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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3일. 삼성 라이온즈 '라이온킹' 이승엽을 위한 날이었다. 이승엽은 포항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프로야구 최초 개인 통산 400호 홈런을 터뜨리며 한국 최고의 홈런타자임을 다시 한 번 만천하에 알렸다.
하지만 이승엽의 기쁨 뒤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바로 홈런을 맞은 롯데 대졸 신인투수 구승민이다. 항상 역사적인 홈런 뒤에는 희생양이 된 투수가 비운의 선수로 남는 법.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구승민에 대해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정말 씩씩하고 당찬 모습이 신기록을 작성한 이승엽만큼이나 멋졌다. 경기 후 구승민과 전화 인터뷰를 통해 솔직한 얘기를 들어봤다.
'홈런 맞으면 안된다'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나는 신인이기 때문에 공격적인 투구를 하려고 했다. 맞으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마운드에 올랐다. 그런데 막상 대기록이 되는 홈런을 맞으니 많은 생각이 들더라.(웃음)
-프로 세 번째 선발 등판이었다. 지난 두 경기보다 더 떨리던가.
400호 홈런 기록이 걸려있기에, 솔직히 앞선 두 경기와는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그래도 다른 생각을 안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신경 안쓰려고 해도 분위기가 그쪽(홈런)에 포커스가 맞춰지더라. 그래서 컨트롤이 흔들렸다. 앞선 두 경기는 아무 생각 없이 던졌다. 그런데 오늘(삼성전)은 정말 잘하고 싶었다. 그게 독이 됐다. 너무 잘하려 하기보다는 마음을 비우고 해야한다는 소중한 걸 배웠다.
-이승엽과의 첫 타석, 어떤 느낌이 들었나? (결과는 볼넷)
볼카운트 싸움을 불리하게만 하지 말자고 했는데, 쉽지 않았다. 계속 스트라이크를 넣고 싶었다. (강)민호형 리드도 정상이었다. 그런데 공이 안들어갔다.
-홈런이 나온 두번째 타석, 초구가 한가운데로 들어가 위험했다. 그리고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너무 평범한 공이 한가운데로 들어간게 아닌가 싶다.
초구는 체인지업으로 카운트를 잡자고 던진게 주효했다. 그 다음 코스는 정석으로 몸쪽 직구였다. 민호형이 몸쪽으로 붙었다. 자신있게 던졌다. 그런데 그게 실투로 몰렸다. 제대로 들어갔다면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지 모르겠다.
-맞는 순간 홈런임을 직감했나.
던지는 순간 아차 싶었고, 맞는 순간 '아~' 혼자 했다. 공이 날아가는걸 보고 '제발 넘어가지 마라'라고 했다. 이후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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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을 맞았다고 해서 부끄럽거나 쑥스럽지는 않다. 그래도 내가 잘해서 주목을 받으면 좋은데…. 솔직히 나는 무명의 신인투수이고 많은 분들이 모르는 선수다. 그래서 관심을 받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다시는 이렇게 관심을 받고 싶지 않다. 야구를 잘해서 꼭 다시 인터뷰 하고 싶다.(웃음)
-공교롭게도 팀 대선배 이정민도 이승엽에게 홈런을 맞고 평생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이정민은 2003년 이승엽의 한 시즌 56홈런 신기록 달성 당시 마운드에 있었다)
솔직히 홈런을 맞기 싫었다면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투수는 마운드에서 언제든지 홈런을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에 굳이 나쁘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진짜 솔직히 얘기해달라. 정면승부한 것을 후회하지 않나.
다시 똑같은 상황이 와도 민호형 사인대로 몸쪽 승부를 할 것이다.
-신기록을 달성한 대선배님에게 한마디 한다면.
내가 야구를 시작하기 전부터 선수 생활을 하셨고 대선수가 되신 분이다. 그라운드에서 상대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었다. "선배님, 축하드린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다음에 다시 만나면 그 때는 제가 꼭 선배님을 아웃시킬 겁니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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