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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과 통제는 상반된 개념이다.
승리라는 동상이몽을 꾸면서도 그 꿈에 다가가기 위해 어떤 방식을 취해야 할지 모험을 걸어야 한다.
16일 문학구장에서 벌어진 2012 팔도 프로야구 SK-롯데의 플레이오프(5전3선승제) 1차전은 이들 두 가지 전술이 제대로 충돌한 한판이었다.
하지만 각각 상반된 전술을 쓴 이날 경기에서는 자율이 이겼다.
SK의 모기업 SK텔레콤의 대표적인 광고 카피가 있다. '생각대로 T'다. 이날 SK는 모기업의 '생각대로' 정신에 완벽하게 충실했다.
이만수 감독은 1차전 선발로 김광현을 깜짝 카드로 내밀면서 자율신경 야구를 예고했다. "김광현이 등판하면 나오면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지는 시너지 효과가 있더라. 선수들이 알아서 잘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 감독은 선수들을 믿고 풀어줬고, 선수들은 각자 알아서 춤을 췄다. 작년까지 5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SK의 '가을 DNA' 위력을 제대로 보여준 것이다.
가을 사나이들의 생각대로 야구가 반짝 빛을 발한 것은 승부처였던 6회말이다. 1-1로 팽팽한 균형을 이룬 가운데 1사 1루에서 이호준이 타석에 섰다. 1루 주자 박재상이 롯데 투수 김사율이 3구째를 던지는 순간 2루를 훔쳤다.
그린라이트였다. 그린라이트란 딱히 도루사인이 없어도 주자가 알아서 도루 타이밍을 결정해 파란 신호등처럼 질주하는 것을 말한다. 박재상은 이호준의 우익수 플라이에 3루까지 진루했고, 박정권의 적시타 덕분에 역전 득점에 성공했다. 도루 1개가 팀을 살린 것이다. 박정권은 후속 김강민 타석에서도 도루에 성공했는데 이 역시 그린라이트였다.
사실 박재상과 박정권은 도루와는 거리가 먼 선수다. 올시즌 페넌트레이스에서 도루 갯수가 각각 6개(공동 45위), 4개(공동 66위)에 불과했다. 그런 그들에게 도루사인을 내리기란 도박이다. 하지만 선수들이 각자 자율신경망을 가동해 감독을 웃게 만들었다.
2회말 선취점 홈런을 친 지명타자 이호준 역시 생각대로 움직인 케이스다. 이호준은 그동안 유독 PO에서 약했다. 3차례 PO를 경험하면서 평균 타율이 1할5푼에 불과했다. 3차례 준PO에서 평균 4할6리였던 것에 비해 극과 극인 것이다. 이 감독은 "이호준같은 베테랑은 그냥 놔둬도 알아서 명예회복을 할 것"이라고 했다. 이호준 제가 알아서 개인 PO 사상 첫 홈런으로 한을 푼 것이다.
"우리는 워낙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다. 특별한 콜 플레이 없이도 무리없이 수비를 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던 박재상의 말이 딱 들어맞은 1차전이었다.
결국 이 감독은 이른바 '관중야구'로 1년전 기분좋은 추억을 떠올렸다. 프로농구의 '만수' 유재학 모비스 감독은 경기중에 다양한 전술로 매직을 다 부리지만 진짜 '만수' 이 감독은 그냥 보는 것으로도 최고 내공을 발휘한 것이다.
반면 롯데는 리모콘이 고장났다. 양승호 롯데 감독은 두산과의 준PO 4차전이 끝난 뒤 "큰 경기에서 선수를 믿을 게 못된다"며 독한 남자로의 변신을 예고했다. 6회초 1사 뒤 조성환을 과감하게 빼는 대신 정 훈을 대타로 투입해 볼넷을 골라낸 뒤 손아섭의 적시타로 동점에 성공한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이후 리모콘은 작동되지 않았다. 계속된 1사 1, 3루에서 박종윤이 사인을 잘못 이해하자 볼카운트 1B1S에서 이례적으로 대타 박준서로 바꾸는 강경책을 썼다. 하지만 박준서는 상대 유격수 박진만의 호수비에 막혀 병살타의 오명을 썼다. 6회 1사 1루에서 선발 유 먼을 빼고 역시 이례적으로 김사율을 두 번째 투수로 올렸지만 역전을 허용할 뿐이었다.
오작동 투성이였던 롯데는 자동 운전을 작동한 SK가 부러울 뿐이었다.
인천=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