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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엔드인터뷰]박한이 "박용택과 비교? 그렇게 봐주시면 감사하죠"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8-05-18 11:10


삼성 박한이.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16일 LG전 7회 2타점 동점 적시타를 때린 박한이. 사진제공=박한이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요즘 삼성 라이온즈 외야수 박한이(39)를 보면, 베테랑에 대한 선입견이 사라진다. 지난해 최악의 부진을 경험했고, 올 시즌 초반 짧은 시간에 두 번이나 2군행 통보를 받았는데도, 씩씩하게 살아났다. 1979년 1월 생, 올해 우리 나이로 마흔살이다. 2018년 KBO리그 야수 최고령이다. 프로야구판도 우리 세상을 닮아 세월이 쌓이면 무게를 감당하기가 어렵다. 매년 새얼굴들이 등장해 성장하면서, 입지가 좁아져 결국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다. 불혹의 야수가 거센 흐름을 이겨낼 방법은 딱 하나, 실력 뿐이다.

지난해 양준혁을 넘어 17년 연속 세 자릿수 안타에 도전했던 박한이는 68경기에서 31안타에 그쳤다. 무릎 수술 후유증를 떨치지 못하고, '꾸준함'을 잃어버렸다. 몇몇 야구인들은 "이제 박한이도 한물같다"고 했다. 이런 냉정한 평가를 박한이는 보란듯이 뒤집었다.

16일 포항야구장에서 만난 박한이는 "(이)승엽이 형의 빈자리를 채워야한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스윙에 힘이 들어갔다"고 시즌 초반 부진을 설명했다.

박한이는 1군에 합류한 지난 4일부터 10경기에서 타율 38타수 16안타, 타율 4할2푼1리, 2홈런, 6득점, 11타점을 기록했다. 득점권에선 11타수 5안타, 타율 4할5푼5리다. 이 기간 팀 내 최다 안타, 최다 홈런, 최다 타점이다. 시즌 타율도 3할4푼2리(73타수 25안타)까지 올라갔다. 17일 LG 트윈스전까지 2004경기에 출전해 2083안타. 이승엽이 떠난 삼성에는 박한이가 있다. 그의 시계는 18년째 힘차게 돌아가고 있다.

-시즌 초반 두 번이나 2군에 갔다왔다. 뭐가 문제였나.

(이)승엽이 형의 공백을 메워보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타석에서 힘이 많이 들어갔다. 2군에서 코치님들이 그러셨다. '네가 아닌 것 같다고. (예전의 박한이와) 완전히 다르다고. 네 장점이 타구를 좌중간쪽으로 보내는 건데, 힘이 들어가 엉망이 됐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2군에 내려가)내가 왜 그랬을까 생각을 해봤는데, 처음엔 답이 안 보이더라. 슬럼프는 슬럼프인데 (해결책을)찾기 힘들었다. 결국 문제는 타이밍이라는 걸 알았다. 투수를 상대할 때 나도 모르게 힘으로만 승부하려고 했다. 그게 독이 됐다. 2군에서 타이밍을 맞추는데 중점을 두고 훈련했다. 1군에 콜업됐을 땐 마음을 좀 비운다고 해야 하나, 편안한 마음으로 하자는 생각을 했다.


15일 LG전 5회 1점 홈런을 때린 박한이를 더그아웃의 팀 동료들이 맞아주고 있다.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두 번째 2군행을 통보받았을 때 솔직한 심정이 어땠나. 속이 많이 상했을 텐데.


처음에는 아쉬웠다. 속상하다기 보다는 내 자신이 한심했다. 야구 1,2년 한 것도 아니고, 그래도 '레전드'라고 여러분들이 말씀해주시는데, (이정도밖에 못하나)화가났다.

-지난해 17년 연속 세 자릿수 안타에 도전했는데, 대기록 달성에 실패했다.

답답했다. 하지만 (기록 달성 실패를 계기로)더 성숙해졌다고 생각한다. 지난해는 기록이 있어 나가고 싶어 안달했다. (그러나)지금은 게임을 즐기려고 한다.

-동갑이면서 1년 후배인 박용택(LG)과 함께 자주 언급된다.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고)내가 용택이랑 비슷한가? 비교 상대이 될 수 있나. 그렇게 애기해주시면 고맙지만…. 용택이는 기록을 많이 갖고 있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용택이가 요즘 좀 안 좋은 것 같은데, 슬럼프는 언제든지 찾아온다. 레전드이고, 베테랑이고, LG 최고 선수 아닌가. 결국 극복하고 제 몫을 할 것이다. 지금 타격감이 안 좋다고 해서 경기가 끝난 게 아니지 않나.

-이승엽이 은퇴해 팀 내 최고참이 됐다. 이승엽 공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았는데.

그동안 승엽이 형이 해온 걸 봐왔다. 야구장이나 더그아웃에서 활력을 불어넣는 게 가장 중요하다.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게 (최고참으로서)내 역할이다. 팀 상황이 안 좋더라도 항상 웃으면서 경기장에 나와 활기찬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더그아웃 분위기가 안 좋으면, 잘 될 것도 안 된다. 승엽이 형이 그런 역할을 참 잘 했다. 후배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지 모르겠지만, 농담을 많이 하려고 한다. 기분이 안 좋다가도 그러면 기분 전환이 될 수도 있지 않겠나.

