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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체인지업이 위험한 것은 한복판으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느린 직구도 마찬가지다. 제구를 갖춘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적절히 섞어 타자의 배팅 타이밍을 빼앗는 능력이 탁월하다면 느린 공도 빠르게 보일 수 있지만, 그건 일종의 눈속임이기 때문에 '그 타이밍'이 맞지 않을 때는 난타를 당하기 일쑤다.
삼진을 7개나 잡을 정도로 신시내티 타자들은 류현진의 느린 공에 타이밍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95마일 이상의 타구, 즉 하드히트가 2개 밖에 없었다. 상대 신시내티의 100마일 강속구 선발 헌터 그린이 11개의 하드히트를 얻어맞은 것과 비교하면 '빈티지 류(Vintage Ryu)'의 진가를 알 수 있다.
MLB.com은 이날 류현진의 승리 소식을 전하며 '오늘 경기는 전성기의 류현진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다른 투수들처럼 빠른 강한 공을 던지지도 않고 감탄을 자아내는 구위를 갖고 있지도 않다. 그러나 그는 영리하다. 상대 타자의 스윙과 욕심을 누구보다 잘 읽기 때문에 젊고 공격적인 타자들에게는 매우 위험한 투수'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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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구 구사 비중을 부쩍 높인 것은 본인의 구종별 제구력 수준과 상대가 누구냐에 따른 선택에 따른 패턴 변화로 보여진다. 아직 4경기 밖에 안 던졌기 때문에 스타일을 바꿨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4경기에서 류현진의 직구 구속은 평균 88.3마일(142.1㎞)에 머물고 있다. 재활 마지막 등판인 지난 7월 22일 트리플A에서 던진 88.4마일보다도 오히려 감소했다. 최고 구속도 이날 신시내티전에서는 89.8마일로 90마일을 넘기지 못했다. 류현진은 이와 관련해 "상대가 공격적으로 나올 것으로 보고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만들려고 했다"고 했을 뿐, 구속에 관한 코멘트를 하지는 않았다.
류현진의 직구 평균 구속은 2019년 90.7마일, 2020년 89.8마일, 2021년 89.9마일, 그리고 팔꿈치 수술 직전인 2022년에는 89.3마일이었다. 팔꿈치 상태가 좋지 않았던 지난해와 비교해도 1마일이 느리다.
하지만 주목할 게 있다. 직구의 분당 회전율이 2048회로 2019년 이후 최고치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류현진의 분당 회전율은 2019년 2084회로 커리어에서 가장 높았고, 이후 1995회→1944회→1959회로 급감했다. 회전율을 전성기 수준으로 회복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공끝의 움직임, 타자가 느끼는 체감 속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류현진의 손의 악력, 손가락이 채는 힘이 살아난 것이다.
물론 류현진의 직구 스피드가 올시즌 말고 내년 이후 어떻게 달라질 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적어도 구속에 관해 지금 류현진은 별로 신경쓰는 것 같지는 않다.
이날 현재 올시즌 100개 이상의 공을 던진 투수 545명 가운데 류현진의 직구 평균 구속은 하위 2%에 해당한다. 류현진과 구속이 비슷한 선발투수로 리치 힐(88.3마일), 코리 클루버(88.1마일), 카일 헨드릭스(87.6마일), 애덤 웨인라이트(86.1마일) 등이다. LA 다저스 시절 동료였던 잭 그레인키(89.6마일)도 90마일을 안 넘는다. 이들 모두 류현진과 같은 1980년대 생 노장들이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