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로이드는 존재하는가? 그리고 무시못할 후유증

노재형 기자

기사입력 2017-01-05 15:59 | 최종수정 2017-01-05 21:18


SK와 재계약한 김광현을 팔꿈치 수술을 받아 올시즌 통째로 쉬게 생겼다. 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

FA로이드(FAroid)는 'FA를 앞둔 선수가 금지약물을 복용한 것처럼 유난히 힘을 발휘해 생애 최고의 성적을 올린다'는 뜻으로 설명할 수 있다. 금지약물이란 근육강화제인 스테로이드를 말하며, FA(자유계약선수)와 스테로이드를 합성한 조어다. 그만큼 FA 자격을 얻기 직전 시즌 믿기 힘들 정도로 맹활약하는 선수들이 많다는 것이다. 한 시즌 잘 하면 평생 살면서 만져보기 힘든 돈다발을 손에 쥐게 되는데, 그만한 동기부여가 또 어디 있을까.

FA 시장에서 100억원이 왔다갔다하는 마당에 1년 꾹 참고 야구에 집중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조금만 아파도 쉬고 싶어하는 선수들이 FA를 앞둔 시즌에는 이를 숨기거나, 설사 드러난다 해도 출전 의지를 내비치는 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물론 모든 선수들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FA 출신의 한 은퇴 야구인은 "난 그때 뼈가 부러지지 않는 이상 아픈 티 내는 것조차 아깝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FA가 된다는 건 매우 효율적인 '유인책'이 아닐 수 없다.

멀리 돌아볼 필요도 없다. 이번에 거액의 계약에 성공한 FA들을 보면 알 수 있다. 4년-100억원에 KIA 타이거즈로 이적한 최형우는 지난 시즌 타율 3할7푼6리, 31홈런, 144타점, OPS(출루율+장타율) 1.115 등 대부분의 공격 지표에서 생애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롯데 자이언츠 출신 황재균 역시 부상으로 17경기에 결장했음에도 타율(0.335)과 홈런(27개), 타점(113개) 모두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황재균은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중이다. 유격수 김재호도 지난해 타율 3할1푼, 127안타, 7홈런, 78타점 등 각 부분서 자신의 최고 기록을 세우며 두산 베어스와 4년-50억원에 계약했다. 이번 겨울 FA를 신청한 야수 8명중 4명이 지난해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고, 이들 모두 첫 FA 자격을 얻은 선수들이다. 물론 데뷔 이후 꾸준히 성적을 낸 뒤 마지막에 '피치'를 올렸다는 것이지, 한 시즌 반짝 활약으로 이같은 보상을 받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투수의 경우도 FA를 앞두고 몸부림치는 게 야수들과 다르지 않다. 해외진출을 도모하려다 마땅치 않아 KIA와 1년 계약한 양현종은 최근 3년간 92경기에 등판해 41승26패-평균자책점 3.45를 기록했고, 평균 185⅓이닝을 투구했다. 양현종의 전성기는 최근 3년이다. SK 와이번스에 잔류한 김광현도 최근 3년간 85경기에 나가 38승23패-평균자책점 3.66을 기록했다. 두 선수는 2014년 시즌을 마치고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했다가 좌절한 경험이 있고, 이번에도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최근 3년간 전력 피칭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FA로이드는 후유증, 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4년짜리 FA 계약을 하고서 첫 시즌부터 만족스러운 성적을 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특히 투수들이 그렇다.


두산 장원준은 대표적인 FA 성공사례로 꼽힌다. 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2000년 FA 제도 도입 이후 지난해까지 4년 계약(옵션 포함)을 한 투수는 모두 21명이다. 이 가운데 계약기간이 만료된 8명 중 커리어 하이에 근접한 활약을 2시즌 이상 펼친 투수는 김원형(2002~2005년), 정재훈(2012~2015년) 정도 밖에 없다. 아직 계약기간이 남은 투수 13명 중 권 혁(2015~2018년), 장원준(2015~2018년), 윤성환(2015~2018년) 등 3명을 빼면 아직은 후유증을 겪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수치는 앞으로 더 늘어날 공산이 크다. 투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제대로 쉬지 않으면 피로가 쌓여 야수보다 부상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지난 16년간 FA 실패 사례로 꼽히는 투수들을 굳이 떠올릴 필요도 없다.

당장 올해도 FA로이드 후유증이 드러난 선수가 나타났다. 김광현은 팔꿈치 통증이 원인이 돼 메이저리그 진출이 좌절됐고, 결국 수술을 받아 계약 첫 시즌부터 통째로 쉬게 생겼다. 오는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출전을 강력 희망하고 있는 양현종도 지난해 생애 첫 200이닝을 투구를 하면서 더욱 신중한 몸만들기가 필요한 상황이다.

살짝 빗겨가는 내용이기는 하나 구단들은 FA를 코앞에 둔 선수들과 '연봉 고과'로 산정한 몸값 이상으로 재계약하는 경우가 많다. 이적시 보상 규모를 높여 다른 팀에서 부담을 갖도록 하려는 것인데, 이 또한 FA로이드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 FA로이드는 존재하며, 그것도 매우 뚜렷하다.


하지만 계약 이후는 조심스럽다. 부상과 같은 후유증을 한 두 번쯤은 감수해야 한다. 이번 겨울 FA 투수 영입을 하려다 뜻을 접은 한 구단 관계자는 "4년 계약을 했으면 한 시즌 정도는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두 번은 잘 해야 돈 들인 명분이 생긴다"고 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FA 계약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많다. 특히 투수들과의 장기계약을 꺼리는 분위기가 고조돼 있다. '30세 넘은 투수들과 장기 계약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말도 있다. 6년 이상 계약한 대표적인 FA 실패 사례로 최초의 '1억달러 맨' 케빈 브라운(1999~2005년, 1억500만달러), 마이크 햄튼(2001~2008년, 1억2100만달러), 배리 지토(2007~2013년, 1억2600만달러), 요한 산타나(2008~2013년, 1억3750만달러) 등이 꼽힌다.

하지만 특급 투수들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뜨겁다. 데이빗 프라이스(7년 2억1700만달러), 맥스 슈어저(7년 2억1000만달러), 잭 그레인키(6년 2억650만달러), C.C. 사바시아(7년 1억6100만달러), 존 레스터(6년 1억5500만달러) 등이 최근 장기계약한 FA 투수들이다. 클레이튼 커쇼, 저스틴 벌랜더, 펠릭스 에르난데스처럼 일반적인 장기 연장 계약을 한 투수들을 포함해 최근 활약상이 기대치를 한참 밑돈 투수는 거의 없다. 성공 확률로 따지자면 KBO리그보다는 메이저리그가 한 수 위인 것만은 틀림없다. 협상과 계약은 과감해도 선수들의 나이, 몸상태에 관해 세밀하게 접근하다는 소리다.

FA로이드는 달콤하지만 뒤에 감춰진 그림자는 피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케빈 브라운은 메이저리그 최초로 1억달러의 몸값으로 LA 다저스와 7년 FA 계약을 한 뒤 200이닝 이상을 3시즌 던졌고, 4시즌 동안은 부상에 시달렸다. 브라운은 FA 직전 3년 연속 230이닝 이상을 투구했다. 스포츠조선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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