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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즈 사태', KBO 대변혁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이원만 기자

기사입력 2018-05-30 09:23


히어로즈 구단발 사건·사고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하나같이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일들 뿐이라 프로야구 팬들의 실망감도 크다. 어떤 이들은 KBO리그 전체의 위기라고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냉정한 시각으로 보면 차라리 잘 된 일이다. 어차피 언젠가는 터져야 할 일이었다. 히어로즈 구단의 근본적인 문제점에 메스를 대는 동시에 KBO리그가 갖고 있던 '기형적 외향성장주의'를 타파할 수 있는 기회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정운찬 총재는 이번 사건을 무겁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리그 재출범'의 각오를 갖고 히어로즈 구단 뿐만 아니라 타구단 전체에 퍼져 있는 비리와 '아마추어리즘'의 타성을 깨부숴야 한다.


'괴물' 이장석과 '괴물의 아이' 히어로즈 구단

이장석 전 대표이사는 한때 'KBO리그 축소를 막아낸 인물'로 평가받는 수완가였다. 애초부터 그가 사기와 횡령, 배임 등 현재 그를 형무소에 가둬놓은 범죄 행위를 목적으로 KBO리그에 나타난 건 아니다. 오히려 2007년 말, 이 전 대표에게 먼저 손을 내민 쪽은 KBO였다.

발단은 현대 유니콘스가 2006년을 끝으로 사실상 해체된 것이다. 경영난에 빠진 모그룹이 야구단에서 손을 떼자 KBO가 2007시즌을 사실상 위탁운영했다. 당시 KBO 수뇌부는 '7개구단 체제'로의 회귀를 두려워한 나머지 KBO가 원년부터 모아온 '야구발전기금' 약 140억원을 1년간의 전부 위탁운영에 쏟아 부었다. 그 기간에 몇 차례 인수 움직임이 번번히 실패로 돌아가자 급박해진 신상우 당시 KBO총재가 먼저 이 전 대표에게 손을 내밀었다. 당시 이장석은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라는 투자 및 M&A 회사를 운영하던 개인이었다. 그렇게 '히어로즈 구단'이 새롭게 탄생하게 된 것이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전 대표는 야구단 운영 방식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인물로 평가됐다. 기존 프로야구단은 모그룹의 일방적인 지원으로 운영되던 '명색만 프로구단'이었다. 그러나 히어로즈 구단은 출범 당시부터 메인 타이틀 스폰서 유치와 각종 서브 스폰서십 계약, 광고, 입장 수익 등 수익 구조를 다변화 하면서 자립적으로 경영돼 왔다. 경영 방식의 측면에서만 보자면 KBO리그 사상 최초의 프로구단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상 '완전한 자립 경영'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이 전 대표는 조금씩 '꼼수'를 썼고, 당시 KBO리그 수뇌부도 사실상 이를 모른 척 해왔다. 당시 신상우 총재를 시작으로 뒤를 이은 유영구-구본능 총재와 각 총재 시절의 KBO리그 집행부가 사실상 전부 책임이 있다. 이장석과 히어로즈 구단의 폭주나 꼼수에 확실한 제동을 건 적이 없다. 몇 차례 제재가 있었지만, 대부분 형식적인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결과적으로 지금 터져나온 이 전 대표의 비리나 범죄 행위, 또 히어로즈 구단의 비상식적 운영의 뒤에는 KBO의 방관도 크게 작용했다고 말할 수 있다. 당연히 다른 구단도 이런 느슨한 기류 속에서 꼼수에 관대해진 게 사실이다.


외향 성장에 눈이 먼 KBO, 정운찬 총재는?


KBO가 이런 식으로 리그 조정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이유는 '외향적 성장'에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프로야구의 인기가 급격히 치솟았다. 야구장을 찾는 관중들이 늘어나면서 매년 KBO는 관중수를 목표로 내걸고 이걸 집중적으로 부각하는 데 매달렸다. 가시적인 성과도 분명히 있었다. 500만 시대, 600만 시대를 훌쩍 훌쩍 넘겨 천만관중 시대에 근접했기 때문이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프로야구단 창단도 늘어났다. 2011년 NC다이노스에 이어 2013년 KT위즈가 창단돼 드디어 '10개 구단 체제'로 접어들었다. '7개 구단 체제로의 회귀'를 걱정하던 때에 비하면 놀라운 발전이다. 번듯한 신축 구장도 생겼다. 광주, 대구에 이어 내년부터는 창원에도 신구장이 오픈한다.

하지만 정작 이러한 '외향적 성장'이 진정한 프로야구 산업화의 내실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거품이 많다. 선수 자원은 한정적인데 10개 구단을 만들어 경기수를 늘리다 보니 리그 수준이 갈수록 떨어진다는 지적이 현역 감독들로부터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지금 나타나고 있는 기형적 '타고투저' 현상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시각도 있다.

또 각 구단들의 재정 적자 누적과 모기업 의존 현상도 여전히 변함이 없다. 예전에 비해 각 구단별로 마케팅 다변화 및 경영 개선 움직임이 있지만, 전체 재정 규모에 비하면 한계가 명확하다. 뿐만 아니라 리그 중계권 배분이나 선수 초상권, 홈페이지 통합 마케팅 등 각종 스포츠 산업구조 개선 분야에 대한 규격화 및 조정 작업도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그러다 보니 프로야구 콘텐츠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KBO가 정작 주요 해결 과제는 방치하고, 외향적 성장에만 치중하는 사이 이장석과 히어로즈는 폭주했다. 타 구단도 마찬가지다. FA영입, 외국인 선수 계약, 트레이드 등에 있어 리그 규약에 한정되어 있는 범주를 임의대로 넘나드는 꼼수들을 대부분 벌여왔다. 히어로즈 구단과 '뒷돈 트레이드'를 한 NC와 KT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이 문제에서 자유로운 구단은 사실상 없다.

이 참에 그간 안으로 곪아왔던 문제들을 다 끄집어 내 터트려야 한다. 그 과정에서 고름이 흐르고, 피가 터지는 걸 두려워하면 안된다. 그간 KBO는 상처를 감수하는 일에 지나치게 소극적이었다. 돌이켜보면 12년 전 무리하게 '8개 구단 유지'를 고집하면서 지금의 문제가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과연 '클린베이스볼'과 '프로야구 산업화'를 기치로 내걸고 있는 정운찬 총재가 이번 사태에 어떻게 대처할 지 궁금하다. 진정으로 프로야구를 발전시키길 원한다면 판을 뒤엎는 걸 꺼려선 안된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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