 마디, 장면 하나에서 '아…' 하는 조용한 탄성과 함게 자신과의 동질성을 확인할 수 있다. 올 가을 연극계는 검증된 고전들과 새롭게 소개되는 해외 문제작들로 풍성하다. 각각 입맛을 당기는 작품을 골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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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산울림과 운명을 같이 해온 사무엘 베케트 원작, 임영웅 연출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14일 홍대앞 산울림 소극장에서 다시 오픈했다. 지난 1969년 국내 초연됐으니 올해가 42년째이다. 나무 한 그루 덜렁 있는 무대, 무작정 고도(Godot)가 오기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라는 두 인물. 시간과 공간은 불명확하고,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누구인지, 또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의 정체는 무엇인지 모든 것이 애매하다. '말이 안 된다'는 뜻의 부조리극의 대표작이니 굳이 스토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단지 자신이 기다리는 고도는 누구일까 되새겨보는 것이 낫다. 1994년부터 '블라디미르'를 맡아온 한명구를 비롯해 박상종(에스트라공), 박윤석(럭키), 이호성(포조)이 황금의 앙상블을 보여주고 있다. 11월 6일까지.
"한치 앞도 못 보는 인생을 사는 자, 그대 이름은 오이디푸스"라는 관점에서 오이디푸스라는 특정인은 보편적인 인간으로 확대된다. 누구나 한치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포클레스와 한태숙의 만남에서 빚어는 강력한 에너지, 압도적인 대사의 힘 등은 고전의 깊이를 고스란히 전해준다. 스펙터클하면서 다이나믹한 무대, 이상직 정동환 박정자 등 연기파 배우들이 빚어내는 혼신의 연기가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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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토니상 6개 부문을 수상한 화제작 '레드'가 14일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에서 개막했다.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와 그의 조수 켄, 단 두 명이 등장하는 2인극이다. 고급 레스토랑에 거액을 받고 벽화를 그려줬던 실화를 바탕으로 로스코와 켄이 나누는 대화가 드라마를 이끈다. 스승이 시키는 일을 놀라운 습득력으로 해내는 켄, 그는 로스코의 예술이론과 상업적인 프로젝트를 수락한 것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스승을 자극한다. 그는 스승이 잃어가고 있던 '레드' 즉 열정과 믿음을 다시 찾게 해준다. 영화와 TV, 무대를 오가며 맹활약 중인 중후한 배우 강신일과 젊은 뮤지컬스타 강필석이 호흡을 맞춘다. 쇠퇴하는 기성세대와 새롭게 자라나는 신세대의 소멸과 생성 속에서 세대간의 화합과 이해를 들려준다. 신시컴퍼니 제작.
'야끼니꾸 드래곤'으로 유명한 재일교포 극작가 정의신의 신작 '쥐의 눈물'도 14일 구로아트벨리 예술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전쟁터 한가운데에서 버스를 밀고 다니며 병사들을 상대로 연극을 하는 쥐 유랑극단 '천축일좌'의 이야기다. 쥐의 시각을 통해 세상을 우화적으로 묘사한다. 유랑극단이 공연하는 '서유기'와 실제 전쟁의 현장을 짜임새있게 연결하며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내용을 정의신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과 절제된 유머로 풀어낸다.
최용진 염혜란이 출연하고 타악 명인 김규형의 라이브 연주가 독특한 앙상블을 만들어낸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고, 울고 있어도 웃음이 나는 정의신 특유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그의 팬이라면 놓칠 수 없다.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