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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5년 동안 한국에 한번도 안갔다. 나 자신이 약해질까봐서다. 한국에 한번 가면 안 나올 것 같았다. 그만큼 현실이 힘들었으니까."
5년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현실이 됐다. 롯데 자이언츠 출신 허일(33)이 메이저리그 팀의 산하 마이너리그 팀들을 지도하는 타격코치가 됐다.
허일은 구단의 요청에 따라 지난달 23일 코치를 맡고 있던 아주사퍼시픽 대학과의 작별인사를 마치고 애리조나로 향하는 짐을 쌌다. 예정보다 빠른 이직에 미안함이 남았다. 허일 뿐 아니라 클리블랜드 구단에서 직접 대학 측에 사과와 양해를 구했다고.
2020시즌 직후 롯데에서 방출, 은퇴한지 5년만에 이룬 아메리칸드림이다. 허일이 맡은 '선수개발 타격코치'란 뭘까. 한국 야구팬들에겐 생소한 개념이다.
스포츠조선과 연락이 닿은 그는 '마이너리그 레벨 어느 팀으로 가게 되나. 루키나 싱글A 팀을 맡는가'라는 질문에 웃으며 "클리블랜드의 마이너리그 전체를 맡는다. 구단 타격 코디네이터(마이너 총괄 타격코치)인 크레이그 마쏘니, 코너 왓슨이 있고, 나는 그들을 도와 마이너리그 선수들 전반을 가르치고 육성하는 위치"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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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인생 대역전이다. 메이저리그 구단과 다년 계약을 맺은 정식 코치라니, 은퇴할 때만 해도 상상 속에서조차 쉽지 않은 미래였다.
허일이 야구 본고장인 미국에서 이처럼 빠르게 능력을 인정받은 비결은 뭘까. 그는 '선수들과 소통하는 건 자신있다'고 답했다.
"뭐가 잘못됐다, 잘하고 있다 지적하는 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선수는 어린 아이가 아니다. 그게 왜 잘못됐고, 어떻게 교정해야하는지, 선수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하고 설득할줄 알아야한다. 내가 하는 일은 바로잡는 게 아니라 그 선수가 한창 잘 칠 때의 모습을 데이터화, 수치화 해서 (부진한)지금과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고 설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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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에도 노진혁(롯데) 박건우 박민우(이상 NC)와 함께 타격 훈련을 했다. 허일은 "내가 가르칠 레벨의 선수들은 아니다. 그냥 편하게 치고 같이 야구 이야기를 나누면서 도움이 되고자 했다"며 웃었다.
광주일고 출신 허일은 201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전체 12순위)로 롯데 유니폼을 입은 특급 유망주 출신이다. 하지만 프로에서는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통산 142경기 58안타 2홈런 23타점이란 초라한 기록만 남겼다.
허일의 진짜 인생드라마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롯데 시절 사제 인연을 맺었던 행크 콩거(현 미네소타 트윈스 코치)의 한마디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허일은 "말그대로 은인이다. 최근에도 만났다"면서 새삼 뜨거운 속내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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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고난의 시간이었다. 허일은 "뭐 공부란 걸 해봤어야지. 야구 용어는 영어가 많지만, 하는 방법을 영어로 설명한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며 "말 그대로 바닥부터 시작했다. 정말 죽자고 공부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리고 콩거 코치는 약속을 지켰다. 자신의 모교인 헌팅턴 비치 고등학교 야구팀의 코치직을 소개한 것. 그렇게 허일의 미국 야구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다행히도 행운이 따랐다. 헌팅턴 비치 고등학교에 오자마자 팀이 우승을 차지했고, 아주사 대학으로 옮긴 첫해 또 우승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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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블랜드 구단도 허일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허일은 면접 당시 인상적이었던 일화를 전했다.
"'우리는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를 영입할 돈이 없다, 그러니 오타니 같은 선수를 당신이 만들어달라'고 하더라. 다년 계약인 만큼 오랫동안 좋은 인연을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했다. 정말 고마운 말이다. 앞으로 열심히 해보겠다."
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