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새벽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태민영(46)은 '죽어서도 끝내 눈을 감지 않았다'. 죽기 직전 그의 가망없는 삶， 그리고 마지막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던 아내는 '마지막으로라도 편한 모습으로 잠들라'며 의사가 산소호흡기를 떼는 걸 허락했다. 그러나 아내가 자꾸 눈을 쓸어내려도 태민영은 눈을 감지 않았다. 아내는 병원 말에 따라 그의 부릎뜬 눈에 테이프를 붙여야만 했다. 7일 오후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그의 배우 선후배 동료들은 그의 시신을 철판 하나 사이에 두고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술을 먹었다. "스타도 못된 놈이…'. "야， 우리는 나이순으로 가자". 걸쭉한 '연기패'들의 농반진반이었지만， 다들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빈소에서 박인환은 "얼마전 '번지없는 주막' 같이 하고 목돈받아 아들 유학비 보내준다고 좋아하더니， 그만 가고 말았다"며 물기젖은 눈으로 허공을 원망했다. 태민영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백수련은 '할 말이 너무 많아 아무 말 못하고' 박인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임혁주는 거의 날밤을 샜고， 평소 입담좋았던 최주봉 조형기는 이날따라 말이 별로 없었다. 모습은 달랐지만， 이들의 생각은 똑같았다. 누군 잘 나갔고 누군 못 나갔어도， 연극으로 데뷔해 배고파 TV에 나갔고 나이들어 배역없어 술집하다 병걸려 죽은， 지극히 정상적인(?) 길을 걸은 태민영의 배우인생이 자신의 아픔이었던 것. 빈소에는 그의 아내 혼자만이 조문객을 맞았다. 너무 힘들면 동료 여배우가 교대해줬다. 아들 셋이 있는데 한 아이는 어리고 두 아이는 미국에서 아직 못왔다고 한다. 두 아들의 유학비 때문에 태민영은 고생했다. 98년 '용의 눈물' 이후 배역도 뜸했고， 그래서 차린 것이 '술집'이었다. 10년전 B형간염으로 고생했는데 친구들은 '하필 술집이냐'고 욕하면서도 태민영의 이태원 술집에 가 술을 팔아줬다. 자존심 세고 손벌리기 싫어하는 태민영은 그 꼬장꼬장한 성격을 꾹 누르고 새벽까지 술손님을 받았다. 그리곤 쓰러졌다. 지인들은 이제 그를 무대에 돌려주고 싶다. 그의 데뷔 연극 제목처럼 '천사여， 이제 고향을 돌아보라'라며. 〈이준형 기자 roc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