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몇 년간 프로농구의 성적 추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흥미로운 현상이 보인다.
예상보다 훨씬 저조한 성적을 거둔 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연히 이유가 있다.
그 중심에는 사령탑의 무능함이 있는 경우가 많다. 무능함의 이유는 다양하다. 그 중 핵심은 상대에 따른 각 경기별 전술의 부재와 선수단 장악 실패가 있다.
프로농구판에서 명장으로 평가받는 유재학, 전창진 감독은 시즌 전 '엄살'이 있다. "4강이 쉽지 않다"든지, "딱 6강 전력"과 같은 말이다. 그런데 선수 구성을 냉정하게 평가해 보면 대부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시즌 후 결과를 보면 항상 예상 이상의 호성적을 거둔다. 시즌 전 철저한 준비와 선수단의 완벽한 장악으로 인한 조직력의 힘이 객관적 전력의 약점을 메우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무너지는 팀과 맞물리면서 시즌 전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도출한다.
그런 점에서 삼성의 지휘봉을 잡은 이상민 감독은 출발이 좋다. 전력 평준화가 심화된 올 시즌이다. 그 중 삼성의 객관적 전력은 가장 약한 편에 속한다.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1순위로 리오 라이온스를 뽑았지만, 실제 기량은 예상보다 떨어진다. 게다가 2순위로 뽑은 키스 클랜턴은 탄탄한 골밑 장악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시즌 전 불의의 발목부상을 당했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김준일이라는 대어급 센터를 낚았지만, 여전히 국내 선수의 기량은 다른 팀에 비해 떨어지는 게 사실.
그러나 이 감독은 팀컬러를 명확히 하며 사령탑 교체로 인한 선수들의 혼란을 최소화했다. 확실한 스피드 농구와 강한 디펜스를 집중적으로 강조했다. 게다가 라이온스와 클랜턴의 투입 때 팀 패턴을 명확히 했다. 삼성은 개막전 이후 2연패했다. 하지만 경기내용은 나쁘지 않다. 올 시즌 초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오리온스에게 72대79로 끝까지 접전을 펼쳤다.
SK전에서 후반 무너지며 78대93으로 패했지만, SK의 강함과 삼성의 약점이 맞아 떨어진 경기였다. 삼성은 활동폭이 좁은 이동준 김준일 센터 겸 파워포워드가 중심이다. 하지만 내외곽을 겸할 수 있는 포워드 요원은 거의 없다. 김명훈이 있지만 완전치 않다. SK는 주로 3-2 지역방어를 쓰는데, 그 부분을 파괴할 카드가 부족한 상태였다. 결국 후반에 무너졌지만, 지난 시즌보다 경기력은 훨씬 좋아진 모습. 즉, 시즌 전 준비의 힘이다.
15일 안양 KGC와의 경기 전 삼성의 라커룸에 비치된 보드판은 10개 정도의 세부적인 작전이 적혀 있었다. 흔히 볼 수 없는 장면. 통상적으로 경기 전 보드판에는 2~3개의 주요한 작전만 명시된 경우가 많다. 이유는 두 가지다. 실제 지도자들이 그 정도만 준비했을 경우. 노련한 지도자의 경우에는 일부러 노출시키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 감독이 매 경기 많은 생각과 연구를 한다는 점이다.
실제 이상민 감독이 우여곡절 끝에 신고한 첫 승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객관적인 전력은 KGC가 낫다. 하지만 삼성은 더욱 숙련된 팀 플레이로 승부처를 이겨냈다.
전반 19점 차의 리드를 했지만, 동점을 허용해 연장전에 돌입했다. 고비마다 삼성은 완벽한 패스게임으로 확률높은 내외곽 찬스를 만들어냈다.
이 감독의 취임 직후 유재학 감독은 "그 친구(연세대 코치 시절 이상민이 제자였기 때문에 편하게 호칭을 썼다)는 워낙 머리가 비상하다. 때문에 대부분 감독들의 특징적 전술을 변화, 발전시킬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이 있다"고 했다.
이 감독은 "기본적인 조직력의 부분은 당연히 가지고 가야 한다. 그리고 매 경기 상대팀에 따라 그 부분을 어떻게 쓰는 지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흔히 '스타 플레이어는 좋은 지도자가 되기 힘들다'고 한다. 선수 시절 명성만 믿고 평범한 선수들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지도자로서 연구가 부족한 경향이 짙기 때문이다.
KCC 허 재 감독은 감독 첫 해 이상민 조성원 추승균 등 '빅3'에 의존한 농구를 했다. 갑작스럽게 맡은 사령탑에 대한 준비 기간이었다. 그는 드러내지 않지만, 그의 방에는 매 경기 상대에 따른 KCC의 전술분석서가 빼곡하다. 허 감도은 여기에 대해 "나도 노력을 많이 한다. 그렇지 않고는 (프로 지도자로 )버틸 수 없는 자리"라고 토로한 적이 있다.
이 감독 역시 첫 승을 신고한 직후 "주위에서는 '편하게 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자리가 편하게 할 수 있는 자리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혼자 고민을 많이 한다"고 덧붙였다.
프로 사령탑으로 이상민 감독은 여전히 부족하다. 지도자로서 이제 출발했다. 경험이 쌓여야 하고, 계속 고민하고 연구해야 한다. 아직까지 평가를 섣불리 내릴 수 없다.
하지만 출발만큼은 강렬하다. 선수들에 대한 장악력과 세밀한 전술에 대한 준비와 고민이 그 증거다. 안양=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