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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경부고속도로 수원 IC 인근 한적한 곳에 위치한 경기도 용인 신갈고 체육관은 왁자지껄했다.
2개로 나위어진 체육관 코트에서는 고사리 손길이 농구공 튕기는 소리, 벤치에서는 엄마-아빠들이 응원함성이 뒤섞여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교정으로 들어가는 순간 금방 알 수 있었다. 플래카드와 농구교실 승합차에 새겨진 캐리커처만 봐도 특유의 꽃미남 이미지가 눈에 박혔다.
은퇴한 농구스타 우지원(38)이다. 2010∼2011시즌을 마치고 모비스에서 은퇴한 우지원은 작년 9월 'W-GYM(우지원 스포츠아카데미)'을 경기도 분당에 열었다.
모비스 전력분석원 자리를 버리고 스포츠아카데미를 열었을 때 "탄탄대로 편한 길을 두고 왜 힘든 길로 찾아가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던 우지원이다.
당시 우지원은 "오래 전부터 유소년 농구를 활성화하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그 꿈을 먼저 택한 것 뿐이다"라고 답했다. 이날 자신의 이름을 걸고 출범한 '제1회 우지원 W-GYM 유소년농구대회'는 그의 깊은 뜻을 짐작하기에 충분한 자리였다.
전날 원주 야간경기 방송해설을 마치고 부랴부랴 밤길을 달려왔다는 우지원은 목이 잠겼고, 얼굴도 피곤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방송사 해설위원하랴, 스포츠아카데미 단장 노릇하랴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형편이다. 하지만 입가의 미소는 떠날 줄을 몰랐다.
우지원은 "막상 대회를 펼쳐놓고 꿈나무들이 마음껏 즐기는 걸 보니 그간의 피로가 싹 가신다"고 말했다.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아왔는데 이렇게라도 보답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도 했다.
우지원은 아카데미 출범 1년을 맞아 대회를 준비했다. 지난 1년간 우지원 아카데미는 눈부신 성장세다. 분당 본교의 회원은 500명에 이르러 포화 상태고, 3개월 전 개설한 광주광역시의 회원은 100명이다. 야구의 도시인데다, 농구 저변이 약한 광주의 특성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과다.
비결이 궁금했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이날 '단장님'으로 활약한 우지원을 지켜보니 쉽게 알 수 있었다. 우지원은 대회 현장에서 선수보다 바빴다. 잠깐의 인터뷰도 제대로 하기 힘들 정도였다.
시구하랴, 경품 추첨하랴, 학부모-손님들과 인사하랴…. 압권은 밀려드는 사인공세. 인터뷰 도중 "잠깐만 실례하겠다"고 시작된 사인은 멈출 줄을 몰랐다. 누군가 한 명 물꼬를 트자 엄마-아이 가릴 것없이 몰려드는 행렬이 줄을 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숫제 '우지원 팬 사인회'가 되고 말았다.
사인공세를 대하는 우지원의 자세가 인상적이다. "너 이발했구나.", "오늘 (어시스트)몇개 했어?", "넌 밥을 더 먹어야 해. 그래야 체력 좋아지지." 많은 꿈나무 제자들을 기억하며 따뜻한 말한마디 건네는 솜씨가 천생 교육자 같았다.
우지원은 분당 본교로 사용하고 있는 체육관을 사재 4억여원을 털어 직접 지었다고 한다. 성격상 체육관 관리는 물론, 아카데미 회원 관리-지도 업무를 직접 챙겨야 안심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선수들을 직접 가르치고, 대회가 있는 날이면 특별훈련을 자청하기도 한다고. "이름만 걸어놓고 손님끌기에만 활용하는 농구교실은 만들고 싶지 않다"는 게 우지원의 소신이다. 결국 우지원의 이같은 팬 서비스 마인드와 '함께 호흡한다'는 경영 방침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만사형통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우지원은 이번 대회를 3개월간 준비하면서 많은 점을 깨우쳤다고 했다. 대회장으로 사용할 체육관을 빌리기 위해 분당, 수지 인근 찾아다닌 학교가 수십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관련 조례때문에' 등의 이유로 퇴짜를 맞기 일쑤였다. 우지원은 "다른 일도 아니고 꿈나무 농구대회 한다는데 버젓이 놀리는 체육관을 빌리지 못한다니 안타까웠다"면서 "농구의 저변 확대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우지원은 이번 대회를 치르면서 얻은 교훈을 '잔칫상'에 비유했다. 선수 시절엔 차려놓은 잔칫상(프로농구 리그)에 출전만 하느라 몰랐는데 직접 상차림 하려고 뛰어다녀 보니 얼마나 힘든지 프런트들의 심정을 알겠다는 것이다. 그래도 잔칫상 맛있게 먹는 꿈나무들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는 것.
우지원 아카데미는 앞으로 더욱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지역에서도 분교를 열자는 요청이 많아서 고심중이라고 했다. 그런 그에게 앞으로 목표는 명확했다. 어차피 돈 벌겠다고 벌인 사업이 아닌 만큼 어느 방면에서든 성공한 인물을 배출하고 싶다.
"축구스타 박지성도 차범근 축구교실 출신이라잖아요. 우지원 농구교실 출신이 NBA에 진출하는 날도 만들어 보고 싶네요. 굳이 선수가 아니더라도 농구를 통해 규칙, 협동, 배려를 체득하는 '인간'을 키우고 싶어요."
체육관을 나오니 유난히 화창한 가을 햇살이 눈부셨다. '단장님' 우지원의 앞날을 보는 것 같았다.
용인=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