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나 이제 어떡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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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서울 이화여대 ECC 삼성홀에서 열린 2015 KBO리그 프로야구 미디어데이&팬페스트 때 벌어진 사태. 이 자리에 참석한 선수들에게 공통 질문이 하나 주어졌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면 팬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현장에 참석한 팬들은 기대감이 가득한 눈망울로 각 구단 대표 선수들의 '우승 공약'을 기다렸다.
답변은 대부분 "옷을 벗고, 춤을 추겠다"였다. 삼성 박석민을 필두로 롯데 최준석과 두산 김현수, SK 조동화 등은 자신이 벗거나 혹은 동료의 옷을 벗기고 춤과 노래를 해서 팬을 즐겁게 하겠다고 밝혔다. 넥센 서건창은 염경엽 감독과 한국시리즈 MVP를 업고 내야를 돌겠다고 했고, KIA 양현종은 안경을 벗고 다음 시즌 개막전 선발로 나가겠다는 약속을 했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한화 이용규. "공약은 지킬 수 있는 걸 해야죠. 우승을 하면 내년 홈개막전 지정석을 모두 제가 쏘겠습니다." 호기로운 발언에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그러자 kt 박세웅은 "저는 개막전 스카이박스를 전부 쏘겠습니다"라며 분위기를 달궜다.
이런 경쟁은 급기야 우규민으로 하여금 '폭탄 발언'을 하게 만들었다. 애초에 우규민은 주뼛거리면서 "선배들과 상의해봐야 한다"고 답변을 미루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구단 대표들이 앞다퉈 공약을 발표하자 뒤늦게 "저도 우승하면 내년에 잠실구장을 찾는 LG 팬여러분께 유광점퍼를 사드리겠다"는 선언을 했다. 당연히 LG 팬들의 우렁찬 환호성이 장내를 뒤흔들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우규민의 약속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계산을 해보자. 현재 LG의 유광점퍼의 정가는 9만9000원. 직원 할인률(25%)을 적용하면 7만3500원에 살 수 있다. 문제는 우규민이 대상자를 구체적으로 지정하지 않고 "LG 팬여러분"이라고 해버린 데서 생겼다. 잠실구장 개막전(2만6000석 매진 기준) 입장객에게 모두 선물한다고 치면 발생 비용은 무려 19억1100만원(7만3500원x2만6000)이나 된다.
입장 관중의 절반만 LG팬이라고 해도 9억5550만원이 든다. 우규민의 2015년 연봉은 3억원. '고액 연봉'에 속하지만, 이걸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몇 년치를 모아야 한다. 도저히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심지어 LG측은 내년에는 유광점퍼 정가가 오를 것이라고 했다. 이쯤되면 일이 커져도 너무 커진 것이다. 약속을 지키려다간 파산할 수도 있다.
반면 이용규나 박세웅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우선 이용규의 경우. 대전구장의 내야 지정석(1, 3루)은 총 6997석이고, 주말 기준 가격은 1만1000원이다. 때문에 이용규가 2016시즌 홈 개막전(주말 경기 가정)의 지정석을 모두 구매하려면 7696만7000원이 필요하다. 웬만한 외제차 한 대 값이다. 하지만, 2013년 말 한화와 총 67억원의 FA계약을 맺은 이용규가 감당하지 못할 금액은 아니다.
박세웅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얼마일까. 이건 의외로 비싸지 않았다. 케이티위즈파크의 스카이박스인 '스카이라이프존'은 6인실(30만원, 이하 주말가) 8개, 10인실 1개(50만원), 12인실 4개(60만원), 24인실 3개(120만원) 등 총 16개 밖에 되지 않는다. 주말가로 이를 전부 구매한다고 쳐도 890만원이면 충분하다. 박세웅의 연봉이 3600만원이지만, 조금 무리하면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더군다나 '우승'을 하면 두둑한 보너스도 나온다. 이걸 감안하면 호기롭게 '지를' 수 있는 액수다.
결국 우규민만 난처한 입장에 빠지게 됐다. 전력면에서 LG는 분명 한화나 kt 보다는 우승가능성이 훨씬 크다. 지난해 플레이오프 진출팀의 저력이 살아있다. 때문에 우규민은 '공약 이행'에 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우규민은 "처음엔 생각도 못하고 말했는데 나중에 계산해보니 엄청나서 어떡하나 싶었다"고 난감해 했다. 그러나 '없던 일'로 할 수도 없다. 우규민은 "팬 여러분께서 우승에 대한 열망이 그만큼 강했던 것으로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 200분 정도로 하면 팬들도 이해해주시지 않을까. 어쨌든 (우승을 하면)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과연 우규민의 공약은 성사될 수 있을까.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