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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폭탄을 지고가는 듯 위태로웠던 한화 이글스와 김성근 감독(75)이 결국 파국을 맞았다. 지난 해 말 박종훈 단장(58)이 부임한 후 끊임없이 구단과 충돌하며 불협화음을 내더니, 원수처럼 등지게 됐다. 애초부터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봐야할 것 같다. 김 전 감독은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전권을 쥐고 팀을 끌어가고 싶어했는데, 구단은 이를 시대착오적인 구시대 리더십으로 봤다. 급기야 구단이 감독의 '독주'를 막으려는 의도로 1,2군 운영 분리 등 견제장치를 들고나오는 지경이 됐다. 지난 겨울에 벌어진 일이다. 이 과정에서 김 전 감독과 박 단장으로 대표되는 구단은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치닫았다.
세상일이 대개 그렇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가 좋으면 공이 과를 덮는다. 기대했던 성적이 나왔다면, 김 전 감독의 지도력이 보기좋게 포장됐겠지만, 시대 흐름을 거스르는 지도 스타일이 성과를 내긴 어렵다. 사령탑에 오른 첫 해 이글스팬들은 열광했으나, 잠시 반짝하다 말았다. 이 과정에서 투수 혹사 논란이 이어지고, 퇴행적인 경기 운영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팀 성적은 되레 뒷걸음질 했다. 선수 육성을 뒤로 미뤄두고 당장 앞만 바라보며 지속적으로 외부 전력을 수혈했는데도 그랬다. 김 전 감독이 자주 입에 올렸던 "선수가 없다"는 말에 코웃음을 친 야구인이 많았다. 감독직은 변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책임지는 직분이다.
한화 구단은 성적 갈증도 풀지 못하고, 팀 이미지 실추에 적지 않은 상처까지 떠안게 됐다. 물론, 근원을 따져보면 구단이 자초한 일이다.
설사 감정의 골이 깊어져 더이상 마주하기 어렵게 됐다고 해도, 볼썽사나운 손가락질은 천품을 드러내는 일이다. 공교롭게도 박 단장도 그렇고, 김 전 감독이 독설을 쏟아내며 작별을 고했던 SK 와이번스 시절 단장도 야구제자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김 전 감독만큼 오랜 기간 다양한 팀을 맡아 지도한 지도자는 없다. OB 베어스부터 시작해 태평양 돌핀스, 삼성 라이온즈, 쌍방울 레이더스, LG 트윈스, SK 와이번스, 한화까지 7개팀을 거치면서 3차례 한국 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23시즌 동안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게 13번이나 된다.
그런데도 김 전 감독을 '존경하는 지도자'로 꼽는 야구인은 드물다. 이제 존경받는 '야구원로'를 보고싶다. '야구밖에 모른다'는 말이 때론 '나밖에 모른다'로 들릴 때가 있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