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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ML 루키 김광현이 본지 기사 중 가장 기억 남은 것은?

권인하 기자

기사입력 2020-03-20 07:02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김광현. 연합뉴스

[스포츠조선 권인하 기자]지난달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가 한창 진행중이던 미국 플로리다를 찾았다. 스포츠조선 창간 30주년을 맞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김광현(32)에게 그동안 읽은 본지 기사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냐고 물었다. 김광현은 한참을 생각했다. 시즌 첫 등판, 첫 승 등 자신에게 감격을 안겨준 첫 경험. 한국시리즈 우승 등 팀에 중요한 순간. 혹은 개인 성적에 대한 기사이지 않을까 했는데, 대답은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머리카락 기부 기사'였다.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던진 2018시즌 첫 등판을 언급했다.

김광현은 팔꿈치 수술을 받고 재활을 한 2017년 머리카락을 길렀다. 처음엔 재활을 마친 뒤 복귀하는 자신에게 선물하겠다는 마음으로 장발 헤어스타일을 고집했는데 트레이 힐만 전 SK 와이번스 감독이 소아암 환우를 돕기 위해 모발을 길러 기부한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도 동참하기로 했었다.

김광현은 2018년 3월 25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전에 장발을 하고 선발 등판했었다. 533일 만에 1군 마운드에 오른 그는 5이닝 6탈삼진 무실점 호투로 복귀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당시 긴 머리카락을 흔들며 역동적으로 던지던 김광현의 모습은 야구팬들에게 큰 화제가 됐다. 김광현은 복귀전을 마친 다음날 미용실을 찾아 머리카락을 잘랐고, 이를 소아암 어린이들을 위한 가발제작 헤어솔루션 업체에 전달했다.

많은 기사들 중에 왜 이 기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을까.

김광현은 "내가 모발을 길러 기증을 한 것은 기르는 것 자체로 좋은 일이 된다는 것을 모르시는 분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라면서 "내가 좋은 성적을 거둔 것보다 이 기사를 통해 좋은 일을 더 알릴 수 있게 돼 감사했다"고 했다. 김광현의 마음 씀씀이를 느낄 수 있었다.

올해 김광현은 큰 도전을 한다. 줄곧 한국 최고 좌완 중 한명으로 꼽혔지만 적잖은 굴곡이 있었다.

2006년 '괴물' 류현진이 한국 프로야구를 휩쓴 뒤 2007년 또 한명의 '괴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프로에 뛰어들었으나 정규시즌에서는 이렇다할 활약을 못했다. 그저 그런 신인이라는 평가속에 묻히는 듯했다. 하지만 2007년 두산 베어스와의 한국시리즈 3차전서 쾌투하며 야구팬들에게 김광현, 이름 석자를 확실히 박았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일본 킬러'로 등극, 그해 16승을 거두면서 리그 에이스가 됐다.

2010년엔 17승(7패) 평균자책점 2.37로 MVP까지 거머쥐며 승승장구. 하지만 이후 어깨 부상으로 인해 2년간 제 활약을 못했다. 2014시즌 13승(9패)을 거둔 뒤 해외진출을 노렸으나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와 입단 협상이 결렬됐다. 자존심이 상했다. 재도전을 하리라 이를 악문 시기다.


2016시즌 후 FA가 되면서 4년간 85억원에 SK와 계약했던 김광현은 팔꿈치 수술을 받고 2017년을 통째로 쉬었지만 2018년 11승을 거두면서 재기에 성공했고, 지난해엔 17승으로 다승 공동 2위에 오른 뒤 다시 한번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했다. 2년간 800만달러에 세인트루이스 유니폼을 입었다.

프로 14년차가 된 베테랑이지만 메이저리그에선 루키다. 2007년 타지 못했던 신인왕도 도전할 수 있다. 실제로 세인트루이스 코치들이 훈련 때 김광현에게 "베이비"라고 부르기도 했다.

김광현이라 해도 처음 겪는 메이저리그는 낯설었다. 개인 훈련 때는 선수들이 일찍 나온다는 얘기에 야구장 문도 열지 않은 아침 6시30분에 홀로 출근하기도 했고, 개인 훈련을 마친 뒤 언제 돌아가야할지 몰라 1시간 넘게 다른 선수들의 귀가를 기다리기도 했다. 김광현은 류현진에게 전화를 걸어 언제 가야하느냐고 몇번이나 물었다. 개인훈련보다 단체훈련이 익숙한 김광현에겐 색다른 경험이었다.

내셔널리그라 투수도 타격을 해야하는데 SK 캠프에서 최 정에게서 배트를 한 자루만 빌려온 것도 화제였다. 하지만 그에겐 이런 작은 해프닝도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즐거움이었다. 왜냐? 꿈에도 그리던 빅리그니까.

김광현은 "새로운 것을 맞이한다는 것은 힘든 일일 수도 있고 좋은 일일 수도 있다. 난 기분좋게 왔다. 팬분들이나 주위분들이 응원해주시는 만큼 새 분위기에 잘 적응하도록 내가 한발 더 다가가겠다"며 "메이저리그에선 신인이니까. 신인같은 마음가짐으로 다가가겠다"라고 다짐했다. 영어를 배우겠다는 생각도 강했다. "앞으로 일상 대화 정도는 할 수 있도록 영어 공부를 하겠다. 나아가 영어로 인터뷰를 할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하겠다"고 했다.

월드시리즈 우승에 대한 꿈도 가지고 있다. 김광현은 "세인트루이스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첫번째다. 이 선수 때문에 우승했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했다. 김광현은 2007년과 2008년, 2010년, 2018년 등 총 4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었다. 한손에 우승반지를 다 끼기엔 하나가 모자란다. 메이저리그에서 5번째 우승 반지를 끼는 것이 목표 중 하나다. 한국인 메이저리거 중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가지고 있는 이는 김병현 뿐이다. 2001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2004년 보스턴 레드삭스 등 두 차례 월드시리즈 우승경험이 있다. 코리안 최초 메이저리거였던 박찬호나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 등 메이저리그를 호령했던 선수들도 경험하지 못했던 월드시리즈 우승이다.

김광현은 "SK에서는 최고 포수 박경완 선배님과 함께 했는데 여기 와서도 최고 포수인 (야디에르)몰리나가 있다. SK가 우승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라며 우승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김광현은 "선발이 최상의 시나리오이긴 하지만 팀에서 필요한 위치에서 잘해야 한다. 팀에서 주는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고 말했는데 현재까지는 선발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사타구니 통증으로 조금 쉬어가기도 했지만 시범경기 4경기서 8이닝 동안 무실점의 훌륭한 성적을 올리면서 선발 자리에 조금씩 다가섰다. 김광현이 호투할 때마다 현지 언론들 역시 김광현의 슬라이더나 커브 등에 대해 극찬을 하면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코로나19로 그의 도전은 '잠깐 멈춤' 상태이긴 하지만 "나 자신에게 창피하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진심을 담은 각오로 한발 한발 꿈에 다가서고 있다.
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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