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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네덜란드의 WBC 1라운드 경기가 7일 오후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다. 한국팀이 0대5로 패하며 2패를 당했다. 2라운드 진출이 힘들어진 가운데 선수들이 경기 후 고개를 숙이고 있다. 고척=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7.03.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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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개막하면 팬들로 가득 차겠지. 또 시즌 끝나면 100억원 얘기가 나오겠지."
한국 야구는 재앙을 맞이했다. 안방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예선 라운드에서 2연패하며 탈락 위기를 맞이했다.
2013년 제3회 대회 '타이중 참사'보다 이번 '고척돔 참사'는 더욱 뼈아프다. 단순히 홈에서 열린 대회여서가 아니다. 같은 탈락도 질이 다르다. 선수들이 투혼을 발휘해 정말 열심히 뛰다, 실력 차이로 지는 것이라면 누구든 박수를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서울 라운드에서 선수들이 나라를 위해, 정말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들의 속마음을 100%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진정성이 크게 느껴지지 않은 건 사실이다. 팀의 간판타자라는 김태균(한화 이글스)는 네덜란드전을 앞두고 애국가가 울려퍼질 때 거수경례를 하는 장난을 했고, 선수들은 지고 있는 와중에도 덕아웃에서 웃음꽃 수다를 펼쳤다. 2006년 제1회 WBC 대회에서 우리가 일본을 꺾었을 때, 일본의 스타 스즈키 이치로가 분노하는 모습을 보고 '왜 저럴까' 생각을 했겠지만 이제는 그 이치로의 모습이 멋지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문제는 지금부터다. 대회의 악몽은 시간이 흐르면 지워진다. 야구를 대하는 선수들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FA(자유계약선수) 150억원 시대가 열렸다. 이제 100억원 몸값이 우스운 시대가 됐다. 이번 대회 현장에서는 "마이너리그에서 뛰는 이스라엘 선수들이, 한국 선수들 몸값이 1000만달러를 훌쩍 넘는 걸 알면 어떤 생각을 할까"라는 농담까지 나왔다.
이번 WBC를 통해 우리 선수들이 지나치게 좋은 대우를 받으며 야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당장 눈앞에 있는 이익이 아니면, 굳이 내 몸을 희생하가며 뛸 필요가 있느냐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언제까지 태극마크를 가지고 구시대적 투혼 발휘를 요구할 수 없는 것도 맞지만, 국가대표의 자부심을 너무 현실 이익으로만 대체하고 싶어하는 현 세대의 풍토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이번 대회가 딱 그 혼란의 시기를 보여줬다고 봐야 한다. 경험 많은 '국민 감독'은 이름값 높은 선수들을 우선 선발하고, 그들에게 무조건적인 투혼을 기대했다. 하지만 이미 선수들의 위상(?)이 너무 높아졌다. '국민 감독'이 그렇게 무섭지 않다. 메이저리거들은 참가를 약속했다가, 개인 사정을 이유로 빠졌다. 전지훈련에서 몸상태를 끌어올리는 데 최선을 다하지 않은 선수도 분명 있었다.
선수들은 이번 대회 충격이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 시즌 개막 후 잘하면 분명 자신들에게 환호하고 박수쳐줄 팬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번 대표팀에는 빠졌지만, 그동안 쭉 대표팀 생활을 해왔던 한 선수는 일전에 "WBC 대회는 오히려 부담이 안된다. 대회 때 못해 욕 먹어도 금방 시즌이 시작되면 잊혀지기 때문"이라고 했었다. 정말 이런 마음을 선수들이 갖고 있다면, 이는 큰 문제다.
이제 정규시즌이 개막하면 야구장에 팬들이 꽉 들어찰 것이다. 시즌 종료 후면 대표팀에서 뛰었던 몇몇 선수들을 포함해 많은 선수들이 수십억원이 넘는 몸값을 두고 신경전을 벌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번 '고척돔 참사'는 또 쉽게 잊혀진다. 어떻게 보면 이번 참사는 코칭스태프, 선수단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일찍부터 만들고 있었던 일이었는 지 모른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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