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 감사합니다" 35세 노장 검객의 뜨거운 눈물…마냥 웃던 그를 울린 한마디 [인터뷰]

믹스트존에서 만난 한국 남자 플뢰레 금메달리스트들. 김영록 기자

[항저우(중국)=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지켜봐주고 뒷바라지해줘서…감사합니다."

은퇴를 결심하고 나선 무대. 기적 같은 경기의 연속이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아시안게임 2연패를 거머쥐었다.

27일 중국 항저우 전자대학 체육관. 한국 남자 펜싱 플뢰레 대표팀은 개인전 노메달의 굴욕을 딛고 단체전 결승에 올랐다.

그리고 홈그라운드의 압도적인 응원을 등에 업은 중국을 상대로 극적인 역전승을 연출하며 승리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 이은 대회 2연속 우승이다.

경기 후 만난 남자 대표팀(허준 하태규 이광현 임철우)은 뜨거운 감동에 차 있었다. 에이스 허준이 다리 부상을 이겨내고 마지막 45점째를 따내는 순간 심판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무대 위로 뛰어올라와 얼싸안던 네 사람이다.

앞서 개인전에는 임철우와 이광현이 출전했지만 메달 없이 탈락했다..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 이후 무려 45년만의 개인전 노메달 굴욕이었다.

더구나 이번 대회는 허준의 은퇴전 마지막 대회였다. 때문에 단체전에 임하는 선수들의 각오는 남달랐다.

한국은 태국과 홍콩을 연파하며 결승에 올랐다. 이에 맞선 중국은 준결승에서 '최강' 일본을 꺾고 결승에 올라왔다.

한국은 경기 초반 중국의 기세에 밀려 20-25로 밀렸다. 하지만 6라운드에 나선 허준이 무려 6연속 득점을 따내며 27-27 동점을 만든 채 라운드를 끝냈다. 이어 8라운드 이광현이 40-36 리드를 잡았고, 마지막 주자 허준이 다리 경련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5점을 따내며 승리를 완성했다.

경기 후 만난 허준의 얼굴에는 폭발할 듯한 기쁨과 더불어 복잡한 감정이 어우러져있었다.

믹스트존에서 만난 한국 남자 플뢰레 금메달리스트들. 김영록 기자

허준은 "마지막 시합이라 원없이 했다. 후회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이겨서 너무 기분이 좋고,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착잡하다. 이제 실감이 나고, 섭섭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5년전에도 우승을 확정지으며 포효했던 그다. 이번에도 승부에 종지부를 찍은 주인공은 허준이었다. 허준은 "동점만 만들면 동생들이 해줄거라 믿었다. 덕분에 마무리를 잘할 수 있었다"면서 "(동료들이 달려드는 걸 보면서)솔직히 무서웠다. 자카르타 때 맞아서 입술이 부었었다"며 멋쩍게 웃었다.

9라운드 도중 다리 경련에 대해서는 "지고 있었으면 따라잡을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기고 있었다. 중국 선수가 급하게 들어오니까 버티는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버티려고 했는데, 모양새가 좋지 않아 공격적으로 45점을 찍는 걸로 바꿨다"고 돌아봤다.

'가족에게 한마디'를 요청하니 얼굴이 씰룩하며 이내 뜨거운 눈물이 어렸다. 허준은 "그동안 뒷바라지 해준 가족에게 고맙다. 앞으로 더 효도하고, 아내와 잘 사는 모습 보이겠다. 사랑한다. 감사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믹스트존에서 만난 한국 남자 플뢰레 금메달리스트들. 김영록 기자

임철우는 "개인전 탈락으로 힘들어서 숙소에만 있었다"면서 "형들과 한마음으로 이겨낸 단체전이다. 지난 아픔을 다 씻어낸 것 같다"며 기뻐했다. 특히 우빈 등 중국의 장신 선수들에 대해 "영상을 많이 보며 연습했다. '발펜싱'이 주효했다"고 강조했다.

하태규도 "한방에 역전을 바라기보다 하나씩 따라붙고 동점을 만들고, 앞으로 나가고자 했다. 중국의 홈어드밴티지는 예상했지만, 생갭다 심했다. 중요한 상황이라 강하게 어필했다"고 설명했다.

이광현은 "형들이 은퇴하기전인 지금이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간 훈련도 단체전에 초점을 맞췄다"면서 "다함께 기쁨을 느낄 수 있어 더 소중하다"고 강조했다.


항저우(중국)=김영록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