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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년간 KBO(한국야구위원회)와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가 논의했던 FA제도가 기로에 섰다. 상한제와 등급제. 전자는 구단들이 원하는 것, 후자는 선수협의 요구사항. KBO와 선수협은 수 년간 이 문제를 놓고 머리를 맞댔지만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다. 최근 KBO는 FA상한제와 등급제, FA자격 취득연수 단축 등을 포함하는 개편안을 선수협에 전달했다.
KBO는 의결권을 가진 10개 구단 사장단과 총재로 구성된 이사회가 거의 모든 안건을 결정한다. 구단주들과 총재의 모임인 총회는 정관 변경, 총재 선출, 회원사 자격의 취득과 변경 등 이른바 더 큰 사안만 결정한다. 리그 운영에 관한 한 이사회의 결정이 거의 모든 범위를 총괄한다. 이번 안건은 구단들이 논의 끝에 내린 합의안이다. 선수협과의 논의를 통해 일정 부분 조율할 수 있지만 큰 틀은 유지하려 할 것이 분명하다.
이사회와 KBO 사무국이 결론에 이른 FA상한액은 4년간 80억원이다. 여기에 선수들이 아주 싫어할 계약금 제한(최대 30% 수준)까지 포함됐다는 후문이다. FA 몸값 중 계약금 규모는 계속해서 커지는 추세다. 절반을 넘을 때도 있다. 일시에 목돈을 쥐고 싶어하는 선수들의 바람 때문이었다. 같은 몸값 규모라도 대어급은 계약금이 많냐, 적냐에 따라 구단 선택지가 달라졌다.
선수협이 소수의 권리를 제한하고 좀더 많은 선수들을 위해 상한제와 등급제를 동시에 품을 때도 부작용은 있다. 상한제가 도입되면 나머지 준척급, B급 FA들의 몸값도 자동적으로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만약 이번 논의가 최종 타결돼 양의지가 4년간 80억원을 받는다면 웬만한 FA들은 알아서 몸값을 대폭 낮출 수 밖에 없다. 이른바 하향 평준화다. 선수들 입장에서도 상한제가 동반된다면 등급제를 마냥 반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FA뒷돈 논란도 상한제가 일시에 잠재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선수들 손에 떨어지는 돈은 더 적어진다. '신인지명권 박탈과 10억원 벌금'으로 제재를 강화하면 구단들이 섣불리 규정을 어기기 쉽지 않다. 십 수년간 시행되던 구단별 메리트 제도(승리수당)는 강력한 벌금 공표로 자취를 감추었다. 어차피 구단들은 지출을 줄이고 싶은데 경쟁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지갑을 열어 왔다. 옆집이 안한다면 나서서 돈을 더줄 이유가 없다.
그나마 FA자격 취득 연수 단축(고졸 9년→8년, 대졸 8년→7년)이 이번 FA 상한제-등급제 협상에 기름칠을 할 것으로 보인다.
10개 구단과 KBO가 서둘러 상한제 카드를 들고 나온 이유는 올해 개막부터 본격 시행중인 대리인 제도(에이전트) 때문이다. 두 차례의 KBO 공인 에이전트 시험(선수협 주관)을 통해 160명 이상의 공인 에이전트들이 자격증을 획득했다. 에이전트들은 선수들과의 계약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웬만한 주전급 선수들은 계약을 마친 상태다. 구단들은 대리인들의 활발한 협상력에 잔뜩 긴장한 상태다. 시장논리에 역행한다는 일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상한제를 외칠 수 밖에 없었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