-2군으로 내려갔을 때, 많은 이들이 격려를 하고 위로를 해줬을 것 같다.

솔직히 그땐 너무 힘들어 위로의 말이 귀에 안 들어왔다. 2군 감독님, 코치님들이 많은 얘기를 해주셨지만, 그때는 와 닿지 않았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랬다. 지금은 '그 위로가 내게 힘이 됐구나'하고 느끼고 있다. 신경써 주신 분들에게 정말 감사한다.

-프로 생활을 시작할 때 세운 목표를 기준으로 지금 어디까지 온 건가.

아쉬운 게 딱 하나 있다. 처음 프로에 왔을 때 첫 번째 기록 하나는 세우고 은퇴하자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기록이 지난해 깨졌다.(연속 시즌 세 자릿수 안타) 모르겠다. 야구를 얼마나 할지 모르겠으나,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몇 번째든 기록을 남기고 싶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 목표다. 은퇴하기 전에 우리 팀이 다시 한번 올라가는 걸 보고 싶다.

-내부인이 보는 삼성은 어떤가.

아직 시즌이 많이 남아있다. 더 올라가야 하고, 더 올라갈 수 있다. 팀 분위기가 너무 좋다. 지금 시점에서 치고올라간다면 상위권도 가능하다.

-외부에서 보면 삼성은 하위권 전력이다. 그렇다면 지금, 삼성의 강점이 뭔가.

선수들의 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선수 한명 한명이 모두 그렇다. 내가 어렸을 땐 1위를 하는데도 경기를 지면 분위기가 안 좋았다. 그런 분위기를 바꾸고 싶은데도 연차가 어려 말을 못했다. 이제 세대가 바뀌었다.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의욕이 생기고, 의지도 생긴다. 분위기가 처지면 하고 싶어도 못한다. 우리 팀은 지난해도 그랬고, 올해도 분위기가 좋다. 팀 성적은 언제든지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선수가 성장하면 베테랑의 입지가 좁아진다.

이제 외야는 (구)자욱이, (박)해민이, (김)헌곤이가 주전이다. 현재 가장 잘 하는 선수들이다. 이들이 활력있게 가고, 밑에 후배들을 끌어올려야 한다. 이제 그런 역할을 해야할 때가 됐다. 자기가 아닌 팀을 생각해야하는 부분이 있다.

-삼성의 가장 좋았던 시기, 가장 안 좋은 시기를 경험했다. 박한이에게 삼성은 어떤 팀인가. 다른 팀에 갔더라면 하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있나.

다른 팀에 갔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 적은 있으나, 크게 생각하진 않았다. 18년 동안 머문 삼성은 내게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내 인생에서 삼성을 빼고 생각할 수 없다. 삼성에 없었다면 지금까지 야구를 할 수 있었을까. 다른 팀에 갔더라면 쉽게 적응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아마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올 시즌을 마치면 세 번째 FA가 된다.

모르겠다. FA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어쨌든 팀을 위해 성적을 내야 한다. 후반기까지 성적이 좋다면…. 잘 하면 구단에서 알아서 해 주시지않을까.

-입단했을 때 몇살까지 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나.

사실 (프로 초기에는)그런 생각을 못했다. 2001년 첫해엔 죽으라고, 앞만 보고 달렸다. 그러다보니 10년이 훌쩍 흘렀다. 고참이 되고 어느 순간 여러분이 '꾸준함의 대명사'라고 얘기를 해주시더라. 고맙기도 하지만, 왜 이렇게 앞만 보고 달려왔나 싶다. 뒤도 보고 옆도 보고 그랬다면, 팬들한테 더 사랑을 받았을텐데, 이런 생각을 3~4년 전부터 했다. 늦었지만 그렇게 하려고 한다.(박한이는 팬과 좀 더 적극적인 소통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했다. 일정이 바빠 사인 요청에 응하지 못한다고 해도, 양해를 구하는 인사는 꼭 하겠다고 말했다)


2018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 kt 위즈의 경기가 8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다. 6회초 무사 1, 3루 삼성 박한이가 3점포를 치고 들어오며 축하를 받고 있다. 수원=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8.05.08/
-두살 위인 이승엽은 41세까지 뛰고 은퇴했다.

뛸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 다만, 진짜 미련없이 야구하고, 미련없이 끝내야 한다. 내 성격대로 말이다.

-김한수 감독과 선수, 코치, 사령탑으로 18년째 함께 하고 있는데.

선수 때나 코치 시절이나 똑같다. 선수, 코치 때 정말 무뚝뚝했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좋아지셨다. 웃기도 하고 농담도 하신다. 선수 땐 그런 게 없었다. 엄청 조용하셨다. '소리없는 강자(김 감독의 선수 시절 애칭)'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웃음)

포항=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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