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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게 되면 자연스럽게 '무장해제'가 된다.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조금 더 가까워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KBO리그를 대표하는 얼굴들과 밥상을 사이에 두고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야구장에서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 깊은 속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
모든 선수들이 꿈꾸는 대형계약으로 탄탄대로가 보장됐지만, 마음고생도 크다. 10년 동안 뛰었던 삼성 라이온즈를 떠나게 돼서 아쉬워하는 팬들의 목소리 그리고 액수에만 초점을 맞춰 비난하는 목소리. 애써 모르는 척도 하고 싶어도 쉽지 않다. 그때마다 차우찬은 '내가 잘하는 수밖에 없다'며 마음을 다잡는다.
아직 줄무늬 유니폼과 유광점퍼, "LG 트윈스 차우찬입니다"라는 인사가 어색한 남자. 어수선한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서, 빨리 1년 후가 됐으면 좋겠다는 선수. 차우찬과 삼성동의 한식 전문점에서 만났다. 절친한 친구가 좋아하는 식당이라 선택했다는 그는 "요즘 살이 쪄서 체중 조절을 해야 한다"면서 쑥스럽게 웃었다.
◇"일본음식 좋아해…관리의 기본은 잠!"
-평소에 어떻게 식사를 해결하나.
요즘은 거의 밖에서 사 먹는다. 서울의 한 호텔에 집을 구할 때까지 머물고 있어 사 먹을 수밖에 없다. 대구에 있을 때는 부모님이 오셔서 밥을 해주셨었는데 지금은 이렇다.
-좋아하는 음식이 있나.
밖에서 사 먹을 때는 주로 고기만 먹는 것 같다. 고기 별로 안 좋아한다.(웃음) 그런데 같이 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 고기를 좋아하더라. 나는 일식을 더 좋아하는데….
-'차우찬' 하면 아프지 않고, 건강한 이미지가 있다.
타고난 것도 있고, 관리가 큰 것 같다. 일단 잠을 많이 잔다. 시즌 때 하루에 보통 10시간씩 잔다. 안 그러면 운동이 안 된다. 잠을 푹 자야 한다. 또 시즌 중에는 술도 안 마신다. 그게 가장 큰 것 같다. 그러면 피로가 쌓일 일이 없다.
-선발 등판 전후 루틴에 특별한 것이 있나.
특별한 것은 없다. 전날은 무리 안 하고 쉬는 게 제일 좋고, 다음날은 마사지를 받는다. 너무 평범한가.(웃음) 삼성에 있을 때 그런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었다. 그 스케줄만 지켜주면 회복하는 데 아무 문제 없다.
-건강의 특별한 노하우가 결국 잠인가.
근데 사실 잠을 잘 자는 게 힘들다. 선수들 보면 잘 못 잔다. 생활 패턴이 안 좋다 보니까. 나는 머리 대면 자는 스타일이라 행복한 것 같다. 버스에서도 이동할 때 잘 자서 도움이 많이 된다.
-그래도 예민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잘 때 빛이 있으면 안 된다. 컴컴하게 자야 한다. 삼성에서 (윤)성환이형과 5년 동안 룸메이트였는데, 형은 텔레비전을 틀어놔야 잠을 잘 수 있다. 형이 선배니까 나는 이어폰을 끼고 음악 들으면서 잤다. 나중에는 형이 잠들면 내가 텔레비전을 끄고 그제서야 잠이 들었다. 워낙 오래 방을 써서 서로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괜찮았다.
◇뒤숭숭한 소문, 답답했던 차우찬
-데뷔 이후 이렇게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았던 때가 있었나.
그동안 없었고 앞으로도 없었으면 좋겠다.(웃음) 튀는 것, 주목받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한다. 어쩌다 보니 돈을 많이 받아서 관심을 받게 됐다.
-계약 과정에 여러 소문이 많았다.
