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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걸이입단'에서 '최고FA', 양의지가 KBO리그에 던진 성장화두

이원만 기자

기사입력 2018-12-12 12:27


2018 프로야구 포지션별 최고의 영예의 선수를 뽑는 골든글러브 시상식이 10일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렸다. 두산 양의지가 배우 정겨운, 가수 청하로 부터 포수부문 부골든글러브상을 수상하고 있다.
삼성동=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8. 12.10/

'네 시작은 미약했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기독교 성경 구절 중 하나다. 종교적 의미와는 별개로 미래의 성공을 축복하는 의미로 많이 쓰인다. 희망적인 메시지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주목받지 못하더라도 나중에는 크게 성공할 것이라는 말은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축언이다.

실제로 이 말이 실현된 경우도 널려 있다. 지난 11일 NC 다이노스와 125억원의 역대 국내FA 최고액으로 계약한 포수 양의지도 이에 해당한다. 보잘것없는 입지로 출발했지만, 인고의 시간을 보낸 끝에 리그 최고 몸값 선수로 우뚝 섰기 때문이다.

양의지가 프로구단에 입단한 건 2006년이었다. 광주 진흥고를 졸업했으나 2006 신인 1차 지명 때 고향팀 KIA 타이거즈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당시 KIA는 '초고교급 투수' 한기주를 잡고 무려 10억원의 역대 최고 계약금을 안겼다. 이후 2005년 8월 31일에 진행된 '2006 신인 2차 드래프트'에서 양의지는 8라운드가 돼서야 간신히 두산의 부름을 받았다. 2차 드래프트 전체로 따지면 59순위였다. 이 당시 2차 드래프트에서 총 66명의 선수가 지명을 받았으니 양의지는 거의 프로행 막차를 탄 셈이다.

이때 양의지보다 앞 순위에 뽑힌 포수 자원만 해도 강정호(현대 2차 1번, 전체 8순위)를 필두로 정범모(한화 2차 3번, 전체 18순위), 이해창(KIA 2차 4번, 전체 28순위-한양대 진학), 임기범(한화 2차 6번, 전체 47순위), 최승준(LG 2차 7번, 전체 51순위), 김태훈(SK 2차 7번, 전체 52순위-영남대 진학), 박경진(KIA 2차 7번, 전체 53순위), 현승민(삼성 2차 8번, 전체 58순위) 등 8명이나 됐다. 결국 양의지는 당시 드래프트에 나왔던 신인 포수 중 최하위 평가를 받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로부터 13년 뒤, 양의지는 KBO리그 최고 포수로 우뚝 서 역대 최고액 FA가 됐다.

이 결과를 두고 양의지를 외면한 타 구단 스카우트를 비판할 순 없다. 당시의 양의지는 실력면에서 별다른 경쟁력이 없었다. 또 잠재력이라는 요소는 정확히 계량하기 어렵다. 냉정히 말해 지금의 양의지를 만든 건 순전히 본인의 노력에 두산의 선수 육성 환경 및 노하우가 어우러진 결과다. 만약 당시 양의지가 다른 팀에 갔다면 지금처럼 대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장담키 어렵다.

결국 양의지의 성공 사례는 KBO리그에 중요한 화두를 던져준다. KBO리그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두 가지 푸념을 한방에 무력화시킬 수 있는 화두다. 오래 전부터 구단 감독이나 단장 등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선수가 없다"거나 "FA 몸값을 감당키 어렵다"는 고민을 토로하곤 했다. 그러나 별로 공감이 가진 않았다.


◇경찰청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팀에 복귀해 2010년 1월 두산 유니폼을 입고 사진촬영을 한 양의지. 입단 5년차이던 이때부터 양의지는 주전급 선수로 도약하기 시작했다. 스포츠조선DB
우선 '선수가 없다'는 말은 '선수를 키워내지 못한다'는 고백이나 마찬가지다. 매년 드래프트에서 꾸준히 선수가 공급되는 데 어떤 구단은 10여 년 뒤 초특급 선수로 성장시키고, 또 어떤 구단은 불과 1년 만에 포기를 선언하고 방출한다. 여기서 전자에 해당하는 구단은 대부분 두산이었다. 그렇다고 두산이 특별히 좋은 자원만 가져간 건 아니다. 그리고 실패 사례도 꽤 많았다. 하지만 확률적으로 보면 두산이 타 구단에 비해 선수를 더 잘 키워낸 건 사실이다.


사실 두산이 13년전 양의지를 찍었을 때 지금과 같은 성장까지 기대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구단은 정해진 매뉴얼과 계획에 따라 선수에게 동등한 기회를 부여했다. 양의지도 그 작은 기회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 좋은 열매가 탄생하려면 씨앗도 좋아야 하지만, 밭과 농부도 훌륭해야 한다. 선수가 없다고 투정만 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좋은 선수를 키워낼 수 있는 지를 고민해야 한다.

두 번째로 FA 몸값에 대한 부담감도 마찬가지다. 결국 FA 시장의 거품을 만든 건 구단들이다. 육성과 성장에 대한 투자보다 쉽게 거액을 주고 특급 선수를 사와 빨리 성적을 내려는 단편적인 판단이 지금 KBO리그 FA시장 과열화의 시초였다. 그러나 투자가 늘 좋은 결과로 이어진 건 아니다. 최근 5년간 한화 이글스와 롯데 자이언츠는 FA 시장에서 수 백억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투자 대비 성적은 좋지 못했다. 차라리 그 금액을 육성 인프라와 팜 시스템 조성에 투자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결론적으로 양의지가 역대 최고액 FA를 경신한 이면에는 KBO리그 구단들이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한계점이 자리잡고 있다. 양의지를 잡은 NC다이노스의 통큰 베팅을 부러워할 때가 아니다. 내부적으로 주어진 자원을 정말 효율적으로 쓰고 있는 지를 냉철하게 다시 돌아볼 때다. 125억을 써서 한 명의 특급 스타를 데려오는 것보다 그 돈으로 10년의 미래를 확보하는 게 훨씬 더 현명하지 않을까.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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