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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 한 달간 실전공백, 앙골라전 재앙으로 돌아왔다.

류동혁 기자

기사입력 2014-08-31 17:23


유재학 감독이 이끄는 남자농구대표팀이 30일 스페인 라스팔마스의 그란카나리아 아레나에서 2014 FIBA농구월드컵 조별리그 D조 1차전 앙골라와 첫 경기를 펼쳤다.
한국이 앙골라에 80대69로 아쉽게 패배했다. 경기 종료 후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대표팀 선수들.
<그란카나리아(스페인)=사진공동취재단/스포츠조선 송정헌 기자>

결국 한국은 앙골라에게 69대80으로 패했다.

패인에 대해 많은 의견이 혼재돼 있다. '잘 싸웠지만, 역부족이다', '한국농구의 한계가 나왔다'는 평가가 있다.

물론 객관적인 전력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한국보다 앙골라는 더욱 높았고, 더욱 강했다. 그러나 넘지 못할 벽은 아니었다. 분명한 것은 주된 패배의 원인은 한달 가까운 실전공백이었다는 점이다. 한국은 7월31일 뉴질랜드전이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진천선수촌에서 삼성과의 연습경기 단 한 차례만을 가진 뒤 스페인으로 떠났다.

경기를 다시 찬찬히 살펴보면 그 부작용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1쿼터

5-0으로 출발할 때까지는 좋았다. 앙골라는 반격해왔다. 개인기와 상대적으로 강한 골밑을 이용했다. 시프리아노의 3점포로 5-5 동점. 밍가스의 3점포와 시프리아노의 미드 레인지 점프슛이 터졌다.

한국의 실전공백은 경기 초반부터 나타났다. 오세근의 노마크 리버스 레이업 슛이 실패했다. 더욱 좋지 않았던 부분은 한국의 공격전개 방식이었다. 외곽에서 외곽으로 공이 돌았는데, 공이 없는 지역에서 선수들의 움직임은 매우 소극적이었다. 때문에 단순히 외곽에서 외곽으로 패스, 중거리슛을 던지는 형태가 1쿼터 5분까지 계속 나왔다.

김태술이 투입되면서 돌파에 의한 외곽 오픈 찬스가 나왔다. 앙골라의 수비는 정교하지 못했다. 골밑에서 패스가 나오면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 2명의 수비가 엉키는 장면도 속출했다.


그런데 한국은 조성민(2개) 김선형 문태종의 3점포가 1쿼터 내내 지독하게 들어가지 않았다. 평소같으면 적어도 50% 정도의 성공률이 나올 수 있는 좋은 찬스였다.

1쿼터 2분30초를 남기고 김태술이 림 약 4m 지점에서 미드 레인지 점프슛을 쐈다. 그의 장기 중 하나는 뱅크슛이다. 하지만 슛 밸런스가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그의 슛은 곧바로 림으로 향했고, 실패했다. 1쿼터 1분38초를 남기고 한국은 전매특허같은 골밑 트랩 디펜스를 성공시켰다. 김태술이 길목을 차단하면서 스틸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김태술은 가로채기한 공을 흘렸고, 다시 앙골라의 공격권으로 넘어갔다. 결국 확실한 득점원 시프리아노와 골밑의 우위를 앞세운 앙골라는 16-6, 쉽게 기선을 잡았다.

한국 입장에서 슈터들의 3점포 침묵과 김태술의 경기력 저하, 그리고 너무나 단순했던 공격전개가 최악의 경기력을 만들어냈다. 혼란스러웠던 앙골라에게 경기흐름을 내주는 원인을 만들었다.

반문해 보자. 실전 공백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좋지 않은 경기력이 나왔을까. 여기에서 '국내에선 보지 못한 아프리카 특유의 높이가 한국의 정상적인 슛과 패스를 압박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경기력'이라고 반문할 수 있다. 타당한 주장이다. 그런데 한국은 이미 뉴질랜드전에서 높이에 맞서 좋은 경기력을 보였다. 즉, 뉴질랜드전에서 길렀던 높이에 대한 면역력을 한 달간의 실전공백으로 날려버렸다는 것이 더욱 냉정한 평가가 될 수 있다.

2쿼터

여전히 앙골라도 공격에서 실마리를 풀지 못했다. 한국의 수비가 정교한 것은 아니었지만, 앙골라의 공격 난조가 맞물리면서 소강상태였다.

2분20초에 나온 문태종의 3점포다. 완벽한 개인기로 만들어낸 클린 슛. 7-18, 11점차. 충격히 추격이 가능한 점수 차였다. 하지만 경기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은 수렁에 빠졌다. 7분을 남기고 악성 패스미스가 나왔다. 분위기를 더욱 떨어뜨렸다.

6분여를 남기고 양동근의 단독 속공 미드레인지 슛이 림을 맞고 나왔고, 조성민의 패스에 의한 양동근의 단독 속공 레이업 슛도 림을 돌아나왔다. 이상한 경기흐름을 감지한 대표팀 유재학 감독이 작전타임을 불러 "너희들은 언제 (몸이) 풀리냐가 문제"라고 강하게 말한 이유.

하지만 한국의 실전감각은 여전히 돌아오지 못했다. 반면 앙골라는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조성민의 3점슛 2개가 빗나갔다. 반면 앙골라는 리바운드에 이은 골밑득점과 속공으로 조금씩 점수차를 벌리기 시작했다. 한국은 3점슈터 허일영을 투입했지만, 여전히 외곽포는 터지지 않았다. 결국 앙골라는 서서히 한국의 수비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결국 한국은 18-36으로 뒤진 채 2쿼터를 마쳤다. 보통 무뎌진 실전감각은 1경기를 치르거나, 전반전이 끝난 다음 극적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결국 한국도 예외도 아니었다.


