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창원 NC파크에서 열린 SSG와 NC의 준PO 3차전. 페디가 더그아웃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창원=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3.10.25/
[스포츠조선 김민경 기자] "우리가 에릭 페디(31,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처음 접촉했을 때 '내가 아직 그럴 나이가 아닌데 왜 나한테 한국행을 권하냐'고 화를 내기도 했다."
NC 다이노스 임선남 단장의 말이다. NC는 2023 시즌을 앞두고 페디에게 한국행을 제안했다가 잠시 머쓱한 순간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외국인 투수들에게 KBO리그는 새로운 도전보다는 커리어 마무리의 의미가 강했다. 미국에서 더는 메이저리그 도전이 어렵다고 판단한 선수들이 현역을 연장하려고 할 때나 일본프로야구(NPB)에서도 실패했을 때 한국을 찾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게 사실.
워싱턴 내셔널스 유망주 출신인 페디는 한국에 오기 직전인 2022년까지도 메이저리그에서 풀타임 선발투수로 활약한 선수였다. 2022년 시즌 성적은 27경기, 6승13패, 127이닝, 평균자책점 5.81로 좋지 않았지만, 워싱턴이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빅리그에서 선발로 키운 선수였다. 2022년 시즌을 마치고 워싱턴이 페디를 방출하긴 했어도 선수 본인은 메이저리그를 포기할 단계가 아니고, 또 전성기 어린 나이였기에 NC의 한국행 제안이 기분 나쁠 수 있었다.
NC는 그런 페디를 끈질기게 설득했다. 더는 한국이 외국인 선수들이 말년을 보내다 가는 곳이 아니고 메릴 켈리(36,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크리스 플렉센(30, 시카고 화이트삭스) 등 역수출 사례를 소개하며 빅리그에 한번 더 도전하기 위한 발판으로 KBO리그를 고려해 줄 것을 당부했다.
NC의 진정성 있는 설득에 감화한 페디는 결국 100만 달러(약 14억원) 계약에 합의했다. 지난해 30경기 선발 등판해 20승6패, 180⅓이닝, 209탈삼진, 평균자책점 2.00을 기록하며 KBO리그 MVP와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휩쓸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는 화이트삭스와 계약하면서 메이저리그로 금의환향했다.
페디를 시작으로 점점 한국에 메이저리그 경력을 자랑하는 선수들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올해 한화 이글스에서 뛴 하이메 바리아(28)는 메이저리그에서 134경기에 등판해 22승을 수확한 투수로 눈길을 끌었다. 다음 시즌에 함께할 외국인 선수들은 더더욱 화려해졌다. SSG 랜더스 투수 미치 화이트(30), LG 트윈스 투수 요니 치리노스(31), 두산 베어스 투수 콜 어빈(30), NC 다이노스 투수 로건 앨런(27) 등 어리고 메이저리그에서 제법 많은 경력을 쌓은 선수들이다. 발표는 나지 않았지만, KIA 타이거즈와 계약 합의를 마친 내야수 패트릭 위즈덤(33)은 메이저리그에서 88홈런 경력을 자랑한다.
SSG 랜더스 새 외국인 투수 미치 화이트. 사진제공=SSG 랜더스
시카고 컵스 홈런 타자 패트릭 위즈덤이 KIA 타이거즈와 계약을 눈앞에 두고 있다. AP연합뉴스
KBO리그를 향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임 단장은 "네임 벨류나 커리어로 봤을 때 10개 구단 전반적으로 외국인 선수들의 급이 올라간 느낌이 있다. 과거에는 아시아리그를 본인들이 마지막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시장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빈둥빈둥 시간을 보내는 선수도 있었고, 돈이나 많이 받고 가자는 인식이 있었다. 지금은 역수출 사례가 많이 나오면서 인식이 많이 바뀐 것 같다. 켈리가 미국에서 잘하고 있기도 하고, 미국에서 정체된 선수들이 커리어를 리바이벌의 기회로 한국을 생각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외국인 선수 시장 분위기 자체가 달라진 영향도 있는데, NPB의 극악한 생존 가능성이 KBO에 호재로 작용하기도 했다.
심재학 KIA 단장은 "마이너리그 선수들은 요즘 스플릿 계약을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있고, 어느 정도 레벨은 되는데 100만 달러 이상, 150~200만 달러를 못 받는 선수라고 하면 일본에서는 어떻게 보면 시즌이 보장되지 않지 않나. 성적이 떨어지면 가차 없이 바로 2군으로 보내는 리그니까. 100만 달러에서 120~130만 달러 정도 받는 선수들은 한국에 와서 좀 리바운딩을 해서 다시 메이저리그로 가려는 문화가 생기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임 단장은 역시 "일본에 가면 2군에 수납되는 경우가 많다. 일본은 야구 자체가 퀄리티가 있고, 또 일본은 외국인 선수를 무제한으로 보유할 수 있다 보니 외국인 선수끼리도 경쟁을 한다. 1군에서 기회를 안 주는 경우가 많아서 일본이 한국보다 돈을 조금 더 주기는 하지만, 출전 기회를 안 주니까. 커리어를 살려서 미국으로 복귀하려는 선수들은 일본보다는 돈이 적어도 한국이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출전이 보장되고, 일단 경기에 나가야 미국 스카우트의 눈에도 띌 수가 있으니까. 우리도 그래서 영입할 때 일본과 경쟁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이런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에 오면 에이스 대접도 받고, 일주일에 한번씩은 무조건 등판한다고 설명해 어필하는 경우가 조금 많다"고 밝혔다.
좋은 말을 걷어내면 NPB보다는 KBO가 조금 더 반등하기 쉬운 리그라고 볼 수 있다. 한 구단 관계자는 "일본은 선수들이 너무 잘하다 보니 성공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오히려 망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처음에는 한국을 (신입 외국인) 100만 달러 상한제 때문에 꺼리다가 막상 일본에 가보니 적응할 시간을 보장해주지 않고 냉정하게 내치니 일본에서 50~100만 달러 정도 더 벌 수 있을지라도 한국에 오는 것이다. 최근 일본보다는 한국을 거쳐 미국에 금의환향한 사례가 더 많기도 하다. 그리고 KBO를 경험한 외국인 선수들이 에이스로 대우를 잘 받다 보니까 보통 다 좋은 말을 해주는 분위기"라고 현실을 짚었다.
LG 트윈스가 새 외국인 투수 요니 치리노스와 총액 100만달러에 계약했다. 사진제공=LG 트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