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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신'은 또 다시 8회가 돼서야 한국을 향해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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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한국은 대만을 상대로 좀처럼 경기를 풀어나가지 못했다. 1회초 무사 만루 기회를 잡고도 4번 박병호와 5번 강정호의 연속 삼진, 6번 나성범의 내야 땅볼로 점수를 뽑지 못한 게 불운의 시작. 이후 4회까지 대만의 22세 대학생 선발 궈진린을 공략하지 못해 0-1로 끌려갔다.
이런 불안감은 결국 역전으로 이어졌다. 6회말 대만에 2점을 내줘 2-3으로 뒤집혀진 것. 계속해서 한국은 5회 2사에 나온 좌완 천관위를 상대로 성급한 공격을 하다 아웃카운트만 늘려나갔다. 6, 7회 6명의 타자가 연속 범타를 당했다.
그러나 8회에 한꺼번에 전세를 뒤집었다. 1점 차로 뒤지던 8회초 공격. 선두타자로 나온 1번 민병헌이 좌전안타로 불씨를 살렸다. 손아섭이 초구 희생번트를 실패한 끝에 삼진을 당하며 다시 분위기가 가라앉는 듯 했는데, 3번 김현수가 우전안타로 1사 1, 3루 기회를 만들었다.
대만은 여기서 투수를 뤄지아런으로 바꿨다. 벤치의 다소 조급한 결정. 이건 한국에 오히려 도움이 됐다. 제구력이 흔들린 뤄지아런은 박병호를 볼넷으로 내보낸 뒤 강정호의 팔꿈치를 맞혀 밀어내기로 동점을 허용했다. 이어 나성범이 내야 땅볼로 3루주자 김현수를 홈에 불러들였고, 다시 황재균의 2타점 우전 적시타로 6-3을 만들었다. 안타 3개와 볼넷, 사구, 내야땅볼을 묶어 한꺼번에 4점을 뽑아 전세를 뒤집은 것.
사실 이 상황에서도 제대로 된 적시타는 황재균의 2타점 우전안타 뿐이었다. 동점은 밀어내기로, 역전은 내야 땅볼로 만들어냈다. 대만 마운드가 흔들린 덕분에 이길 수 있었다. '기적의 8회'는 이렇게 썩 깔끔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한국에 극적인 승리를 선물했다.
한국을 세계정상으로 이끈 '기적의 8회들'
한국 야구대표팀이 '8회의 기적'을 처음 경험한 것은 서울 잠실야구장의 개장 기념으로 열린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결승 때였다. '아시아 최강'이던 일본을 상대로 7회까지 노히트노런을 당하며 0-2로 끌려갔다. 그러나 8회 1사 1, 3루에서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와 한대화의 역전 3점 홈런이 나오며 결국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도 다시 '기적의 8회'가 나왔다.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0-0이던 8회에 이승엽이 일본 에이스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상대로 2타점 적시 2루타를 날려 승리를 부른 것. 올림픽에서 야구가 거둔 첫 메달의 기쁨이었다.
2006년 WBC에서는 두 번이나 '기적의 8회'가 재현됐다. 공교롭게도 이때까지 대상이 전부 일본이었다. 우선 1라운드 3차전에서는 1-2로 뒤지던 8회초 2사 1루 때 이승엽이 역전 2점 홈런을 날렸다. 이어 미국으로 장소를 옮겨 치른 2라운드 2차전에서도 0-0이던 1사 2, 3루 때 당시 '캡틴'이었던 이종범이 좌중간 외야를 완전히 가르는 2타점 적시 2루타로 일본을 물리쳤다.
역대 가장 극적인 '원더풀 8회'는 아마도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었을 것이다. 역시 상대는 일본이었다. 준결승전에서 만났다. 1-2로 끌려가던 한국은 7회말 '국민 우익수' 이진영의 적시타로 2-2 동점을 만들었다. 이어진 8회. 이전까지 계속 슬럼프에 허덕이던 이승엽은 일본 최고의 마무리 투수 이와세 히토키를 상대로 투런 홈런을 날렸다. 결국 한국은 8회에만 4점을 뽑아 6대2로 승리했고, 이승엽은 경기 후 진한 눈물을 쏟아냈다.
이렇게 이어진 '8회의 기적' '약속의 8회'는 장소와 시간을 뛰어넘어 다시 2014년 인천 문학구장에서 대만을 상대로 재현됐다. 한국 타선의 공격이 대만 투수들을 상대로 답답한 모습을 보였어도, 8회의 집중력만큼은 금메달을 목에 걸기에 충분했다.
인천=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