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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스포츠조선 류동혁 기자] 표면적 실패라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절반의 성공'이다.
아산 이순신체육관에서 열린 2024 우리은행 박신자컵. 한국 여자프로농구 6개팀은 모두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후지쯔는 지난 7일 준결승에서 BNK에 82대70으로 승리를 거뒀다. 토요다는 하나은행을 75대53으로 완승을 거뒀다.
한-일 양국 여자농구의 수준 차가 극명히 드러난 결과물이었다.
박신자컵은 지난해 대대적 개편을 했다. 그동안 박신자컵은 잠재력이 풍부한 각 팀 2진급 선수들의 경연장이었다. 하지만, WKBL(한국여자프로농구연맹)은 박신자컵을 '국제대회'로 격상시켰다.
일본여자프로농구 강호들을 초청했고, 호주, 필리핀, 대만 등의 대표팀과 최강팀을 섭외했다. 풀 전력으로 국내 6개 구단도 임하게 했다. 외부 경쟁을 통한 '오픈 정책'을 펼쳤다.
매 시즌 침체되는 한국 여자농구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대회규모를 키운 빅 이벤트로 여자농구 팬의 눈길을 사로잡겠다는 복합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큰 결심이었고, 빅 피처가 있었다.
결과물은 아쉽다. 지난해 대회에서 우리은행은 결승에 진출했다. 하지만, 일본의 강호 토요다에게 막혔다. 새롭게 리뉴얼된 박신자컵의 '초대' 챔피언은 토요다였다.
올 시즌 결승에도 진출하지 못했다. 2년 연속 안방에서 열리는 대회가 일본 여자농구의 무대가 됐다.
하지만, WKBL가 의도했던 긍정적 부분은 여전히 유효하다. 수준높은 경기력으로 국내 여자농구팬의 눈높이는 충족됐다. 게다가 일본여자농구의 발전상을 목격하면서, 6개 구단 선수들의 자극제도 심었다.
6개 구단 대부분 감독들은 "확실히 일본 정상급 선수들의 기본기와 수준이 다르다. 선수들에게 많은 자극이 되고 있다"고 했다.
일본과 한국의 신체적 조건은 비슷하다. 단, '코어'의 힘,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기술 수준, 거기에 따른 실전 응용력, 창의적 플레이는 확실히 레벨이 높다.
한국 여자농구가 발전해야 할 길을 생생히 알려주는 '박신자컵'이었다.
9월 초, 여자농구 6개 구단은 강력한 연습 상대가 부족한 상태. 후지쯔와 토요다, 그리고 히타치, 그리고 대만 최강 케세이 라이프와 '풀전력'으로 경기를 치르면서 자연스럽게 비 시즌 강력한 훈련과 조직력을 다지는 좋은 기회가 됐다. 6개 구단 감독 모두 이구동성으로 "박신자컵에서 우리 팀의 장, 단점을 알 수 있었다. 좋은 기회가 됐다"고 말한 이유다.
표면적으로 국내 6개 구단은 2년 연속 우승컵을 가져오지 못했다. 올해 결승에도 진출하지 못했다. 때문에 실패라 섣부르게 단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WKBL이 결단을 내린 업그레이드된 박신자컵 대회 개최 의의와 장기적 목표에 부합하는 결과물은 계속 나오고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매우 긍정적 효과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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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구단은 풀 전력을 가동하지 않았다. 대회 직전 이런 기류가 포착됐다. 멕시코 멕시코시티에서 여자월드컵 사전예선을 치른 대표팀 선수 일부에 출전시간을 제한한다는 내부 방침을 내세웠고, 결국 부상방지와 전력노출 방지라는 이유로 '눈치'를 보면서 1.5군을 기용했다. 구체적 부상이 아닌 석연치 않은 이유로 팀의 에이스를 엔트리에서 끝내 제외시켰고, 대표팀, 고참급 선수들의 출전시간을 엄격하게 제한했다.
