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거품 빠진 포스팅과 역주행하는 FA 시장

이명노 기자

기사입력 2014-12-14 10:46


또 한 번의 '포스팅 잔혹사'라고 봐야 할까. 포스팅 시스템을 통한 해외 진출은 '억' 소리나는 국내 FA 시장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세상이다.

메이저리그 진출 꿈에 부풀어 있던 대한민국의 두 좌완 에이스를 내년에도 볼 수 있게 됐다. 김광현은 포스팅 금액 200만달러(약 22억원)를 적어내 독점 교섭권을 가져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마감 시한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해 현 소속팀 SK 와이번스에 잔류하게 됐다. 양현종은 150만달러(추정) 가량의 포스팅 머니에 원 소속구단 KIA 타이거즈에서 포스팅을 아예 수용하지 않았다.


29일 오후 서울 상암동 스텐포드 호텔에서 SK 김광현의 메이저리그 진출 추진 기자회견이 열렸다. 메이저리그는 수년 전부터 김광현을 스카우트 1순위로 점찍었다. 류현진에 비해 제구력이 떨어지지만 파워는 오히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류현진처럼 2573만 달러의 이적료를 받기는 어려워도 500만 달러 이상을 입찰한 구단이 나온다면 SK가 미국 진출을 허락할 가능성이 크다. SK는 다음주 한국야구위원회(KBO)에 김광현에 대한 포스팅을 요청할 예정이다. 기자회견에서 김광현이 소감을 밝히고 있다.
김경민 기자 kyunmgin@sportschosun.com / 2014.10.29.
이처럼 포스팅 시장은 과거로 회귀한 느낌이다. 류현진의 성공으로 모두가 잊고 있던 '포스팅 잔혹사'가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실 국내 야구에서 포스팅에 성공한 선수는 LA 다저스의 류현진 뿐이다. 류현진은 지난 2012년 말 포스팅 시스템을 통한 메이저리그 진출에 도전해 2573만달러(약 283억5000만원)를 적어낸 LA 다저스와 입단 협상을 벌였고, 6년 총액 3600만달러(약 397억원)에 다저스 유니폼을 입었다.

하지만 류현진 이전 포스팅 사례를 보면, '악몽'과도 같다. 2002년 임창용(당시 삼성 라이온즈)의 65만달러(약 7억원)이 최고액이었고, 1998년 이상훈(당시 LG 트윈스)의 60만달러(약 6억5000만원)가 그 다음이었다. 2002년 진필중(당시 두산 베어스)은 시즌 전 응찰 구단이 없었던 굴욕을 겪은 뒤, 2만5000달러(약 3000만원)라는 금액을 받아 들고 또다시 고개를 숙여야 했다.

물론 세 번 모두 소속팀은 포스팅을 수용하지 않았다. 기대를 한참 밑도는 금액, 즉 '헐값'에 주축 선수를 보낼 수 없었다. 한국 야구를 보는 메이저리그의 시선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류현진의 등장으로, 포스팅에 대한 꿈이 부풀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류현진 이후 가장 큰 금액을 받은 김광현마저 좋지 않은 계약조건을 확인하곤, 2년 뒤 완전한 FA(자유계약선수)로 다시 해외 진출을 타진키로 했다.


'코리안몬스터' 류현진이 메이저리그 3연속 퀄리티 피칭을 선보이며 시즌 2승을 챙겼다. LA다저스 류현진은 14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체이스필드에서 열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원정 경기에 선발 출전 했다. 류현진은 6이닝 6안타 9삼진 3실점 했으며, 타석에서도 3타수 3안타를 선보이는 맹활약 끝에 승리 투수가 됐다. 3회 투구를 마치고 마운드를 내려오며 밝게 웃고 있는 류현진.
피닉스(미국 애리조나주)=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3.4.14
15일 포스팅을 신청할 예정인 강정호가 남아있지만, 뚜껑은 열어봐야 아는 법. 강정호에게 완벽한 장밋빛 전망을 내놓기는 어렵다. 윈터미팅 이후로 포스팅 시점을 미루고, 대형 에이전트가 시즌 때부터 적극적으로 강정호를 홍보해 인지도가 높다는 이점이 있지만 시장 상황을 완벽히 예측할 수는 없다. 몇몇 구단들이 관심에도 수비력에 대한 의문부호가 남아 있는 게 사실이다.


이처럼 포스팅에 도전하는 선수들이 '고전'하는 가운데, 현 시점에선 안정적으로 국내 FA를 노리는 게 보다 현명한 선택일 지도 모르겠다.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FA 선수들에게 간 돈은 무려 611억1000만원(14일 현재)이다. 19명 중 15명이 FA 계약에 성공했고, 이들에게 600억원이 넘는 돈이 투입됐다.

이중에서도 80억원 이상의 초대형 계약을 한 선수가 SK 최 정(86억원)과 두산 장원준(84억원), 삼성 윤성환(80억원) 등 세 명이나 된다. 지난해 역대 최고액을 쓴 롯데 자이언츠 강민호의 75억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통제불능으로 치솟고 있는 FA 시장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선수들의 눈높이는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황. 앞으로 제대로 컨트롤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앞에서 몸값 폭등으로 인한 부담을 호소하는 구단들도 결국 선수가 필요하면 돈보따리를 싸들고 움직이고 있다. 30년 넘게 한국 야구를 지배해 온 '구단 이기주의'는 여전하다.


7일 오후 목동구장에서 '2014 희망더하기 자선 야구대회'가 열렸다. '2014 희망더하기 자선 야구대회'는 야구계 살아있는 전설인 양준혁 해설위원과 이종범 해설위원이 직접 감독으로 나서며 후배들과 함께 자선경기를 펼쳤다.
양준혁의 '양신' 팀은 정수빈(두산), 김광현(SK), 송승준(롯데) 등 현역 선수들과 조성환, 서용빈, 최태원 코치 등이 참여하며, 이종범 감독이 이끄는 '종범신' 팀은 유희관(두산), 김태군(NC), 최정(SK)과 마해영, 이숭용, 방송인 이휘재 등이 함께 한다.
종범신 팀 최정이 3회 손주인의 적시타 때 득점에 성공하고 있다.
목동=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4.12.07
포스팅 시장과 온도차가 너무 크다. 그래도 여전히 선수들에겐 해외 진출이 우선이다. 만약 해외에서 실패하고 한국으로 유턴한다 해도, 국내 FA 선수들과 같은 거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들 '일단 나가고 보자'는 생각이다.

'스페셜'했던 류현진이 지나간 자리, 한동안 포스팅 시장에서 이를 채울 선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억' 소리 나는 국내 FA 시장에선 스타플레이어들이 '갑'이 된다. 포스팅은 거품이 빠져 가는데, 국내 FA 시장은 과감히 '역주행'하고 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역대 한국 프로야구 선수의 MLB 포스팅 사례

시기=선수(구단)=응찰 금액=결과

1998년 3월=이상훈(LG)=60만달러=수용 거부

2002년 2월=진필중(두산)=응찰 구단 없음=-

2002년 12월=진필중(두산)=2만5000달러=수용 거부

2002년 12월=임창용(삼성)=65만달러=수용 거부

2009년 1월=최향남(롯데)=101달러=세인트루이스 입단

2012년 11월=류현진(한화)=2573만7737달러=LA 다저스 입단

2014년 11월=김광현(SK)=200만달러=샌디에이고 협상 결렬

2014년 11월=양현종(KIA)=약 150만달러(추정)=수용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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