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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BL의 초등생 대상 캠프, 여자농구 미래를 본다

이명노 기자

기사입력 2014-02-13 12:03 | 최종수정 2014-03-03 16:04


WKBL이 개최한 'U-12 엘리트 농구캠프'에 참가해 즐거워 하고 있는 초등학교 선수들. 사진제공=WKBL

"와, 눈이다!"

삼천포초등학교 여자농구부를 10년째 지도하고 있는 정일화 코치는 아이들의 반응에 화들짝 놀랐다. 7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왔는데 아이들은 피곤한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창가에 달라붙어 신기한 듯 눈을 구경했다.

10일부터 13일까지 강원도 속초에선 '2014 WKBL U-12 엘리트 농구캠프'가 열렸다.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이 개최한 사상 첫 초등학교팀 대상 행사다. 그런데 행사가 열리기 전부터 영동지방에 유례 없는 폭설이 내렸다. 고립된 마을이 나오고, 건물붕괴 사고가 속출할 정도의 눈폭탄. 하지만 아이들은 그저 눈이 반갑기만 했다. 특히 삼천포초등학교처럼 평소 눈을 보기 힘든 지역에서 온 아이들은 눈밭에서 마음껏 뛰어놀았다.

폭설에도 행사는 차질 없이 진행됐다. 전국 26개 초등학교 여자농구팀 중 19개 팀이 참가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선수와 지도자를 포함해 200여명의 참가자들은 3박4일간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열악한 초등학교 농구부, 뿌리를 키워야 한다

초등학교 농구부는 한국 농구의 '미래'이자, '뿌리'와도 같다. 하지만 팀 수가 갈수록 줄고 있다. 운영이 어렵다며 농구부를 해체하는 학교가 많다. 실제로 클럽활동 수준의 농구부를 제외하면 초등학교 여자농구팀은 23개 정도다. 게다가 중학교는 21개, 고등학교는 20개로 점점 숫자가 줄어든다. 농구를 하고 싶어도 지역 내에 농구하는 학교가 없어 포기하는 선수들도 많다.

삼천포는 '농구 도시'로 유명하다. 초중고 농구부가 탄탄하게 형성돼 있다. 전국대회 입상 '단골팀'이다. 그런데 이번 캠프에 참가한 삼천포초등학교 선수들은 고작 7명. 정일화 코치는 "농구로 유명한 삼천포도 이런 상황이다. 너무나 어려운 현실이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WKBL이 개최한 'U-12 엘리트 농구캠프'에서 은퇴선수들의 지도에 따라 기본기를 익히고 있는 초등학교 선수들. 사진제공=WKBL
실제로 캠프 프로그램의 하나로 진행된 학교 대항전에서 안타까운 현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선수가 많은 팀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팀들이 7~8명 정도에 불과했다. 베스트5가 나가면 벤치에 고작 2명이 앉아 있는 상황. 벤치에 앉은 선수는 대부분 저학년으로 이제 막 농구를 시작하는 수준이었다.


이처럼 연습경기 때 5대5 게임은 꿈도 못 꾸는 팀이 많다. 학교별로 만나 연습경기를 치르지만, 매일같이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농구의 뿌리가 이처럼 빈약해지는데 좋은 선수가 나오길 바라는 건 사치일 것이다.

WKBL은 매년 유소녀 캠프를 열었다. 농구의 뿌리를 다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처음 치른 초등학교 대상 캠프에서 쉽지 않은 미래를 봤다. 그래도 향후에도 적극적으로 초등생 대상 행사를 진행해 미래를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이번 캠프는 참가비 없이 전액 WKBL의 지원으로 진행됐다. 참가선수들은 의류와 농구화를 비롯해 각종 물품을 지원받기도 했다.

선수도 지도자도 배운다, 참가자들에겐 소중한 시간

선수들의 지도는 동행한 지도자가 아닌, WKBL 출신 레전드들이 맡았다. 한국 여자농구를 주름 잡았던 정은순 정선민 조문주 이종애 장선형 권은정 등이 직접 강사로 나섰다. 정덕화 전 KB스타즈 감독과 이지승 전 대표팀 코치도 지도에 나섰다.

정덕화 감독은 "유소녀 농구의 열악한 현실에 대해 말로만 많이 들었지, 실제로 접할 기회는 없었다. 우리도 이렇게 와서 직접 본 뒤에야 알았다. 우리도 여기 와서 많이 배우고 간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이런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 여자농구의 현실이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이런 시간을 통해 계속 해서 좋은 선수들을 키워내야 한다"며 "팀별로 지도자가 있지만, 이렇게 은퇴한 프로선수들의 지도가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지도자들에게도 좋은 기회다"고 강조했다.


정덕화 전 KB스타즈 감독이 WKBL이 개최한 'U-12 엘리트 농구캠프'에서 초등학교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사진제공=WKBL
실제로 선수 뿐만 아니라, 지도자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있었다. 지도자들은 선수 지도는 잠시 내려놓고 따로 교육을 받았다. 부상방지를 위한 테이핑 교육과 지도법에 대한 교육, 세미나를 진행했다.

선수들은 캠프에서 농구 클리닉은 물론, 각종 인성교육과 단체활동 시간을 가졌다. 오전엔 특별강사들에게 드리블, 슈팅, 패스 등 아마추어 때 소홀할 수 있는 기본기를 배웠고, 성폭력과 학교폭력 예방교육도 받았다. 오후엔 농구경기와 눈싸움이 벌어졌다. 당초 눈썰매 체험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었지만, 폭설로 인해 눈썰매장이 폐장하고 말았다. 마지막 날 밤에는 뷔페에서 레크리에이션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원주 단관초등학교 곽영아양(12)은 "학교에서 배운 것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캠프에 모여서 하니 색다른 느낌이 있다. 특히 가르쳐주는 선생님들이 자상하셔서 너무 좋았다"고 했다. 같은 학교에 재학중인 탁은진양(12)은 "평소 잘 못 보던 다른 학교 친구들을 많이 볼 수 있어 좋았다. 예전부터 알던 다른 팀 친구들과도 오랜만에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며 웃었다.

선수들 지도에 나선 WKBL 레전드들에게도 뜻깊은 시간이었다. 오전엔 농구 클리닉에서 선수들을 지도하고, 오후엔 경기에서 초등학교 팀들의 일일 감독과 심판으로 나섰다. 정선민 전 대표팀 코치는 짧은 시간에 지도를 맡은 선수들 이름을 외워 목놓아 선수들의 이름을 부르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정은순 KBS N 해설위원은 "어린 선수들이 이렇게 하는 게 기특하다. 아마추어 환경이 안 좋다는 얘기만 들었는데 여기 와서 보니 이렇게 열심히 하는 선수들 덕에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삼천포초등학교 정일화 코치는 10년간 초등학교 선수들을 지도했음에도 이런 기회가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그는 "승패를 떠나 놀이로 승화된 시간이라 3박4일간 선수들이 너무 행복해 했다. 평소 어려울 수밖에 없는 코치와 달리, 이렇게 유명한 선수들에게 배우니 장난도 치면서 즐겁게 하더라. 1년에 두 번씩 자주 했으면 하는 게 코치들의 바람"이라고 했다.


속초=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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