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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느냐 떠나느냐, 과연 고통스러운 고민일까

노재형 기자

기사입력 2017-01-13 08:19


FA 황재균이 메이저리그 진출과 국내 잔류를 놓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신분을 보장하는 구단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현수는 1년전 메이저리그 신분을 보장받고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입단했다. 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은 2003년 12월 11일이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이승엽의 야구 인생에서 그처럼 고민스웠던 날도 없었을 것이다. 그날 이승엽은 서울 리츠칼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 프로야구 지바 롯데 마린스에 입단한다고 발표했다. 기자회견 자리에 앉은 이승엽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돼 있었다. 이승엽은 "메이저리그 진출의 꿈을 버리지 못했다. 일본에서 성공한 뒤 꿈을 이루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무슨 의미의 눈물이었을까. 이승엽은 기자회견하는 날 아침까지도 삼성에 남을 지, 지바 롯데의 제시를 받아들을 지, 아니면 메이저리그에 도전할 지를 놓고 결정을 하지 못했다. 고민을 거듭하던 그는 기자회견장으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해 시즌이 끝난 뒤 FA 자격을 얻은 이승엽은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안간힘을 쓰다 협상이 원하는대로 진행되지 않자 예상하지도 않은 일본으로 방향을 틀었다. 11월초부터 미국을 오가며 메이저리그 구단들과 협상을 벌였지만, 만족할만한 조건을 제안한 팀은 나타나지 않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야구선수로서의 자존심을 세워주기를 바랐으나, 빅리그 구단들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 LA 다저스 등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이승엽에게 마이너리그 계약(스플릿 계약)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스프링캠프에서 실력을 확인받고 메이저리그에 오르면 많은 연봉을 준다는 것이었다. 한국 야구 수준이 마이너리그 더블A~트리플A 정도로 평가받던 시절이다. 그해 겨울 일본인 선수 마쓰이 가즈오가 뉴욕 메츠와 3년-2100만달러에 계약했으니, 이승엽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법도 했다.

메이저리그가 아니면 상식적으로 거액을 제시한 삼성에 남는 것이 자연스러운 선택일 것으로 보였지만, 이승엽은 예상을 깨고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하기로 했다. 지바 롯데는 2년간 총액 4억엔을 제시했고, 계약기간이 끝나면 FA로 풀어준다는 조건을 걸었다. '4년-40억원'이 최고 수준이었던 당시 KBO리그 FA 시장과 비교하면 지바 롯데의 제안은 나쁘지 않았다. 잠깐 '적'만 두고 있을 것으로 예상됐던 일본에서 이승엽은 8년을 보냈다. 지바 롯데를 거쳐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한 시즌 41홈런을 쳤고, 연봉 7억엔의 수퍼스타 대우를 받았다.


이승엽이 2003년 12월 11일 리츠칼튼호텔에서 자신의 거취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당시 이승엽은 메이저리그를 포기하고 일본 프로야구 지바 롯데에 입단하기로 결정했다며 물을 흘렸다. 스포츠조선 DB
삼성에서 한국시리즈 우승(2002년)을 이루고, 한 시즌 최다홈런(2003년) 기록을 세운 이승엽의 마음은 오로지 메이저리그였다. 시카고 컵스와 플로리다 말린스 스프링캠프에 참가하며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몸값 수준은 중요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아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도전도 좋지만, 메이저리그 신분이 보장돼야 한다는 기본 조건을 버릴 수는 없었다. 명예를 지키고 싶었고, 한국 야구를 널리 알리고 싶었다.

KBO리그 해외 진출 1호는 선동열이다. 선동열은 1995년 시즌이 끝난 뒤 일본 프로야구 진출을 선언하고 주니치 드래건즈에 입단했다. 선동열을 놓고 요미우리 자이언츠, 주니치 등 내로라하는 명문 구단들이 영입 경쟁을 벌이며 그해 겨울을 뜨겁게 달궜다. FA 제도가 도입되기 전인 그 시절 선동열, 이종범, 이상훈 등 해외 진출을 원했던 선수들은 임대 형식을 빌어 바다를 건넜다. 당시 주니치는 2년간 임대료 3억엔을 해태 타이거즈 구단에 주고, 선동열과는 사이닝보너스 5000만엔, 2년 연봉 2억5000만엔에 계약했다. 나중에 2년 계약기간이 끝나고 보류권을 놓고 양 구단간 갈등이 일었지만, 선동열은 1999년까지 주니치에서 2년을 더 뛰고 은퇴했다. KBO리그를 평정한 선동열은 더 넓은 무대를 원했고, 1990년대 일본 프로야구는 국내 선수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선동열 이후 KBO리그에서 실력있는 선수들은 일본과 미국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종범 이상훈 이승엽 구대성 정민태 정민철 김태균 이대호 임창용 오승환 등이 일본을 두들겼고, 2013년 이후에는 류현진 강정호 박병호 김현수 이대호 오승환 등 메이저리그 입성이 러시를 이뤘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들 모두 남모를 고민의 과정을 거쳐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프로스포츠에서 돈과 명예는 항상 일치한다. 실력이 좋으면 많은 돈을 벌고 큰 무대에서 명예까지 얻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 KBO리그 자체가 검증 무대일 수 있고, 마이너리그, 좁게는 스프링캠프에서 '나'를 알리고 인정받아야 한다. 세월이 흘렀다면 아직 살아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FA 신분인 황재균과 이대호가 아직 거취를 정하지 못하고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황재균은 지난해 11월 미국 현지에서 쇼케이스까지 벌이며 큰 무대를 향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황재균에게 메이저리그 신분을 보장하며 구체적인 제안을 해 온 팀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국내 잔류를 선택한다면 원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또는 kt 위즈가 거액을 안겨줄 것이다. 더 큰 꿈을 향해 도전할 것인지, 안정된 신분으로 고액 연봉을 보장받고 다시 국내 팬들 앞에서 설 것인지, 황재균에게는 '즐거운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이대호도 마찬가지다. 그는 한미일 프로야구를 모두 경험했다. 1년전에는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택했었다. 지금은 롯데 또는 일본으로의 복귀가 언론을 통해 계속해서 언급되고 있다. 이대호는 풀타임 주전을 보장하는 팀에서 뛰고 싶다고 했지만, 마음을 달리 먹으면 다시 메이저리그에 갈 수 있다. 주위에서는 가족을 위해서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게 좋고, 돈을 더 벌고 싶다면 일본쪽이 낫다고 말한다. 메이저리그는 여전히 도전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하는 상황이다. 그 어느쪽이 됐든 이대호에게는 선택의 명분이 충분히 생길 수 있으니, 이 역시 즐거운 고민이다.

13년전에는 이승엽이 그런 고민에 빠졌었다. 인생의 기로에서 고민의 순간이 고통스럽다고는 하나, 무엇을 선택하든 이후 후회하지 않도록 준비하는 과정이 더 고통스러울 필요가 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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