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 초대석] 설경구
기사입력 2000-11-9 11:30
▲ '단적비연수' 개봉을 기다리고 있구요. 싸이더스의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를 촬영하고 있어요. '나도…'는 6년차 은행원으로 등장， 잘 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보습학원 강사(전도연)와 사랑을 엮어가는 역할이지요. 가장 평범한 캐릭터입니다.
-올해엔 상복도 많은데?
▲민망해요.(웃음) '박하사탕'으로 올해 7개나 받았어요. 주위에서 '독식하는 거 아니냐'고들 해요. 그래서 이창동 감독님께 전화를 해서 '사람들이 해도 너무한다'고 말하고 있어 이젠 '받지 말자'고 우스개 소리까지 했어요.(웃음) 그동안 집에 트로피라는 게 없었는데…
-'박하사탕'으로 스타대열에 올랐는데?
▲묘한 인연의 작품이에요. 이창동 감독께 인사를 갔는데 저를 '박하사탕'에 안쓸거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저를 쓰면 투자자들이 안 붙을거라면서요. 전 사실 단순하게 인사만 갔었는데… 이후 공개 오디션이 있었는데 원서도 안냈어요. 연기하기도 어려운 작품이었구요. 그런데 어느날 밤 12시에 이감독님이 저희 집(경기도 화정)앞으로 와 만나자고 하더군요， 대뜸 '하고 싶냐?'고 묻더군요. 고맙다는 생각보다 겁부터 확 나더라구요. 10일 후에 답을 드리겠다고 했지요. 고민하다가， '에이'하면서 출연하게 됐어요.
-연극동네에서 잔뼈가 굵었는데?
▲아웃사이더였어요. 공연만하고， 끝나면 친한 몇몇 동료들하고만 어울렸어요.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서요. 극단도 한양레퍼토리， 극단 전망， 극단 학전까지 세군데에서만 일했어요. 전망은 '이런 노래' 한편이구， 학전에서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오랫동안 했어요. 한양이나 학전 모두 제도권 연극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연극동네 사람들도 잘 몰랐어요. 오히려 영화하면서 더 많이 알게 됐어요.
-'지하철 1호선'은 장기공연이었다. 어려운 점은?
▲힘들었지요. 작품을 너무 알아버려 상대배역이 대사도 치기 전에 리액션부터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상대방의 대사가 나오면 얼굴을 돌리거나 해야 하는데 그전에 먼저 행동을 해버리는 거에요. 장기공연은 힘들기도 하지만 멍청해지고 게을러지는 것 같아요. 더 많은 긴장을 필요로 하는 공연이지요.
-영화데뷔에는 특별한 동기가 있었나?
▲배우는 어떤 매체의 연기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자기 개성에 맞는 매체가 있기는 하지요. 제 영화 데뷔작은 '꽃잎'이었구 두번째 작품이 '처녀들의 저녁식사'였어요. 당시 우노필름(현 싸이더스)의 차승재 대표께서 많이 도와 주셨어요. '박하사탕'의 이창동감독님도 잊을 수 없구요.
-연기생활을 하면서 신념으로 생각하는 것은?
▲신념까지는…. 거짓말하지 말고 살자에요. 화면안에서도 거짓말을 하지 말자， 마음을 속이지 말고 연기를 하자고 다짐하곤 해요. 무대에서 화면안에서 거짓말을 안하는 연기를 하고 싶은게 제 작은 신념입니다.
-인생의 꿈과 배우로서의 꿈은?
▲전 자연인 그 자체가 연기자라고 생각해요. 연기를 빼곤 말할수 있는 게 없어요. 좋은 역할보다는 오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많은 배우가 가다가 죽어버리는데 저도 그럴 것 같아요.(웃음) 진정， 완성된 배우가 되고 싶어요. 역창조를 못한다는 것， 잘 안된다는 것은 알지만요. 전 안성기， 로버트 드니로， 매릴 스트립 같은 배우를 좋아해요.
-배우란 직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의미도 있고 가치도 있는 인생을 대신해서 보여주는 매력적인 일이지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술마시면서 풀어요. 연극할 때처럼 마시지는 못하지만요. 요즘엔 그렇게 많이 못하고 가끔 새벽까지 폭음을 하곤 하지요.
-'단적비연수'는 어떤 영화인가?
▲좋은 영화예요.(웃음) 늘 그렇지만 촬영 후엔 아쉬움도 남구요. 한 여인의 야욕과 증오로 시작된 네 남녀의 엇갈린 사랑과 운명을 그린 판타지 로망이지요. 운명에 순응하는 인물과 반항하는 인물을 대비， 사랑과 삶의 절대성과 영원성을 묻고 있어요.
-'적'이란 역인데 어떤 배역인가?
▲사랑을 위해서 부족의 운명을 거부한 인물이지요. 또 사랑을 위해서 우정도 단칼에 베어버리는 캐릭터입니다. 적극적이지만 자기의지대로만 살려고 하는 인물입니다. 근데 지금도 낯선 게 있어요. 왜냐면 제가 이미숙 최진실 김석훈 김윤진씨 같은 배우들과 함께 작업을 했다는 게 믿겨지지 않아요. 제가 이들이랑 같이 연기를? 그런 생각이 들어요. (웃음) 아직도 희한하게만 느껴져요.
-촬영 중 고생이 심했는데?
▲힘들었어요. 무엇보다도 촬영 기간이 9개월이나 돼서 4계절을 촬영했어요. 특히 여름에 두툼한 의상을 입고 겨울신을 촬영할 때는 리듬이 안맞아 고생했지요. 저야 그렇다고 해도 감독님이나 스태프들은 말못할 고생을 했지요. 관객들에게 좋은 장면， 좋은 영화로 남기 위한 노력이었지요. 감독은 몸무게가 10㎏이나 빠졌어요.
-결혼은?
▲정보소극장에서 연극을 하고 있을때 였어요. 공연이 끝난 후 맥주집에서 술마시다가 걸어가는 한 여자를 보았어요. 전혀 모르는 여자였지요. 첫눈에 마음이 들었어요. 같이 연극하는 선배동생이었는데 소개를 시켜달라고 했지요. 방법은 '무대뽀'였지요， 끈질기게 설득하고 결국 마음을 사로잡았죠. (그 여자가 지금의 아내 안정옥이고 딸 승희(4살)를 두고 있다)
-연극에 출연할 계획은?
▲학전의 뮤지컬 '지하철 1호선' 독일 공연에 출연할 계획입니다. 아직 확정은 안됐지만 제가 오랫동안 한 작품이고 김민기 대표가 독일공연을 함께 하자고 해 생각중입니다. 조만간 마음의 결정을 내릴 겁니다. 그 이후는 아직 계획된 것은 없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 '단적 비연수'가 관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12월에 개봉하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역시 마찬가지구요. 요즘 조금 지친 것 같아요. 쉬고 싶은 생각도 있구요. 다음 영화는 아직 결정된 게 없어요. 전 어떤 영화든 촬영 중일때 시나리오를 못읽어요. 촬영에만 집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