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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스포츠조선 나유리 기자]5월 20일 잠실구장. 김재환이 자신이 친 타구에 발등을 맞는 긴급 상황이 발생했다. 그때 두산 베어스 필드닥터와 트레이닝코치가 함께 김재환의 부상 상태를 살폈다. 더 자세한 발등 상태를 보기 위해 응급실로 이동해 X-레이 촬영을 하는 과정까지 모두 동행했다. 마침 그날 해당 병원 응급실 당직은 외과 전문의. 두산 필드닥터는 "죄송하지만 제가 베어스 팀닥터인데, 정형외과 전문의입니다. 혹시 사진을 봐도 될까요?"라고 양해를 구했다. 타 병원에서는 실례가 될 수 있는 상황. 상대 의사가 흔쾌히 이해하면서 두산의 필드닥터가 김재환의 X-레이 촬영 사진을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 트레이닝코치, 선수와 부상 정도에 대한 논의를 마쳤다. 다행히 심각한 부상이 아니라 김재환은 부상자명단에 등록되지 않고 이튿날 선발 라인업에서 빠지는 수준으로 컨디션 조절에 들어갔다.
-'필드닥터'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하다.
본업은 당연히 병원 진료다. 수술도 하고, 병원 업무도 보고. 대신 남는 시간을 야구단에 전부 쏟고있다. 홈 경기가 있을 때는 거의 다 나온다. 야구장에 도착하면 곧장 트레이닝실에 들어가서 의사 가운을 챙기고, 코치님들이 선수들의 몸 상태나 아픈 부위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신다. 체크 해달라고 말씀하시면, 제가 들고 다니는 초음파를 가지고 가서 부상 정도를 살핀다. 코치님들과 상의해서 치료 방침을 결정하고, 심각한 경우에는 병원 정밀 검사 일정도 잡는다. 선수들의 부상 정도는 나 뿐만 아니라 트레이닝코치님들과 선수들의 의견까지 다 종합해서 판단한다. 사실 바쁘기는 스프링캠프가 가장 바쁘다. 올해는 미야자키 2차 캠프에 4일 정도 머물렀었는데, 선수들이 캠프에서 워낙 열심히 훈련을 하다 보니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근육통부터 시작해서 잔부상이나 통증이 없는 선수는 없다고 보면 된다. 캠프에서는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선수들의 치료를 도와주다가 하루가 지나간다.(웃음)
원래 어깨와 팔꿈치가 전공인 정형외과 전문의다. 건국대에서 스포츠의학으로 펠로우를 시작했고, 박진영 교수님 밑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원래 스포츠를 워낙 좋아한다. 2015년 우리카드 배구단 팀닥터를 시작으로 관련 일을 맡게 됐다. 당시 라트비아에 가서 외국인 선수 메디컬 체크를 하는 게 첫 업무였다. 4~5일뒤 당장 라트비아를 가야하는데 진료 예약이 꽉 차있어서 하루만 휴가를 내고, 금요일 오전에 서울에서 출발해 일요일 오후에 돌아왔다. 직항이 없어 경유 비행편으로.(웃음) 사실상 라트비아에서는 12시간만 있었다. 배구단 팀닥터를 맡으면서 내가 의학적으로 알고있던 지식이 실제와는 많이 다를 수 있고, 적용하는데 무리가 있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후 현재는 두산과 KB 배구단 팀닥터를 맡고 있다.
-현장에서 가장 많이 느낀 부분이 어떤 것인가.
사실 내가 배우는 게 정말 더 많다. 우리가 선수들을 보는 모습은 플레이하는 단편적인 모습이 전부인데, 준비 과정이나 재활, 치료 과정을 보면 엄청나다. 예전에는 어떤 부위가 아프면, 어떤 수술을 하면 되고 그럴 경우 복귀율이 어느정도 되겠다는 수치가 입력되어 있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막상 선수들을 직접 보니 그런 이론들이 현실에서 너무 동떨어져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의 스포츠의학은 어느정도 발전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까.
한국은 아직 '스포츠의학'이라는 분야가 따로 없다. 팀 전담 의사를 하다보면 가장 많이 보는 흔한 부상이 근육 파열이다. 그런데 근육 파열은 명확한 '과'가 정해져있는 부상이 아니다. 그냥 통상적인 스포츠의사들이 진류를 주로 한다. 스포츠의학 학회에 나가면 각종 전문의들이 모두 모인다. 정형외과, 외과, 재활의학과, 성형외과, 내과, 가정의학과까지 다양한 의사들이 모여 지식을 나눈다. 한 분야만 봐서는 안되는 분야다. 다른 과들도 같이 공부하고 있다. 미국 같은 경우에는 체계가 확실히 잡혀있다. 프로 스포츠구단의 경우 지역 병원 연계를 통해 팀 주치의는 물론이고, 메인 주치의 밑에 분야별 여러명의 의사들이 그룹을 만들어서 한 팀을 담당한다. 논문도 정말 엄청나게 많고, 저명한 스포츠의학 전문의들 같은 경우는 본인들이 양성한 후배들과 함께 활발한 연구 활동도 진행하고 있다. 연구실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그래도 배구 논문보다는 야구쪽 논문 개수가 훨씬 많다. 특히 미국, 일본에서 야구와 관련한 연구 논문이 많이 나와서 공부할때 도움을 많이 받는다.
-사실상의 '투잡'이다. 퇴근 후에 또다른 업무가 시작되는 셈인데 힘든 부분은 없는지.
즐겁다. 재미있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두산팬이 아니다.(웃음) 어느 팀인지 밝히지는 않겠다. 그러나 야구장에 나오는 게 정말 즐겁다. 결혼을 늦게 해서 아기가 아직 어리다. 첫째가 21개월이고, 아내가 둘째를 임신 중이다. 병원 업무, 야구단 업무 뿐만 아니라 학회도 나가고, 겨울에는 배구장에 간다. 조만간 이천 2군 구장도 한번 다녀오려고 한다. 집에 매일 늦게 들어가는데 아내가 다 이해를 해준다. "오빠가 즐겁고 행복한 일을 계속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고, 신경쓰지 말라고 하니까 더 고맙고 열심히 하고 있다.
-조심스러운(?) 질문이지만 필드닥터로서 구단에서 받는 월급 혹은 금전적 이익이 있나.
없다.(웃음) 하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성취감이 너무 크다. 지난 2~3년간 종종 두산 선수들을 진료해주면서 더 열심히 하게끔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많이 들었다. 두산 선수들은 매너도 좋고 저말 착하다. 치료를 받으면 어쩔 수 없이 서로 대화를 하게 되는데 선수들의 의지가 대단하다. "정말 너무 아프다"고 하면서도 "무조건 낫게 해주세요. 무조건 나가야 합니다. 무조건 뛰어야 합니다"하는 선수들이 많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더 잘해주고 싶고,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다. 당연히 무리하면 안되지만.(웃음) 그래도 그런 모습들이 의료인인 나에게 원동력이 된다. 야구장에서 의학적인 개념을 배우는 것은 아니지만, 현장에서 보고 느끼는 것은 매일 다르다. 점점 더 내가 알고있던 개념들이 현장 경험을 통해 정립되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스포츠의학 전문가로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부상 방지 프로그램'을 정립하는데 관심이 많다. 선수들이 유소년때부터 관리를 잘해서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게끔. 부상을 최소화하면서 본인의 능력치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주고 싶다. 그런 시스템을 유소년부터 프로까지 단계별로 구축하는 게 나의 큰 꿈이다.
잠실=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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