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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10대1인터뷰]김경문 감독, "그때 류현진, 이승엽과 눈 마주치지 않은 이유?"

정현석 기자

기사입력 2020-03-20 06:05


김경문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13일 서울 압구정로에서 진행된 스포츠조선과의 창간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20.03.13/

한국 야구 100년사에 가장 짜릿했던 한 순간을 꼽는다면?

각자 산재된 추억에 따라 다양한 장면들을 떠올리겠지만, 보편적 측면에서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건너 뛰고 이야기를 전개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전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았던 올림픽 금메달. 결과보다 과정이 더 짜릿했다. 숱한 위기를 똘똘 뭉쳐 극복하는 과정이 전설적 스토리로 남았다.

한국 야구사에 영원히 남을 역사의 한 자락. 불멸의 결과를 이끌어낸 주인공은 대표팀 김경문 감독이었다. 2008년, 베이징에서의 김경문 감독은 야구를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리더십의 한 단면을 생각하게 했다.

대한민국에서 야구 제일 잘 한다는 선수들만 모아놓은 국가 대표팀. 백가쟁명의 자존심들을 하나의 목표 속에 녹여냈다. 비결은 믿음, 그리고 흔들림 없이 전진할 수 있었던 뚝심이었다.

믿음이 꽃 피워낸 전설의 탄생. 벌써 12년이 흘렀다. 한 세대가 바뀌는 세월. 그 끝자락에서 뚝심의 명장은 다시 한번 한국야구를 위해 '독이 든 성배'를 기꺼이 들었다.

정상 개최된다면 오는 7월 24일로 예정된 도쿄올림픽에서 김 감독은 한국야구를 등에 업고 또 한번 승부사로 변신한다.

코로나19 여파로 안팎이 어수선한 가운데서도 조용히 올림픽을 준비중인 김 감독을 만났다. 김 감독과 함께 오랜기간 호흡한 스타플레이어와 지도자들이 10대1 인터뷰어가 돼 김 감독에게 촌철살인의 질문을 던졌다. 김 감독은 친숙한 이름의 야구 동료가 묻는 질문에 때론 환한 미소로, 때론 진지한 표정으로 답을 이어갔다. 인터뷰를 관통하는 화두는 역시 선수에 대한 진심 어린 '믿음'과 '감사'의 마음이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김경문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13일 서울 압구정로에서 진행된 스포츠조선과의 창간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20.03.13/
-벌써 12년전인데 정말 궁금했습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캐나다전(2008년 8월 15일)서 9회 1사 1,3루에서 왜 저를 안 바꾸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그 때 바뀔 줄 알았거든요.(당시 1-0으로 앞선 9회말 류현진이 안타 2개를 맞아 1사 1,3루의 위기에 몰렸지만 김 감독은 투수를 바꾸지 않았다. 결국 류현진은 후속타자들을 얕은 우익수 플라이와 중견수 플라이로 막아내고 완봉승을 거뒀다) 【토론토 블루제이스 류현진】


바꿀 생각은 조금도 없었어요. 불펜이 누가 나오든 이날 선발 류현진 투수보다 더 자신 있게 막을 수 있을 거란 확신을 할 수 없었거든요.

감독은 너무 잘 던지는 투수를 보면 이런 생각을 해요. '이 경기는 네가 가져라'. 그날도 현진이가 너무 잘 던지면서 끌고왔으니 끝을 보라는 생각을 했죠.

(잠시 생각에 잠긴 뒤) 그 땐 그랬던 것 같아요. 나는 그때 참 야구를 '참 겁 없이' 할 때였어요. 걱정보다는 내 생각이 맞다고 생각하면 그냥 밀어붙였던 것 같아요. 선수들, 특히 투수들이 잘해줬기 때문에 배짱을 부릴 수 있었죠.(웃음)

저는 포수 출신이라 투수의 표정을 봐요. 하지만 그날은 현진이를 안 봤던거 같아요. 잠시 숨만 고르고 지나갔지요. 그렇게 시간이 지났는데 결과가 잘 나와서 다행이었죠. 정말 잊지 못할 한 장면이었어요. 현진아,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정말 고맙다. 새 팀에서 아프지 말고 좋은 결과 내도록 아침 마다 중계보면서 응원할게, 파이팅!

