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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바뀐다'라는 카피를 내세운 CF가 눈길을 끌고 있다. 국내 뮤지컬시장에서도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실감할 만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전통적인 갑(甲)이었던 공연장과 언제나 을(乙)이었던 제작사의 관계가 급격히 뒤집어지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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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히 최근까지도 '프로듀서가 하는 일의 절반이 대관'이라는 말이 불문율로 여겨질 만큼 제작사들은 극장을 빌리는데 목숨을 걸었다.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 국립극장의 대관심사가 열릴 무렵에는 골프 접대설 등 갖가지 루머가 나돌기도 했다. 오페라와 전통 공연 등 다른 장르와 대관을 나눠야하는 공공극장이라 뮤지컬은 1년에 2, 3편 그것도 보름에서 한달 가량 밖에 얻지 못한다. 따라서 대관을 따내느냐, 못 따내느냐가 작품의 성패와 직결됐다. 대관이 돼야 투자도 받고 캐스팅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봄 세종문화회관에서 대관비리 사건이 터진 것도 구조적으로 제작자들이 공연장에 끌려다닐 수 밖에 환경에서 파생된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개관을 준비하고 있는 전용극장들은 이미 1, 2년 전부터 양질의 컨텐츠(작품)를 확보하기 위해 불철주야 제작사 문을 노크했다. 적어도 향후 2,3년간의 라인업이 필요했고, 검증된 컨텐츠 확보는 극장의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개관을 준비하는 전용극장의 한 관계자는 "작품을 달라고 해도 콧방귀를 뀌는 제작자들이 많았다"며 "공연장은 이제 솔직히 을도 아니고 병"이라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부익부 빈익빈의 심화?
이런 갑을 관계의 변화의 1차 수혜자는 대형 제작사들이다. 신시컴퍼니나 설앤컴퍼니, 오디뮤지컬컴퍼니 등 검증된 컨텐츠를 보유하고 있는 제작사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 부익부빈익빈이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신시컴퍼니는 디큐브씨어터에서 올해 개관작으로 '맘마미아'를, 내년엔 '시카고'를 올린다.
한 관계자는 "장기공연을 할 수있는 컨텐츠를 보유하고 있는 제작사들이 유리할 수 밖에 없다"며 "내가 전용극장 담당자라도 당장 연착륙이 시급하기 때문에 검증된 작품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장기공연이 가능한 뮤지컬이 대개 해외작품이라 창작뮤지컬이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신시컴퍼니 박명성대표는 "일시적으로 창작뮤지컬의 위축이 있을 수 있다고 보지만 솔직히 외국에서 가져올 뮤지컬도 이제 많지 않고, 중장기적으로 더많은 수익을 내기위해 창작 컨텐츠를 개발할 수 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오디뮤지컬컴퍼니 신춘수 대표도 "전용극장을 통해 뮤지컬시장의 파이 자체가 커지고 훈련된 창작인력이 늘어나면 결국 질좋은 우리 컨텐츠를 개발하는 길로 가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뮤지컬도 이제 무한경쟁
'권력의 핵심'에 진입하고 있지만 제작사들도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다. 생존 경쟁이 훨씬 더 치열해지기 때문이다.
정인섭 블루스퀘어 공연기획팀장은 "새로 문을 여는 전용극장 3곳만 따져봐도 하루 4000석이 새로 생기는 것"이라며 "극장들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결국 질높은 컨텐츠만이 살아남을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상업적인 전용극장이 뮤지컬 시장의 중추를 형성하면서 관객끌기 경쟁을 하면 결국 경쟁력없는 뮤지컬과 제작사는 도태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6개월 안팎의 장기공연에서 수익을 남기기 위해선 컨텐츠 자체가 매력이 있어야 한다. 새로운 컨텐츠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재탕, 삼탕을 반복하면서 '밑천'을 드러내는 제작사는 오래 버틸 수 없는 구조가 되어가고 있다. 김형중 기자 hkim@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