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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로이드(FAroid)는 'FA를 앞둔 선수가 금지약물을 복용한 것처럼 유난히 힘을 발휘해 생애 최고의 성적을 올린다'는 뜻으로 설명할 수 있다. 금지약물이란 근육강화제인 스테로이드를 말하며, FA(자유계약선수)와 스테로이드를 합성한 조어다. 그만큼 FA 자격을 얻기 직전 시즌 믿기 힘들 정도로 맹활약하는 선수들이 많다는 것이다. 한 시즌 잘 하면 평생 살면서 만져보기 힘든 돈다발을 손에 쥐게 되는데, 그만한 동기부여가 또 어디 있을까.
투수의 경우도 FA를 앞두고 몸부림치는 게 야수들과 다르지 않다. 해외진출을 도모하려다 마땅치 않아 KIA와 1년 계약한 양현종은 최근 3년간 92경기에 등판해 41승26패-평균자책점 3.45를 기록했고, 평균 185⅓이닝을 투구했다. 양현종의 전성기는 최근 3년이다. SK 와이번스에 잔류한 김광현도 최근 3년간 85경기에 나가 38승23패-평균자책점 3.66을 기록했다. 두 선수는 2014년 시즌을 마치고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했다가 좌절한 경험이 있고, 이번에도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최근 3년간 전력 피칭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FA로이드는 후유증, 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4년짜리 FA 계약을 하고서 첫 시즌부터 만족스러운 성적을 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특히 투수들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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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올해도 FA로이드 후유증이 드러난 선수가 나타났다. 김광현은 팔꿈치 통증이 원인이 돼 메이저리그 진출이 좌절됐고, 결국 수술을 받아 계약 첫 시즌부터 통째로 쉬게 생겼다. 오는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출전을 강력 희망하고 있는 양현종도 지난해 생애 첫 200이닝을 투구를 하면서 더욱 신중한 몸만들기가 필요한 상황이다.
살짝 빗겨가는 내용이기는 하나 구단들은 FA를 코앞에 둔 선수들과 '연봉 고과'로 산정한 몸값 이상으로 재계약하는 경우가 많다. 이적시 보상 규모를 높여 다른 팀에서 부담을 갖도록 하려는 것인데, 이 또한 FA로이드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 FA로이드는 존재하며, 그것도 매우 뚜렷하다.
하지만 계약 이후는 조심스럽다. 부상과 같은 후유증을 한 두 번쯤은 감수해야 한다. 이번 겨울 FA 투수 영입을 하려다 뜻을 접은 한 구단 관계자는 "4년 계약을 했으면 한 시즌 정도는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두 번은 잘 해야 돈 들인 명분이 생긴다"고 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FA 계약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많다. 특히 투수들과의 장기계약을 꺼리는 분위기가 고조돼 있다. '30세 넘은 투수들과 장기 계약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말도 있다. 6년 이상 계약한 대표적인 FA 실패 사례로 최초의 '1억달러 맨' 케빈 브라운(1999~2005년, 1억500만달러), 마이크 햄튼(2001~2008년, 1억2100만달러), 배리 지토(2007~2013년, 1억2600만달러), 요한 산타나(2008~2013년, 1억3750만달러) 등이 꼽힌다.
하지만 특급 투수들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뜨겁다. 데이빗 프라이스(7년 2억1700만달러), 맥스 슈어저(7년 2억1000만달러), 잭 그레인키(6년 2억650만달러), C.C. 사바시아(7년 1억6100만달러), 존 레스터(6년 1억5500만달러) 등이 최근 장기계약한 FA 투수들이다. 클레이튼 커쇼, 저스틴 벌랜더, 펠릭스 에르난데스처럼 일반적인 장기 연장 계약을 한 투수들을 포함해 최근 활약상이 기대치를 한참 밑돈 투수는 거의 없다. 성공 확률로 따지자면 KBO리그보다는 메이저리그가 한 수 위인 것만은 틀림없다. 협상과 계약은 과감해도 선수들의 나이, 몸상태에 관해 세밀하게 접근하다는 소리다.
FA로이드는 달콤하지만 뒤에 감춰진 그림자는 피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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