솔직히 내 기사 댓글을 보면 욕이 많더라. 배신자 이미지가 생긴 것 같다. 사실 마음이 아프다. 내가 무슨 감정이 있어서 팀을 옮긴 것이 아니다. 그동안 잘해왔다고 생각했는데, 허탈감이 든다.
-스타 플레이어가 팀을 옮기면 아쉬움에 비난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없지 않나.
작년까지는 원소속 구단 우선 협상 기간이 있어서, 일주일이 지나면 무조건 나간다고 보니까 괜찮았던 것 같다. 올해부터는 무기한이니까 내가 삼성에 남는다, 다른 팀에 간다 이런 말들이 계속 쏟아져 오해가 더 커진 것 같다.
-상상만 해봤던 FA가 실제로 되니 어떻던가.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힘들더라.
-최종 결정은 어떻게 했나. 주위에 조언을 구했나.
주변에 많이 물어봤다. 최종 결정은 내가 하려고 마음먹고 있었지만, 마지막에는 여기저기 많이 물어봤다. 딱 반반이었다. 힘들게 옮기지 말고 원래 잘해주던 팀에서 편하게 하라고 말씀하신 분도 있었고, 아무도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신 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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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최전성기를 함께 했다. 우승을 자주 하면 감흥이 사라지지 않나.
절대 아니다. 할 때마다 더 좋다. 이제 LG에서 한 번 해야 하는데.(웃음)
-차우찬에게 삼성은 어떤 팀인가.
삼성이요? (고민하다가) 말로 하기 조금 힘들다. 나의 20대를 다 보냈고, 정말 열심히 했고, 지금까지 잘 챙겨주신 팀이다. 못 잊는다. 못 잊고, 감사하고, 죄송하다. 같이 계속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생각이 있어서 나온 거라 그 부분이 가장 죄송하다. 그래도 지금까지 정말 감사했다. 야구계는 결국 돌고 돌지 않나. 언젠가 다시 만날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삼성에 대해 좋은 기억밖에 없다.
-뭐가 가장 좋았나.
내가 있는 동안 감독님 한 번 바뀌신 것 빼고는 코치님들, 선수들 모두 그대로다. 바뀐 게 없다. 그게 가장 생각난다. 너무 친하게 잘 지냈고, 좋은 시절을 보냈다.
-삼성으로 이적한 우규민과 마치 트레이드를 한 것처럼 됐다.
규민이형과 계약 하면서 몇 번 연락을 했다. 사실 2016시즌 초반에 '우리 같이 뛰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엇갈리고 말았다.
-서로의 팀에 대해 이야기는 안해줬나.
했다. 나는 삼성이 너무 좋은 팀이라고 이야기해줬다. 코치님들, 프런트, 선수들 다 좋으니까 편할 거라고. 규민이형은 내게 다른 것 신경 쓰지 말고, 할 일만 하면 될 거라고 말하더라.
-삼성 김한수 감독이 마무리캠프 도중 잠깐 귀국해 만났다고 들었다.
삼성과 협상하는 날이었다. 원래는 계약 담당 직원분만 계시는 줄 알았는데, 식당에 들어가기 전에 신발이 2개 놓여있더라. 사장님이 오셨나 했는데 감독님이셨다. 깜짝 놀랐다. 감독님이 내게 "그냥 얼굴만 보러 왔다. 오늘 못 보고 다른 곳으로 가면 후회할 것 같다. 부담 주려고 온 것도 아니고, 남아달라는 이야기도 못한다. 후회 없이 한 번 보고 갔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마음이 짠했다.
-삼성에서 오랫동안 함께 한 인연이기도 한데.
선수 시절부터 함께 했지만, 분야가 달라서 함께 할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올 시즌에는 대화를 많이 했다. 더그아웃에 앉아서 함께 야구도 보고. 사실 감독이 되신 첫 날 전화가 와서 '너만은 남아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게 가장 마음에 걸리고, 많이 힘들었다.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