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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에게 구속이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일까. 이왕이면 보다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공의 스피드가 투수의 수준을 결정지을 수는 없다. 제 아무리 빠른 공을 던져도 탄착점이 들쭉날쭉하거나 공끝이 좋지 못해 타자들에게 쉽게 얻어맞는다면 좋은 투수라 할 수 없다. 결국 '좋은 투수'와 '그렇지 못한 투수'를 나눌 수 있는 기준은 스피드보다는 제구력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KIA 좌완 신인투수 임준섭은 올 시즌 이런 교훈을 뼈저리게 느꼈다. 단순히 구속을 끌어올리는 것보다는 보다 정확하고 과감하게 던질 때 훨씬 좋은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후 임준섭은 한화전에서만큼의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문제는 제구력이었다.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잡아놓고서도 스트라이크존을 필요 이상으로 크게 벗어나는 공을 던지는 바람에 볼넷을 자주 허용하거나 의외의 순간에 장타를 허용하곤 했다. 결국 선발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불펜과 선발을 오가는 스윙맨 역할로 올 시즌을 마쳐야 했다. 최종성적은 평균자책점 5.23에 4승8패 2홀드. 시즌 초의 기대치에 비하면 초라하다고 할 수 있는 성적이다.
이런 임준섭이 시즌 초 난타당할 때 주위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바로 "구속만 조금 더 끌어올리면 된다"였다. KIA 코칭스태프들은 한결같이 "임준섭은 직구에 움직임이 자연적으로 많이 걸린다. 그래서 타자들이 정타를 치기가 쉽지 않다. 140㎞대 초반에 머물고 있는 볼스피드만 3~4㎞정도 올라오면 정말 까다로운 투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즌 중에 구속을 끌어올리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 제구력마저 무너질 수 있다. 임준섭이 그랬다. 제구력이 좋은 날과 안 좋은 날이 반복되곤 했다. 임준섭은 그래서 "아쉬움이 정말 많이 남는 해였다. 60점 밖에 못줄 것 같다"고 올해를 돌아보고 있다.
그렇다면 임준섭에게는 지금 '구속의 증가'보다는 '제구력의 강화'가 더 중요한 과제일 수 있다. 마침 비슷한 유형의 성공사례가 있다. 바로 올해 포스트시즌에서 크게 각광을 받았던 두산 좌완투수 유희관이다.
유희관은 임준섭과 마찬가지로 왼손 투수에 체형이 그리 크지 않다. 게다가 불펜과 선발을 오갔다. 특히 구속이 느린 투수다. 아무리 빨리 던져도 140㎞가 나올까말까 하는 정도. 그러나 유희관은 자신의 단점을 고치려고 하지 않았다. 역으로 장점을 극대화시켰다. 느린 공은 더 느리게 던지면서, 또 최대한 정확하게 던지려고 했다. 여기에 과감한 몸쪽 승부를 곁들였다. 대성공이었다. 유희관은 자신만의 독특한 투구 철학을 가지고 성공시대를 활짝 열었다.
임준섭이 벤치마킹해야 할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유희관을 그대로 따라하라는 것이 아니다. 유희관이 성공할 수 있던 '발상의 전환'을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구속이 조금 느리더라도 최대한 과감하고 정확하게 공을 던진다면 타자를 쉽게 이길 수 있다. 더군다나 임준섭은 자연스럽게 움직임이 심한 직구를 던진다는 장점을 타고 났다. 이런 임준섭이 자신의 장점을 더 크게 개발할 수만 있다면 유희관에 버금가는 '느린 공 투수'로 성장할 수도 있다. 과연 임준섭은 프로 2년차를 앞두고 어떤 준비를 하게 될까.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