유재학 감독이 이끄는 남자농구대표팀이 30일 스페인 라스팔마스의 그란카나리아 아레나에서 2014 FIBA농구월드컵 조별리그 D조 1차전 앙골라와 첫 경기를 펼쳤다.
한국이 앙골라에 80대69로 아쉽게 패배했다. 안타까운 플레이가 연속되자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유재학 감독.
<그란카나리아(스페인)=사진공동취재단/스포츠조선 송정헌 기자>
후반전

객관적인 전력을 평가할 때는 많은 변수가 있다. 현 시점에서 한국 대표팀을 거론할 때 골밑의 안정적인 득점은 기대할 수 없다.

가드진의 확실한 게임 리드와 득점력을 기대할 형편도 아니다. 개개인 별로 볼 때 공격력 강화를 위해 문태종을 투입했을 때, 수비에서의 공백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골밑돌파가 좋은 김선형에게 안정적인 3점포를 기대할 순 없다.

하지만 정교한 외곽 패턴에 의한 조성민 문태종의 3점포, 강한 수비에 의한 속공을 바라볼 순 있다. 이런 점들이 모두 합쳐져 그 팀의 객관적인 전력이 된다. 유재학 감독이 좋은 부분은 이런 약점에 대한 기민한 대처와 패턴 연습, 그리고 선수들의 장점을 충분히 살리는 공격패턴을 요구했고, 연습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강한 조직력을 형성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객관적인 전력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는 이유가 있다. 전반전의 부진이 단지 앙골라의 객관적인 전력이 한국을 압도했기 때문에 이겼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기 위해서다.

자세히 살펴보면 전반전에서 한국이 잘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되지 않았다. 이럴 경우 '한국의 경기력 자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앙골라에게 고전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즉, 한국의 경기력이 떨어진 명백한 이유는 코칭스태프나 선수, 그리고 전술의 문제가 아니라 약 한 달간의 실전공백이 가장 큰 문제였다는 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후반에도 그런 증거들이 속속 나왔다. 몸이 풀린 한국은 3쿼터 앙골라에게 거센 반격을 했다. 뉴질랜드전에서 나왔던 강한 압박에 의한 속공이 여러차례 나왔다. 몸이 풀린 조성민과 문태종의 3점포도 터졌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실전공백의 부작용이 있었다. 3쿼터 4분11초, 5분54초에 터진 앙골라의 3점포를 보자. 골밑에 볼을 투입한 뒤 앙골라는 외곽으로 공을 빼줬고, 사이드에서 3점포 찬스가 나왔다. 2개의 의미있는 3점슛이 들어갔다. 한창 추격을 시작하던 한국에 찬물을 끼얹은 3점포였다. 앙골라가 역전을 허용하지 않았던 보이지 않은 귀중한 6득점.

3쿼터 유 감독은 작전타임을 부른 뒤 선수들을 호되게 질책했다. 그는 "왜 로테이션을 제대로 돌지 않냐"고 했다. 골밑에 볼이 들어온 뒤 나오는 더블팀. 당연히 상대는 외곽으로 공을 돌리며 오픈 3점슛 찬스를 노린다. 이 부분에 대해 한국 대표팀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진천에서 수비 연습을 할 때 가장 강조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그런데 왜 막상 실전인 승부처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대표팀에게 우려스러웠던 부분. 유재학 호의 수비 패턴은 한 명의 선수라도 삐끗하면 찬스가 난다. 게다가 12명의 선수를 고루 기용한다. 때문에 12명 모두의 유기적인 움직임이 너무나 중요하다. 많은 훈련을 거쳤지만, 완성도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런 약점 때문에 좀 더 난이도 있는 1-3-1 지역방어는 실전에서 잘 쓰지 않는다. 하지만 더블팀 후 로테이션 수비는 대표팀에게 기본이 되는 수비다.

문제는 그런 수비 조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강한 연습과 함께 실전에서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만드는 부분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 달간의 실전 공백이 생겼다. 갈고 닦았던 수비 조직력에 구멍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지는 건 당연하다. 결국 후반전 대표팀 선수들은 분투했지만, 끝내 경기를 뒤집지 못했다.

물론 한국의 경기력에서 객관적인 전력이나 선천적인 높이도 약간의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좀 더 찬찬히 경기를 살펴보면, 무뎌진 실전감각이 경기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수없이 보도됐다. 대부분 농구월드컵 참가팀들이 유럽에서 베이스 캠프를 차리고 실전과같은 연습경기를 진행했다는 사실. 앙골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객관적인 전력이 가장 약한 한국은 농구월드컵을 앞두고 더욱 많은 실전경험이 필요했다. 1차전부터 날카로운 조직력으로 전력의 약점을 보충하는 게 상식이다. 그동안 언론에서 수없이 지적한 부분이다. 하지만 KBL(한국농구연맹)과 KBA(대한농구협회)는 묵묵부답이다. KBL 김영기 총재는 '취임 후 국제경쟁력과 대표팀 시스템 안착에 관한 언급이 없으시다. 가지고 있는 계획이 있으시냐'는 기자의 질문에 "일단 기본적인 대표팀 지원은 하고 있다. 아직 장기적인 대표팀 시스템에 대한 플랜은 없다"고 했다.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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