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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33년 역사에 이런 날이 있었을까. 야구장이 아닌, 공항에서 '야구 선수'를 하루 종일 볼 수 있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한화 선수단의 수장, 김응용 감독은 보이지 않았다. 평소 선수단과 동행을 꺼리는 김 감독은 이미 전훈지인 일본 오키나와로 들어간 상태. 훈련장 환경을 점검하며, 시즌 구상을 하기 위해 선수단보다 먼저 오키나와로 떠났다고. 선수단에게 부담주기 싫어하는 성격답게, 이번에도 김 감독은 선수들과 따로 움직였다.
한화 선수단은 이내 반가운 이들을 만났다. 함께 오키나와로 떠나는 KIA 야수조였다. 이들은 인천 시내 호텔에서 하루밤을 보내고 공항으로 왔다. 어두운 색 양복을 입은 장정들이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이색 풍경이 펼쳐졌다. 비시즌 동안 자주 만나지 못한 선수들은 친분이 있는 이들끼리 어울려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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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KIA의 주장으로 뽑힌 이범호는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떠난다. 첫번째 목표는 다치지 않고 훈련량을 많이 갖는 것이다. 올해 좋은 외국인선수들이 늘었는데 훈련량을 늘리지 않으면 굉장히 힘든 시즌이 될 것"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이어 "야수조가 먼저 오키나와로 들어가는데 감독님과 투수조가 오기 전까지 야수들끼리 대화를 많이 하겠다. 서로 교감을 쌓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훈련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화는 FA 듀오, 정근우와 이용규가 눈에 띄었다. 새 팀에서 떠나는 첫 전지훈련에 잠을 설쳤다는 정근우는 "팀 분위기에 적응하는 게 우선이다. 부상 없이 잘 해서 팀이 4강에 진입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팀 동료들과 찢어져 덕수고 동기인 최진행과 함께 사이판으로 재활훈련을 떠나게 된 이용규는 "진행이도 있고 트레이닝코치도 있어 혼자 하는 것보다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어깨 운동 과정이 힘들지만, 중요한 만큼 아픈 걸 참고 이겨내도록 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화와 KIA 야수조 외에도 한 비행기를 타게 된 적들은 많았다. 나란히 괌으로 행선지를 정한 삼성과 KIA 투수조도 오후 7시35분에 같은 비행기를 탔다. 만나기만 하면 치열한 '엘넥라시코'를 벌이는 LG와 넥센도 오후 9시에 나란히 미국 애리조나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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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이만수 감독은 지난해 급증한 실책(4위, 84개)을 지적하며, 캠프에서 '수비와 주루'를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또한 새 외국인선수의 보직과 포지션을 비롯해 모든 걸 백지상태에서 구상해나가겠다고 했다.
이 감독의 표정을 밝았다. 지난해보다 한결 마음이 가볍다고 했다. 체성분 테스트에서 탈락자 한 명 없이 계획했던 인원 모두 전지훈련을 떠날 수 있게 됐기 때문이었다. 지난해엔 기준치에 미달한 주축선수들이 대거 전훈 명단에서 제외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감독은 "선수들이 취지를 알고 잘 따라와줬다 출국 전에 주장 박진만과 조인성을 만나 식사를 하며 얘기했는데 일주일에 2~3일 정도만 운동해도 문제가 안 된다고 하더라"며 활짝 웃었다.
다음 타자는 NC였다. 미국 애리조나로 떠나는 NC는 오후 3시 비행기. 서울에서 숙박한 NC 선수단은 오전 11시 30분 일찌감치 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밟았다. 나란히 팀을 옮긴 FA 이적생 듀오 이종욱과 손시헌은 후배들을 위한 독특한 각오를 밝혔다.
어린 선수들과 어울리기 위해 최신가요를 듣고, 아이패드도 만져보기 시작했다는 이종욱은 "캠프 가면 뒤쳐지지 않도록 하겠다. 애들을 졸졸 따라다닐 것 같다"며 웃었다. 또한 솔선수범하는 모습으로 후배들을 따라오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내가 훈련하고, 경기에서 뛰는 모습을 존중해줬으면 좋겠다. 이렇게 훈련하고 뛴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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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출발 때만 볼 수 있는 이색 풍경은 무엇이 있을까. 가장 눈에 띄는 건 헤어스타일. 개인의 개성에 따라 각양각색이지만, 크게 봤을 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매년 다수의 선수들이 '짧은 머리'를 하고 나타난다. 한 달 넘게 진행되는 해외 전지훈련을 감안해 미리 짧게 머리를 다듬고 나가는 것이다. 삭발에 가까운 스타일부터, 투블럭 모히칸 등 최신 유행 스타일, 그리고 이발소에 다녀온 듯한 아저씨 스타일까지 다양했지만 '짧은 머리'가 대세였다.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고참들과 후배들의 출국 전 자유시간이다. 한 달 반이나 전지훈련을 떠나는 만큼, 각종 장비만 해도 엄청난 부피를 차지한다. 그래도 선후배의 체계는 있는 법. 후배들은 짐을 부칠 때 끝까지 남아있는 반면, 선배들은 빠르게 발권을 마치고 개인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었다.
인천공항=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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