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은 1등주의를 지향한다. 삼성그룹 산하 기업들이 운영하는 스포츠단도 그룹의 기조를 따르게 마련이다. 스포츠단은 더욱 성적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 국내 프로시장이 돈을 벌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우승으로 평가를 받으려고 젖먹던 힘까지 쏟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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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썬더스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큰 변화가 있었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영향을 받아 삼성 농구단은 삼성전자 소속에서 제일기획으로 주체가 바뀌었다. 쉽게 말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늘에서 이서현 제일기획 사장 밑으로 들어갔다. 또 농구단의 수장이 바꾸었다.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는 이상민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이상민 감독은 의욕적으로 재미있고 빠른 공격 농구를 지향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시즌 전 천하의 이상민 감독이라고 해도 삼성의 현재 선수 구성으로는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삼성 농구의 패인 분석은 한결같다. 상대와 대등하게 가거나 앞서 가다가도 승부처에서 고비를 넘기지 못한다. 그 이유는 고비에서 결정적인 수비가 안 되기 때문이다. 삼성은 유일하게 평균 실점이 80점이 넘는 팀이다. 평균 득점은 72점이다. 현대 농구의 기본은 수비가 먼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삼성 농구단엔 수비를 잘 하는 선수가 많지 않다. 이동준 리오 라이온스 등이 수비 보다 공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렇다고 팀 전체가 수비 조직력이 잘 갖춰져 있는 것도 아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삼성 농구가 고전하는 건 몇해 전부터 체계적으로 리빌딩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현재의 선수단 구성이 알차지 않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걸 바꾸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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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농구는 리빌딩이 매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 루키 자원이 풍부하지 않다. 토종 신인 드래프트 방식이 변경돼 전 시즌에 최하위로 하더라도 1순위 지명권을 가질 확률이 낮아졌다. 외국인 선수 선발도 자유계약제가 아닌 드래프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많은 돈을 투자해서 기량이 출중한 선수를 모셔올 수가 없다. 또 상대팀에서 데려오고 싶은 선수가 있어도 줄 카드가 마땅치 않아 트레이드로 팀 컬러를 바꾸기도 어렵다.
야구와 배구는 농구 보다는 팀 전력 보강이 수월하다. 삼성 야구는 프로야구 출범 이후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절대 강자 해태 타이거즈(현 KIA 타이거즈)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그렇지만 이후 삼성그룹은 삼성 라이온즈에 엄청난 물량 지원을 했고, 팀의 컬러를 완전히 바꾼 끝에 현재의 최강팀을 만들었다. 패배주의를 불식시키기 위해 적장 김응용 감독을 모셔왔고, 호남 출신인 선동열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기도 했다. 약 10년의 시간 동안 삼성 야구는 목말랐던 우승의 한을 풀었다. 또 튼튼한 마운드의 근간을 다져 놓았다. 그리고 삼성 프랜차이즈 스타 류중일 감독이 2011시즌부터 지휘봉을 잡고 내리 4연패를 달성했다. 삼성 야구는 이제 시스템에 따라 돌아가는 걸 대원칙으로 한다. 그룹의 탄탄한 지원 속에서 될성 부른 유망주들을 계속 키워내고 있다. 삼성 야구는 더이상 다른 구단에 손을 벌리지 않고도 1위를 지킬 수 있는 상황이 됐다. 또 외국인 선수 계약에 제약이 없기 때문에 최고급 선수를 데려올 수 있다.
신치용 감독이 이끄는 남자배구 삼성화재의 독주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렇다할 대항마가 없다. 현대캐피탈이 애를 쓰고 있지만 삼성화재의 조직력을 당해내지 못한다. 삼성화재 선수단에 누가 새로 들어오더라도 녹아들게 돼 있다. 강한 훈련을 버텨내지 못하면 낙오하게 돼 있다. 또 외국인 선수를 자유계약으로 영입할 수 있다. 삼성화재의 특급 외국인 선수 레오의 몸값이 수 백만달러에 달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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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농구는 현재 바닥이지만 더 떨어질 곳은 없다. 스포츠도 경기 흐름 처럼 굴곡이 있다. 정상에 올라가면 떨어질 때가 언젠가는 온다. 삼성 농구는 리빌딩이 필요한 최적의 시기를 맞았다. 축구단 수원 삼성이 좋은 예다. 삼성은 지난해 서정원 감독이 부임한 후 큰 폭의 개조작업을 통해 올해 2위를 차지했다.
삼성 농구는 현재의 꼴찌가 생소하고 낯설 것이다. 주변에서 다른 종목은 선전하는데 왜 농구는 부진하냐고 핀잔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삼성 스포츠가 전부 1위를 차지한다면 그것 또한 삼성그룹의 전체 이미지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다. 삼성그룹은 자신들이 국내 1등이라는 걸 이제 외부로 대놓고 자랑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티를 내는 1등이 아닌 남들이 인정해주는, 존경받는 1등이 되고 싶은 것이다.
삼성 농구의 부진은 야구와 배구, 그리고 축구의 선전으로 그룹 스포츠 전체를 보면 도드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삼성은 농구가 기대치에 모자라고 있지만 국내 스포츠 전반을 이끌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삼성 농구는 심기일전해서 다시 치고 올라가면 되는 것이다. 지금은 질책 보다는 재기에 성공하는 스토리가 더 어울린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