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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르도 라틀리프(28·삼성)의 귀화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절차와 관건은 무엇일까.
삼성 구단 관계자는 "라틀리프가 한국에서 프로에 데뷔했기 때문에 애정이 크고, 만족도도 높다. 1년 중 한국에서 보내는 기간이 더 길어 익숙함이 있다. 딸도 한국에서 낳아 가족들이 편안해 한다"면서 "무엇보다 안정감을 가지고 싶다고 말했다. 외국인 선수라 매년 계약을 새로 해야하고, 불안해하는 것보다 편안함을 원한다. 또 한국농구와 자신이 잘 맞는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성격적인 면에도 흠결이 없다. 삼성 이적 후 첫 시즌이었던 지난해에는 다소 낯을 가리는 모습이 있었으나 지금은 '적응 완료'다. 선수들, 구단 관계자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장난도 많이 치고, 이벤트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라틀리프 본인도 "처음에는 낯을 많이 가려서 거리감을 두는데 지나면 괜찮다"고 인정했다.
일반귀화 아닌 특별귀화 초점
첫번째 관건은 특별귀화다. 법무부가 지난 2010년 5월 개정한 국적법에 따라 문화, 예술, 체육 분야에서 우수한 외국 인재는 국적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복수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라틀리프가 말하는 '귀화'는 나머지 국적을 포기하는 일반귀화가 아닌, 특별귀화에 가깝다. 특별귀화는 이중국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라틀리프는 현재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일반귀화 조건을 채우는 것이 더 어렵고, 라틀리프가 미국 국적을 포기하면서까지 한국 국적을 원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특별귀화에는 까다로운 조건이 있다. 7가지 중 최소 3가지 이상 충족해야 심의 대상자가 된다. 라틀리프의 경우에는 '국민총소득대비 고소득의 연봉', '국내외의 공신력 있는 수상 내역', '전문 출판물 혹은 주요 대중매체에 우수한 재능에 대한 기사가 게재되거나 자신의 학술기사를 발표한 자' 정도의 요건에 부합된다.
하지만 협회 관계자는 "현재 살펴봤을 때 2가지 정도는 부합하는데, 나머지 1가지가 약간 애매하다. 조건을 채우는 것이 쉽지 않다. 조금 더 살펴봐야 할 것 같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했다.
특별귀화 절차는 어떻게 되나
협회도, 연맹도, 여론도 긍정적이다. 일부 반대파가 있지만, 한국농구에 애정을 가지고 있고 본인 스스로 의지가 큰 라틀리프에 대해 호의적인 분위기다.
모든 과정이 순조롭다면, 특별귀화까지는 2~3개월의 시간이 소요된다. 먼저 협회가 대한체육회에 라틀리프를 특별귀화 대상자로 추천하면, 국적심의위원회가 구성된다. 라틀리프가 위원회에 직접 출석해 귀화 의사를 밝히는 등 다음 과정이 진행된다. 여기까지가 1개월 정도 걸린다.
국적심의위원회를 통과하면 체육회가 법무부에 추천 대상자를 올린다. 법무부를 통과하는 과정이 2개월 정도 더 소요된다. 특히 국적심의위원회는 상설 기구가 아니라 해당 사항이 있을 때만 꾸려지기 때문에 시간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
본격적인 논의 이후 특별귀화가 빨리 해결된다면, 오는 6월에 열릴 동아시아선수권 대회 대표팀 출전도 가능하다.
첼시 리 사건, 정말 영향을 미칠까?
다수의 관계자가 지난해 농구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첼시 리 사건'이 라틀리프 귀화에도 영향을 미치리라 전망했다. 첼시 리는 여자프로농구 KEB하나은행 소속으로 뛰었던 지난해 '한국인의 피가 섞인 한국계'라고 주장했지만, 법무부의 특별귀화 심사에서 서류 조작이 밝혀지며 퇴출됐다. 하나은행과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KBA 모두 강한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첼시 리 사건이 채 1년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라틀리프의 특별귀화도 쉽지 않을 것이라 보는 의견이 있다. 농구계에서도 전망이 극과 극으로 나뉜다.
한 인사는 "첼시 리 사건에 대한 부담이 아직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부담되고 조심스럽다. '또 농구냐?'라는 여론도 있어 라틀리프 귀화 문제에 더 신중하게 접근하려고 한다"고 했다.
반면 또 다른 인사는 "첼시 리가 자꾸 거론되는데 명백히 별개의 문제다. 첼시 리는 한국인의 피가 섞였다고 거짓말을 한 사례고, 라틀리프는 완전한 외국인이 귀화를 신청하는 것이다. 특히 라틀리프는 국내 리그에서 5년 동안 뛰면서 검증이 끝난 선수다.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다. 그런 측면에서 접근하는 게 맞지 않나"라고 주장했다.
귀화 이후도 문제
라틀리프가 감정적으로, 혹은 쉽게 특별귀화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다. 진중한 성격인 만큼 분명 오랫동안 고민을 했을 것이다. 또 KBA와 대표팀도 과거 불발된 애런 헤인즈(오리온)을 비롯해 꾸준히 외국인 선수 귀화를 원해왔다. 라틀리프가 적임자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중 국적이 허용되는 특별귀화라고 해도 쉽게 생각할 문제는 결코 아니다. 귀화 그 이후를 감안해야 한다. 당장 대표팀이 국제 대회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근시안적 사고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라틀리프가 귀화를 하면 프로 리그에 또 영향을 미친다. 현재 소속팀인 삼성을 제외한 나머지 구단에서 분명 반대 목소리가 나올 수 있고, 드래프트를 다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리그의 영리 문제가 달려있기 때문에 꼼꼼하게 검토할 부분이다.
또 라틀리프 역시 선수 은퇴 이후 어떤 방법으로 한국에 기여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젊은 시절 한국에서 편하게 돈을 버는 수단으로 귀화를 선택하고, 나중에 미국으로 가겠다는 생각이면 거부감이 든다. 특별귀화자가 지녀야 할 책임감이다.
나유리기자 youll@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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