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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개념 PG 스테판 커리]그의 천재성은 노력으로 완성됐다

류동혁 기자

기사입력 2016-02-14 20:42


PHOENIX, AZ - FEBRUARY 10: Stephen Curry #30 of the Golden State Warriors puts up a three point shot over Archie Goodwin #20 of the Phoenix Suns during the first half of the NBA game at Talking Stick Resort Arena on February 10, 2016 in Phoenix, Arizona. The Thunder defeated the Suns 122-106. NOTE TO USER: User expressly acknowledges and agrees that, by downloading and or using this photograph, User is consenting to the terms and conditions of the Getty Images License Agreement. Christian Petersen/Getty Images/AFP

스테판 커리의 아버지는 유명한 NBA 리거다.

1986~1987시즌 유타에서 데뷔, 클리블랜드, 샬럿, 밀워키, 토론토 등에서 16시즌을 뛴 델 커리다. 버지니아 공대를 나온 그는 샬럿 구단 역사상 가장 많은 득점을 올린 선수(1만2670점)이며, 1994년 올해의 식스맨 상을 수상한 스타 플레이어다.

스테판 커리는 미국 오하이오주 애크런에서 태어났지만,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에서 성장했다. 동생 세스 커리와 함께, 아버지가 뛰는 코트에서 자연스럽게 농구와 친숙해졌다. 본격적인 농구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시작했다. 당시 아버지 델 커리가 샬럿에서 토론토로 이적한 시점이었다. 당시 토론토 한 유소년 클럽에서 뛰었는데, 당시 라이벌팀에는 현 NBA 리거 코리 조셉(토론토)과 켈리 올리닉(보스턴) 등이 있었다.

샬럿 크리스찬 고교에서 명성을 떨쳤다. 슈팅능력과 기술은 뛰어났지만, 왜소한 체구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당시 커리는 1m80의 키에 72.6㎏의 신체조건이었다.

당시 ESPN의 스카우팅 리포트에 따르면 커리는 100점 만점에 36점을 받았다. 키와 몸무게 때문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평가였다.

결국 메이저 대학의 러브콜을 받지 못한 커리는 데이빈슨대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다. 데이빈슨대는 1969년 이후 NCAA 토너먼트에서 단 1승도 올리지 못한 약체였다. 그의 동생 세스 커리가 명문 듀크대에 입학해 둘은 대비된 행보를 보였다.

그는 약점이 많은 선수였다. 대학 첫 경기 상대는 이스터 미시건대학교였다. 당시 15득점을 올렸지만, 13개의 실책을 저질렀다. 하지만, 이내 폭발적인 득점력을 과시한 그는 팀의 에이스가 됐다. NCAA 토너먼트 1회전에서 메릴랜드대를 맞이한 그는 30득점을 올렸지만, 팀은 70대82로 패했다.

2학년 때 그는 기량이 만개하기 시작했다. NCAA 토너먼트 1회전에서 곤자가대를 맞아 82대76의 팀 승리를 이끌었다. 당시 커리는 40득점을 폭발시키면서 1969년 이후 데이빈슨대의 첫 승을 만들어냈다.


3학년을 마친 그는 NBA 문을 두드렸다. 당시 골든스테이트가 1라운드 7순위로 그를 지명했다.

골든스테이트에서 코치 연수를 했던 이규섭 삼성 코치는 "미국에서 스카우팅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기준은 신장과 점프력(운동능력)이다. 그리고 윙스팬과 파워를 본다"며 "기술은 그 다음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커리의 경우 가드로서 기술이 워낙 좋았다"고 했다. 당시 1순위는 블레이크 그리핀(LA 클리퍼스) 3순위가 제임스 하든(휴스턴)이었다.

루키 시즌 커리는 평균 17.5득점, 5.9어시스트, 4.5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올스타 스킬 챌린지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듬해 그는 오른발목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골든스테이트는 그는 팀의 미래로 낙점했다. 당시 에이스 역할을 하던 몬타 엘리스 대신 그를 선택했다.

2012년 클레이 톰슨과 본격적인 '스플래시 듀오'를 형성했다.

결국 지난 시즌을 기점으로 커리는 최정상급 가드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리그를 평정하고 있다.

올 시즌 그는 유력한 MVP 후보다. 더욱 인상적인 부분은 MIP(기량발전상)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 MVP였지만, 그의 절대적 기량 자체가 더욱 향상됐다는 평가다.

이규섭 코치는 "D-리그에서 슛에 대한 코칭을 받을 때, 오른발을 뒤로 뺀 상태에서 오른팔을 내밀고 공을 한 손으로 캐치한 뒤 곧바로 슈팅으로 올라가는 훈련이 있었다"고 했다.

이 자세에서 슛을 쏘면 팔꿈치 자체가 뒤로 빠졌다가 올라갈 수 없다. 즉, 그대로 슛이 올라가게 되는 효과가 있다. 이 코치는 "팔꿈치가 간결하게 고정되면서 슛이 올라가기 때문에 릴리스 타이밍이 빨라지고, 축이 되는 팔꿈치가 흔들리지 않으면서 슈팅 자체가 안정적으로 변하는 효과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이런 슈팅 스타일이 찰나의 오픈 찬스에서 슈팅을 쏴야 하는 현대 농구에 적합한 슈팅 폼이다. 이런 이상적인 슈팅 매커니즘을 가지고 있는 선수가 스테판 커리다.

그의 신체조건을 보면 괴물같은 하드웨어를 갖춘 선수들이 즐비한 NBA에서 왜소할 정도로 느껴진다. 게다가 동안의 얼굴은 이미지를 더욱 약하게 한다. 하지만 그의 별명 중 하나는 '동안의 암살자'다. 반복 훈련으로 단련된 고도의 테크닉,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이상적인 슈팅 메커니즘을 지닌 그는 커리만의 농구를 코트에서 내뿜고 있다. 그의 발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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