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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작은 미약했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양의지가 프로구단에 입단한 건 2006년이었다. 광주 진흥고를 졸업했으나 2006 신인 1차 지명 때 고향팀 KIA 타이거즈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당시 KIA는 '초고교급 투수' 한기주를 잡고 무려 10억원의 역대 최고 계약금을 안겼다. 이후 2005년 8월 31일에 진행된 '2006 신인 2차 드래프트'에서 양의지는 8라운드가 돼서야 간신히 두산의 부름을 받았다. 2차 드래프트 전체로 따지면 59순위였다. 이 당시 2차 드래프트에서 총 66명의 선수가 지명을 받았으니 양의지는 거의 프로행 막차를 탄 셈이다.
이때 양의지보다 앞 순위에 뽑힌 포수 자원만 해도 강정호(현대 2차 1번, 전체 8순위)를 필두로 정범모(한화 2차 3번, 전체 18순위), 이해창(KIA 2차 4번, 전체 28순위-한양대 진학), 임기범(한화 2차 6번, 전체 47순위), 최승준(LG 2차 7번, 전체 51순위), 김태훈(SK 2차 7번, 전체 52순위-영남대 진학), 박경진(KIA 2차 7번, 전체 53순위), 현승민(삼성 2차 8번, 전체 58순위) 등 8명이나 됐다. 결국 양의지는 당시 드래프트에 나왔던 신인 포수 중 최하위 평가를 받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로부터 13년 뒤, 양의지는 KBO리그 최고 포수로 우뚝 서 역대 최고액 FA가 됐다.
결국 양의지의 성공 사례는 KBO리그에 중요한 화두를 던져준다. KBO리그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두 가지 푸념을 한방에 무력화시킬 수 있는 화두다. 오래 전부터 구단 감독이나 단장 등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선수가 없다"거나 "FA 몸값을 감당키 어렵다"는 고민을 토로하곤 했다. 그러나 별로 공감이 가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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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두산이 13년전 양의지를 찍었을 때 지금과 같은 성장까지 기대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구단은 정해진 매뉴얼과 계획에 따라 선수에게 동등한 기회를 부여했다. 양의지도 그 작은 기회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 좋은 열매가 탄생하려면 씨앗도 좋아야 하지만, 밭과 농부도 훌륭해야 한다. 선수가 없다고 투정만 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좋은 선수를 키워낼 수 있는 지를 고민해야 한다.
두 번째로 FA 몸값에 대한 부담감도 마찬가지다. 결국 FA 시장의 거품을 만든 건 구단들이다. 육성과 성장에 대한 투자보다 쉽게 거액을 주고 특급 선수를 사와 빨리 성적을 내려는 단편적인 판단이 지금 KBO리그 FA시장 과열화의 시초였다. 그러나 투자가 늘 좋은 결과로 이어진 건 아니다. 최근 5년간 한화 이글스와 롯데 자이언츠는 FA 시장에서 수 백억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투자 대비 성적은 좋지 못했다. 차라리 그 금액을 육성 인프라와 팜 시스템 조성에 투자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결론적으로 양의지가 역대 최고액 FA를 경신한 이면에는 KBO리그 구단들이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한계점이 자리잡고 있다. 양의지를 잡은 NC다이노스의 통큰 베팅을 부러워할 때가 아니다. 내부적으로 주어진 자원을 정말 효율적으로 쓰고 있는 지를 냉철하게 다시 돌아볼 때다. 125억을 써서 한 명의 특급 스타를 데려오는 것보다 그 돈으로 10년의 미래를 확보하는 게 훨씬 더 현명하지 않을까.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