준결승에 진출한 하나은행은 2쿼터 벤치 멤버를 대거 출전시키면서 전반 21점 차로 뒤졌다. 사실상 승패는 여기에서 결정됐다. BNK는 신예선수들의 힘이 있었지만, FA로 데려온 박혜진이 결장했다. 올 시즌 최고 수준의 스쿼드를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 삼성생명도 예선에서 풀 전력을 가동하지 못했다.
클래스가 떨어지는 6개 구단이 총력전을 하지 않으면서 후지쯔, 도요타 등과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총력전을 펼치면서 조직력과 핵심 코어의 힘을 살펴볼 수 있었던 '황금 찬스'를 허무하게 날려 버렸다.
여자프로농구는 정규리그 단 30게임을 치른다. 매우 부족한 숫자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는 올해 3월1일, 플레이오프는 3월31일에 끝났다. 무려 7개월이 넘는 비 시즌 기간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 베테랑 선수들은 부상으로 정상 컨디션이 아니고, 풀 전력을 가동할 형편이 되지 않는다는 게 일부 구단의 입장이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는 대부분 은행권인 모기업의 특색과 '양날의 검'과 같은 내부 원칙들이 숨어있다. 인기가 높지 않은 여자프로농구단이 주요 은행그룹의 라이벌장이 됐다. 자금의 여유가 있고, 팀 전력을 위한 투자가 적극적으로 이뤄진다. 긍정적 부분이다. 하지만, 팀 운영에는 두 가지 모습이 있다. 프로에서 성적은 가장 중요한 가치다. 단, 은행권 모기업의 가장 핵심 목표는 '선수단이 구설에 오르거나, 사고를 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당연히 맞는 원칙이지만, 이 원칙에 끌려다닌다.
성적보다 더욱 중요한 가치는 '사고가 나오지 않는 원만한 팀 운영'이다. 현실적으로 '농구를 잘 가르치는 지도자'보다는 '훈련량을 줄여도 선수단과 원만하게 지내는 감독'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이같은 가치 충돌은 현실에서 여자프로농구의 '하향평준화' 현상을 부추긴다.
저변이 넓지 않고, 고교에서 프로로 직행하는 여자농구 시스템이다. 일본과 달리 아마추어 농구에서 기본기가 제대로 입혀지지 않은 신예들은 프로에서도 기량 향상을 위한 많은 훈련량을 소화하지 않는다.
선수의 이탈은 곧 '사고' 혹은 흠집이라는 은행권 모그룹의 인식 때문에 훈련량에 대해 극적 타협을 이루기 때문이다.
정규리그 40경기, 그리고 35경기, 그리고 30경기로 점차적으로 줄인 이유도 '선수들의 부상방지'라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조정됐다. 전 세계에서 정규리그 경기수를 줄이는 리그는 한국여자프로농구밖에 없다.
결국 신예들의 극적인 기량 발전이 이뤄지지 않는다. 기본기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에서 비 시즌 훈련량도 부족하기 때문에 일본과 매 시즌 기량 차이가 벌어진다.(물론 일본은 팀 훈련을 많이 하진 않는다. 하지만, 아마추어에서 특출한 선수들이 프로를 택하기 때문에 개개인 훈련량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게다가 여자농구의 전체적 발전보다는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에서 좋은 성적만 거두면 된다는 의식이 매우 강한 은행권 구단들이다. 결국 일부 구단들은 박신자컵에서 전력을 감추고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우물 안 개구리식' 발상이 자라난다.
게다가 일부 구단은 '풀전력' 사용을 자제했고, 일부 구단은 '풀전력'이라곤 하지만, 선수들은 제대로 준비돼 있지 않은 '무늬만 풀전력'이다.
지난해 새롭게 탄생된 박신자컵은 선진적 일본프로구단과의 직접 맞붙어보고, 자신들의 약점을 되새김질 할 수 있는 좋은 무대로 성장하고 있다. 단, 이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6개 구단의 구조적 문제와 편협함은 너무나 아쉽다. 아산=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