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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풍산개' 전재홍 감독 "무산소로 K2 등정하는 심정이었다"

임정식 기자

기사입력 2011-06-19 15:09


색다른 시선으로 분단문제를 다룬 영화 '풍산개'로 주목받고 있는 전재홍 감독. <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무산소로 K2를 등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23일 개봉하는 영화 '풍산개'의 전재홍 감독(34)은 영화 제작 과정의 험난함을 히말라야 K2 등정에 비유했다.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먼저 돈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제작비가 2억원에 불과했다. 25회 촬영으로 완성해야 했다. 마지막 촬영을 마쳤을 때, 통장 잔고는 0원이었다. 배우, 스태프의 고생도 이만저만 아니었다. 영하 18도 추위 속에서 알몸에 진흙을 바르고 연기했다. 전 감독도 수트만 입고 물에 들어가 카메라 옆에서 촬영했다.

그래서 배우들의 경험이 중요했다. 3회 이상 주연을 해본 배우가 필요했다. 꿈만 갖고 K2에 오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전 감독은 "윤계상, 김규리는 노개런티로 출연하며 이런 조건을 충족시켜 줬다"고 고마워했다.

'풍산개'은 전 감독의 두번째 장편영화다. 2007년 선보인 '아름답다'는 3개관에서 개봉했다가 조용히 묻혔다. 이번에는 꽤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무슨 변화가 있었던 걸까.

아무래도 스승인 김기덕 감독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김 감독은 이 영화의 제작, 시나리오를 맡았다. 전 감독은 "나 때문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김 감독에 대해 "아버지 같은 분"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영화 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풍산개' 제작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도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다. 김 감독은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에서 발표한 '아리랑'을 통해 '풍산개'에서 중도하차하고 메이저 영화사와 계약한 장훈 감독을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풍산개'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호의적이다. 스승의 색깔을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나리오 그대로 촬영하지 않았다. 영웅적이고 웅장한 느낌이 나는 결말을 비극적으로 바꾼 것이 대표적이다.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 감독은 이 영화를 "젊은 감독의 시선으로 보는 분단 이야기"로 봐주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영웅이나 멋있는 군인의 모습은 없다. 무겁지도 않다. "영화는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 관객과 소통해야 한다"는 지론 때문이다. 그래서 유머와 멜로를 가미했고, 이 점이 개성이자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 감독은 물론 6·25 전쟁의 비극을 직접 체험하지 못했다. 10대 후반에 미국 유학을 떠나 해외에서 살았다. 하지만 몸으로 비극을 느낀 적은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유학할 때였다. 같은 성악과에 북한 출신 학생도 있었다. 하지만 벽을 느꼈다. 4년 동안 한 번도 커피를 마시거나 말을 걸지 못했다. "이게 분단이구나" 하는 걸 실감했다.

'풍산개'에서는 윤계상의 연기 변신도 화제다. 윤계상은 서울과 평양을 3시간만에 오가는 풍산으로 출연, 대사 한 마디 없이 액션과 눈빛만으로 영화를 이끌어 간다. 캐스팅 초기에는 반대도 있었다. "이미지가 너무 부드럽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전 감독은 '다른 배우도 좀 보라'는 주위의 권유를 뿌리치고 윤계상만을 고집했다. 결과는 대만족이다.

'풍산개'의 개봉관은 200개 쯤 된다. 김기덕 필름의 영화로는 많은 편이다. 그만큼 기대가 많다는 뜻이다. 김 감독은 "허파에 바람 들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장훈 감독에 대한 감정도 궁금했다. 얄궂은 인연이 있다. 같은 연출부에서 오랫동안 생활했다. 그런데 장 감독이 '풍산개'를 진행하다가 중단했고, 전 감독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전 감독은 당시 충격을 "와르르 붕괴되는 빌딩에 들어있는 느낌이었다. 숨쉴 수도 없었다"고 표현했다. 앙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전 감독은 시사회에서 "한국영화계에 돈만으로 만드는 영화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뼈있는 말을 했다.

그러나 화해의 몸짓도 했다. 장 감독을 시사회에 초대했다. 하지만 '풍산개' 시사회가 '고지전'의 제작발표회 전날이어서 오지 못했다. 전 감독은 "장훈 감독이라는 호칭은 입에 잘 안 붙는다. 훈이 형이 편하다"면서 "깨진 유리컵을 다시 맞추고 싶다"고 강조했다. "7월 말 개봉하는 '고지전'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덕담도 잊지 않았다.
임정식 기자 dad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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