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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 야구'에 이은 '셀프 조기 퇴근' 2년차 이승엽, 감독으로 농익고 있다

김용 기자

기사입력 2024-06-06 13:37


'독한 야구'에 이은 '셀프 조기 퇴근' 2년차 이승엽, 감독으로 농익고…
31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와 두산의 경기, 6회초 1사 3루 LG 구본혁의 삼진때 두산 이승엽 감독이 그라운드로 나와 판정을 확인하고 있다. 잠실=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2024.05.31/

[스포츠조선 김용 기자] 이길 수만 있다면, 또 퇴장 당해야 하나.

두산 베어스 이승엽 감독의 과감한(?) 결단이 2연속 연장 승리를 만든 것일까. 우연일까, 치밀한 전략의 결과물일까.

두산이 창원에 내려가 이틀 연속 연장 접전 끝 승리를 따냈다. 그 속에 이 감독이 모두 퇴장을 당해 눈길을 끈다.

두산은 4일과 5일 NC 다이노스를 상대로 4대1, 4대3 2연승을 거뒀다. 첫 경기는 연장 10회초, 두 번째 경기는 연장 11회초 결승점을 뽑았다.

하지만 승리의 순간, 이 감독은 더그아웃에 없었다. 일찌감치 퇴장 조치를 받았기 때문이다.

4일 첫 번째 경기는 논란이 있었다. 1-1이던 9회초 1사 후 이유찬이 볼넷으로 걸어나갔다. 이유찬이 2루 도루에 성공했다. 하지만 NC는 아웃이라며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다. 결과가 아웃으로 바뀌었다. 승부처 매우 중요한 판독이었다. 하지만 이 감독이 뛰쳐나왔다. 세이프, 아웃의 문제가 아니라 NC 유격수 김주원이 베이스를 가로막아 주루방해라고 항의한 것이다.


'독한 야구'에 이은 '셀프 조기 퇴근' 2년차 이승엽, 감독으로 농익고…
2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 두산의 경기. 6회말 무사 라모스가 솔로포를 친 후 이승엽 감독의 환영을 받고 있다. 잠실=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4.6.2/
비디오 판독 결과에 대해 항의하면 자동 퇴장. 하지만 이 감독의 눈은 정확했다. 이 감독의 항의는 5일 심판진 징계로 이어졌다. 당시 2루심은 주루 방해를 선언했지만, 구심이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NC쪽 세이프, 아웃 비디오 판독 신청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명백한 경기 운영 실수였다.

이 감독이 화가 날 만 했다. 퇴장을 당했다고 손가락질 받을 상황이 아니었다. 두산이 졌다면 정말 큰 논란으로 번질 뻔 했지만, 그래도 두산은 이겼다. 이 감독 퇴장 후 선수단이 똘똘 뭉쳐 감독의 억울함을 풀어줬다.


그 효과를 확실히 느꼈을까. 이 감독은 5일 또 그라운드로 나갔다. 2-2로 맞서던 7회 조수행이 3피트 관련 수비 방해 판정을 받고 아웃됐기 때문이다. 최근 민감한 이슈인 3피트. 이 감독은 비디오 판독을 신청한 후 결과가 번복되지 않자 다시 항의를 했다.


'독한 야구'에 이은 '셀프 조기 퇴근' 2년차 이승엽, 감독으로 농익고…
22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SSG 랜더스의 경기. 1회말 무사 1루 두산 강승호 타석 때 SSG 포수 이지영이 타자 배트에 맞자 이승엽 감독이 최수원 심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잠실=박재만 기자 pjm@sportschosun.com/2024.05.22/
하루 전만큼 억울한 것도 아니고, 7회이기에 상황이 급박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나가면 퇴장인 것도 알았다. 하지만 '촉'이 왔던 걸까. 이 감독은 알면서 더그아웃을 떠났다. 그리고 선수들은 집중력을 발휘, 귀중한 연장 승리를 가져왔다.

감독들은 가끔 팀 분위기나 경기 흐름을 바꾸기 위해 일부러 퇴장을 당하기도 한다. '명장' 롯데 자이언츠 김태형 감독은 지난달 19일 KT 위즈전 승부처 비디오 판독에 대해 격한 항의를 하고 퇴장을 당했는데, 김 감독이 나가자마자 정훈의 결승타가 터졌다. 김 감독은 "감독이 퇴장을 불사하면 더그아웃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진다"며 의도적이었다고 고백했다.


'독한 야구'에 이은 '셀프 조기 퇴근' 2년차 이승엽, 감독으로 농익고…
29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KT 위즈의 경기. 두산 이승엽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잠실=박재만 기자 pjm@sportschosun.com/2024.05.29/
'슈퍼스타' 출신 이 감독은 지난 시즌 초보 감독으로 두산을 가을야구에 진출시켰다. 그리고 감독 2년차 더욱 농익은 시즌 운영을 하고 있다. 초반 팀이 추락하자 과감한 투수코치 교체에, 불펜 연투 등 '독한 야구'로 팀을 상위권 싸움에 올려놨다. 최근 분위기가 다시 다운되자, 이번에는 '연속 퇴장'이라는 강수를 뒀다. 경기 후반 감독이 없어 승부처 팀이 흔들릴 수도 있고, 그렇게 패하면 혼자 모든 책임을 뒤집어써야 하지만 승부를 걸 때는 걸어야 한다는 승부사 기질이 퇴장으로 발휘됐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야구는 비디오 판독 항의 퇴장 등, 시간 지체를 이유로 감독이 별 문제 없이 퇴장을 당할 때 별다른 제재가 없다. 벌금, 출전 정지 등이 없으니 부담 없이(?) 퇴장 당할 수 있다. 이길 수만 있다면, 또 퇴장을 당해도 좋을 이 감독 아닐까.


김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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