-이번 올림픽에서도 꼭 금메달 따시길 기원합니다. 제가 이번 대회에는 출전하기 힘들어졌는데 만약 제가 대표팀에 포함돼 올림픽에 출전한다면 일본전에 선발로 내실 생각이셨나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김광현】

광현이가 프리미어12 대회 기간 중 저를 찾아온 적이 있어요. 해외 진출이 매스컴을 통해 불거진데 대해 "죄송합니다. 팀분위기에 누를 끼쳤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괜찮다….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어요. 결국 원하는 대로 가게됐고, 시범경기 다 봤는데 좋더라고요. 광현이 장점은 굉장히 공격적이라는 점이에요.

광현아, 우선 메이저리그 진출을 축하한다. 대표팀에 있었다면 일본전에 무조건 선발 나가야지. 경기장에서 모습이 보기 좋았고, 부상 없이 한 시즌 잘하길 바란다. 중계 있을 때마다 응원하면서 기를 보낼게.

-베이징올림픽 일본과의 준결승전 8회 제가 대기타석에서 내심 교체를 바라는 눈빛으로 감독님을 쳐다본 순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감독님께서는 일부러 안 보신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라운드만 계속 응시하고 계셨는데 그 순간 혹시 교체를 바라는 제 마음을 눈치 채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승엽 KBO 홍보대사】

슈퍼스타라고 어떻게 국제대회 마다 다 잘할 수 있겠어요. 이전 대표팀에서도 너무 잘했고, 그 당시도 후배 다독거리면서 충분히 제 역할을 잘했던 선수였던걸요. 감독도 그런 게 있어요. 너무 이기고 싶고, 잘하고 싶을 때 오히려 경기가 잘 안돼요. 승엽이도 사랑하는 후배들과 함께 더 잘해서 이기고 싶은 생각이 많았을 거란 말이죠. 당시 팬들로부터 야유를 받고 그러니까 위축될 수 있었죠.

저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만약 승엽이가 약해져 빠지면 내 싸움도 지는거라고…. 저는 그냥 한마디만 했어요. "중요할 때 2게임만 해다오."

내심 마지막 2경기에 (한 방을) 바라고 있었지요.(웃음) 결국 거기서 해주니까 뭐랄까요. 이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뻥 뚫리는 느낌? 그걸 처음 느꼈어요. 그러면서 생각했죠. '나도 잘 참았다.' 좋은 홈런이 나왔을 때 대놓고 기뻐할 수는 없었지만 사실 너무나 기뻤어요. 그러면서 야구로부터 또 하나를 배웠지요. 늘 승리가 급한 게 감독이지만 또 믿어야 하는 것도 감독이란 사실을요. 고맙다 승엽아.


김경문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13일 서울 압구정로에서 진행된 스포츠조선과의 창간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20.03.13/
-도쿄올림픽을 앞둔 예감, 베이징 때와는 다르신가요? 감독님이 숱하게 콜을 주셨는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합류하지 못한 저에 대한 솔직한 심경도 궁금합니다. 【한화 이글스 정민철 단장】

지금 멤버가 강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대한민국 대표팀은 약할 때 뭉치는 강한 힘이 있더라고요. 국제대회에서 늘 새로운 슈퍼스타들이 나왔듯 이번 대회에서도 또 다른 스타가 나와줄거라 믿어요. 프리미어12에서 일본에 지면서 선수들도 느낀 게 있잖아요. 도쿄에서 만나면 선수들도 더 준비하고 올거에요. 선수들이 뭉쳐있다고 느낄 때 감독은 자신감이 더 생겨요. 일본 투수가 좋고 강한건 인정하지만 극복하지 못할 정도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아요. 요즘처럼 힘들 때 스포츠의 또 다른 힘이 필요하죠. 선수들이 하모니를 이뤄서 국민들에게 큰 힘을 드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단장님으로 영전해 가셔서 (대표팀 투수코치를) 못하게 된거잖아요. 인연이란 게 있는데 좋은 일로 가신 거니까요. 올시즌 현장에서 한용덕 감독을 많이 도와주셔서 좋은 성적 내기를 바랍니다.

