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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한판이면 충분했다.
이 감독은 발목 인대 파열 부상 복귀 후 줄곧 대타로 활용하던 박병호를 4번 지명 타자로 선발 출전시켰다. 복귀 후 잇달아 홈런포를 쏘아 올린 박병호지만, 정상적인 주루 플레이가 되지 않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선발 기용은 과감한 선택이었다. 상대 입장에선 껄끄러운 박병호를 거르고 다음 타자와 승부해 병살을 유도하는 작전도 노려볼 만했다. 박병호는 이날 병살타 1개를 포함, 4타수 무안타에 그쳤지만, 3번 알포드는 멀티히트, 5번 장성우는 볼넷 2개를 골라냈다. 타석에 서 있는 것 만으로도 상대에 압박감을 줄 수 있는 '박병호 효과'가 어느 정도 통한 모습이었다.
3-0으로 앞서던 4회초엔 선발 소형준이 흔들렸다. 1사 2루에서 나성범, 소크라테스 브리토에 연속 안타를 내준 소형준은 김선빈까지 볼넷으로 내보내며 2사 만루, 역전 위기에 처했다. 타석엔 지난 7일 소형준을 상대로 투런포를 쏘아 올린 황대인이 섰다. KT 불펜에선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가 몸을 풀고 있었지만, 이 감독은 소형준을 믿는 쪽을 택했다. 소형준은 황대인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이닝을 마쳤다. 7회초엔 1사 1, 2루에서 이어진 나성범 타석에서 불펜 준비를 마친 웨스 벤자민 대신 김민수를 그대로 밀어붙였고, 김민수는 두 타자를 잘 처리하면서 믿음에 보답했다.
이런 이 감독의 결정과 믿음은 데이터로도 드러난다. 정규시즌 데이터에서 황대인이 데스파이네에 3할 중반 타율을 보였으나 소형준에겐 2할 중순에 머물렀다. 김민수는 이창진 나성범에 각각 4타수 무안타, 5타수 무안타로 강했다. 비록 큰 무대지만 두 투수가 강점을 그대로 이어갈 것이란 믿음과 뚝심은 결국 결과로 증명됐다.
창단 후 4연 연속 꼴찌였던 KT는 2019년 이 감독 부임 이후 강팀으로 변모했다. 취임 첫해 5강 싸움을 펼친데 이어 정규시즌 2위(2020년)-통합우승(2021년) 등 역사를 써내려 간 이 감독의 야구도 점점 진화하는 모습이다. KT가 꿈꾸는 '원 모어 매직'을 이 감독이 첫판부터 여지없이 보여줬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