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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스포츠조선 이종서 기자] 김강민(42·한화 이글스)은 프로 입단 23년 차만에 가장 낯선 출근길을 경험했다.
'원클럽맨'으로 은퇴를 하나 싶었지만, 그의 커리어에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지난 시즌을 마치고 실시한 2차 드래프트에서 한화는 김강민을 지명했다.
SSG는 누구보다 구단 색깔이 강하고, 은퇴 시기도 머지 않은 김강민을 보호선수로 묶기보다는 유망주 지키기에 나섰다. 그러나 한화는 외야 약점을 보완해줄 카드로 김강민이 적임자라는 판단을 했다. 김강민이 여전히 1군 선수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고, 오랜 시간 뛰면서 쌓인 남다른 노하우는 젊은 선수 성장에 도움이 될 것으로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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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청백전을 하고, 구장 곳곳을 누볐던 만큼, 3루 더그아웃은 정작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출근길만큼은 어색함이 가득했다. 김강민은 "이상했다. 구단 버스를 타고 오는 게 가장 어색했다. 예전에는 여기서 경기를 하면 집에서 자는데 호텔에서 잔다. 그런 어색함이 컸다"고 했다.
이날 김강민은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김강민도 '친정 팬'을 향한 인사를 나중으로 미뤄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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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장 확실하게 인사를 할 수 있는 건 타석에 서야만 했다. 그러나 김강민이 1번타자로 들어갔고, 공교롭게 직전 이닝에서 1번타자가 아웃됐다. 8회와 9회 두 차례 밖에 이닝이 남지 않은 상황. 최소 3명의 타자가 출루를 해야 김강민이 9회초 2사에 간신히 기회를 얻게 된다.
현실이 됐다. 8회초 페라자의 안타와 노시환의 홈런이 나왔다. 9회초 2사 상황. 타석에는 최재훈이 섰다.투수 조병현이 2스트라이크를 잡으면서 김강민의 인사는 다음으로 밀리는 듯 했다. 그러나 이후 4연속 볼로 볼넷이 나왔고, 김강민이 타석에 서게 됐다.
김강민이 대기 타석에서 걸어 들어가자 양 팀 관중석은 박수와 환호가 나왔다. 김강민은 헬멧을 벗고 관중석을 향해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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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민은 경기를 앞두고 "경고를 받더라도 인사를 하고 싶다"고도 했다. 구장 곳곳에 인사를 했지만, 피치클락에 걸리지 않았다. 이날 주심을 맡은 이계성 심판위원의 센스가 빛났다. 홈플레이트 먼지를 털어내면서 김강민에게 시간을 벌어줬다.
지난 20일 서울고척돔에서 열린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개막 경기에서 나온 장면이었다. 김하성(샌디에이고)이 한국팬 앞에서 인사를 충분히 할 수 있도록 당시 주심이었던 랙스 박스데일 심판이 홈플레이트 먼지를 천천히 털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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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심판위원의 센스 있는 배려 덕분에 김강민은 피치클락 위반 없이 충분한 시간을 벌어 관중석 곳곳에 인사를 할 수 있었다. 김강민은 "심판께서 천천히 정리하는 게 느껴지더라. 고마웠다"고 했다.
최재훈의 타석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바라봤던 순간. 김강민은 "(최재훈 타석에서는) '제발'이라고 응원하면서 보고 있었다. 정말 타석에 들어가서 치고 싶었다. 만약 오늘 타석에 들어가지 못하면 수비에서라도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오늘 타석에 서서 제대로 인사를 드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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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중견수 뜬공. 김강민은 "응원을 해주시니 결과를 내고 싶었다. 안타를 치고 싶었는데 그 부분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조병헌의 볼이 좋았다. 볼이 좋아서 만만하게 칠 수는 없었다"고 후배의 기를 살려줬다.
멋진 안타 한 방은 나오지 않았지만, 타석에서 들은 한화와 SSG 팬의 응원가는 잊지 못할 순간으로 남게 됐다. 김강민은 "뭉클했다. 다른 팀이지만 선수 한 명을 위해서 응원가를 불러준다는 게 정말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잊지 않은 '친정팬', 그리고 앞으로 응원할 새로운 팬. 또 모두에게 충분하게 인사할 시간을 준 심판까지. 모두가 김강민을 바라보며 가슴 벅찬 명장면을 만들었다.
인천=이종서 기자 bellstop@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