-감독님 자리가 스트레스를 참 많이 받으실 거 같은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취미나 해소법이 있으신가요? 【SK 와이번스 박종훈】

지난 14년간 감독을 해오면서 느낀 점 하나는 현장에서 느끼는 스트레스가 술로는 해소가 안 된다는거에요. 적절한 취미가 필요하죠. 산을 좋아하는 사람 산에 가야하고, 음악을 들을 수도 있고요. 나는 조용한 음악을 좋아해요. 가까운 지인들과 골프를 치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고요. 감독 코치들 쉬는 날 골프 치는걸 나쁘게만 안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류현진에 이어 이제는 김광현이 빠진 현 시점에서 좌완 에이스와 우완 에이스를 보유해서 준비해야 되는데 어떤 선수를 생각하고 계신지요? 【LG 트윈스 류중일 감독】

작년에 구창모 선수는 양의지 포수가 가면서 많이 좋아졌더라고요. 대표팀에 있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기대하는 친구에요. 이승호 선수, 비록 프리미어12 때 맞았지만 마운드에서 가지고 있는 능력치가, 기대치가 높은 선수라고 생각해요.

두 선수 외에도 많은데 이름을 말할 수는 없고, 올해 혜성 같이 등장하는 선수들을 기대하고 있어요. 특히 한국 야구의 미래를 이끌 젊은 투수들,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열심히 지켜보고 있으니 힘을 내기 바랍니다.

-상황이 이래서 시범경기도 취소되고 선수들 컨디션 확인이 어려우실 텐데 걱정이 많이 되실 것 같습니다. 어떻게 선수들을 확인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LG 트윈스 김현수】

(웃음)감독이 되면 시합이 아니더라도 어떤 관심을 가져서라도 선수를 체크하게 돼 있어요.

현수야, 걱정해줘서 고맙다. 올해는 LG가 잘해야 하니까 부담감은 있겠지만 주장으로 팀을 잘 이끌어서 꼭 원하는 성적을 거두길 바란다.

-전반적으로 좋은 신인들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올 시즌 초반에 그 신인들이 잘한다면, 대표팀에 차출하실 생각이 있으신지요? 【 KT 위즈 이강철 감독】

이미 몇몇 신인 선수가 사전 등록 명단에 들어갔죠.(KT 소형준, NC 정구범, 한화 남지민이 포함됐다) 많은 선수를 뽑는다고 약속은 못 드려도, 당차게 마운드에서 던지는 선수가 있다면 코칭스태프 하고 충분히 고민해 보려고 해요. 김시진 기술위원회 위원장님께서 이번 신인투수들이 좋다고 이야기 하시더라고요. 지금은 어떤 선수가 툭 튀어나올지 모르니 계속 관심 가지고 지켜 보려 합니다.


김경문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13일 서울 압구정로에서 진행된 스포츠조선과의 창간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20.03.13/
-제가 만약 감독님 선수라면 혹시 선발로 기용하실 수 있으신지 궁금하네요. 혹시 오승환 선발에 대한 생각은 해보셨는지요. 【삼성 라이온즈 오승환】

오승환이란 이름 석자는 마무리죠. 오승환 선수는 대한민국을 넘어 전설적 마무리로 이름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무리로 한·미·일을 거치며 국민들을 만났잖아요. 얼마나 좋아요.

오승환 선수는 다른 선수들과는 다른 몸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도 그 몸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트레이닝을 했겠어요. 올해 안 아프고 성적을 잘 내서 마지막 올림픽이 열리게 되면 꼭 한번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감독님 건강이 안 좋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걱정 많이 했었는데 지금은 괜찮으신지요.【두산 베어스 고영민 코치】

과거 뇌하수체종 기사가 나오고 난 후에 사람들이 다들 제가 아픈 걸로 알더라고요.(웃음) 사실 감독 10년 넘게 하면 어딘가 아픈 데가 생겨요. 다행히 지금은 전혀 걱정 없고, 주말에 산에도 가고 운동도 하면서 몸 관리 잘 하고 있어요. 고 코치, 걱정해 줘서 고마워.

-안녕하세요. 감독님. 민병헌입니다. 12년 만의 올림픽 금메달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감독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야구 선수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롯데 자이언츠 민병헌】

이건 참 신경써서 말해야 할 것 같아요. (김 감독은 한참을 고민한 후 입을 열었다) 딱히 정답은 없지만 팀에 먼저 희생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지도자가 돼 보면 선수 때 못 느끼던 걸 느끼게 돼요. 감독의 팀도 아니고 선수의 팀도 아니죠. 결국 지도자는 팀을 아끼는 선수를 더 아낄 수 밖에 없어요. 좋은 선수일수록 팀이 어려울 때 더 희생할 줄 알고, 팀이 먼저라고 생각하고 희생하는 선수를 감독도 존경하게 되죠. 덕목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자기 팀을 아낄 줄 아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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