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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만 6번, 시즌 막판 완투 쏟아지는 이유는?

이명노 기자

기사입력 2012-09-27 04:25 | 최종수정 2012-09-27 06:35



누가 완투 가뭄이라고 했던가. 시즌 막판 거짓말처럼 완투, 완봉이 쏟아지고 있다.

팀당 124~126경기를 치른 26일까지 완투는 총 28차례 나왔다. 아직 정규시즌은 열흘이나 남았다. '완투, 완봉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완투형 투수가 사라진 현실을 개탄했던 것 같다. 하지만 최근 페이스가 놀랍다. 이번 주에만 무려 6차례 완투가 나왔다. 이중 절반이 완봉승이다.

지난 23일 KIA 서재응이 목동 넥센전에서 프로 데뷔 첫 완봉승을 거뒀다. 같은 날 두산 니퍼트는 잠실 SK전에서 9이닝 3실점으로 호투했지만, 완투패를 당했다. 25일에는 KIA 김진우가 삼성전에서 서재응의 뒤를 이어 9이닝 1실점으로 완투승을 올렸다.

26일에는 완투가 폭발했다. 잠실에서 두산 노경은이 한화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뒀고, 대구에선 KIA 윤석민이 8회까지 노히트노런을 하다 아쉽게 완봉승에 만족했다. 맞상대 삼성 배영수는 9이닝 3실점으로 완투패. 이날만 완투가 3회 나왔다.

특히 KIA는 서재응-김진우-윤석민의 토종 선발 3인방이 릴레이 완투쇼를 펼치기도 했다. 도대체 왜 시즌 막판 들어 완투가 쏟아지는 걸까.

김 빠진 순위 다툼, 프로야구가 느슨해졌다?

일단 올시즌 유난히 뜨거웠던 순위 싸움을 가장 큰 이유로 볼 수 있다. 최근 프로야구는 급격히 열기가 사그라진 모습이다. 순위 싸움의 긴장감이 끝까지 지속되지 못하고, 일찌감치 4강팀이 결정났기 때문.

전반기까지만 해도 순위 싸움은 오리무중이었다. 하지만 5할 본능을 보이던 LG가 6월 중순부터 추락이 시작됐고, 돌풍을 일으키던 넥센이 후반기에 제 풀에 나가 떨어지면서 삼성 SK 롯데 두산의 4강 구도가 일찌감치 확정됐다. 상위 4개팀과 하위 4개팀의 격차가 너무 컸다. 순위표는 마치 1부리그와 2부리그로 나뉜 듯 했다. 오래 갈 것으로 보였던 박빙 구도가 예상 외로 일찌감치 끝나버린 것이다.


삼성이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손에 넣는 게 확실해지는 등 일찌감치 김이 빠졌다. 여기에 최근 롯데가 급격히 부진에 빠지면서 플레이오프 직행이 걸린 2위 싸움도 흥미가 사라졌다. SK가 무난히 가져가는 분위기. 게다가 3위와 4위는 큰 의미가 없다. 어차피 준플레이오프를 치르는 건 마찬가지다.


두산 선발 노경은이 26일 잠실 한화전에서 완봉승을 거두고 포수 양의지와 포옹을 하고 있다. 노경은은 지난 6일 잠실 넥센전에 이어 올시즌 두번째 완봉승을 거두었고 무실점 기록도 33이닝으로 늘렸다.
잠실=조병관기자 rainmaker@sportschosun.com/2012.09.26/
이렇게 프로야구가 느슨해지면 느슨해질수록, 기록이 나오기 좋은 환경이 된다. 더이상 순위 다툼과 관련이 없어진 팀에선 더욱 개인 기록에 욕심을 낼 수 밖에 없다. 이번 주 완투가 나온 매치업을 보자. 완투패한 니퍼트를 제외하곤, 모두 4강과 관련이 없는 팀이 껴있는 매치에서 나왔다.

완봉승은 더욱 기가 막히다. 4월과 5월, 8월에 한 차례씩 나왔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 달엔 무려 5번이나 나왔다. 그만큼 타자들은 무기력했고, 투수들은 힘을 냈다.

만약 플레이오프 진출이 가능한 4위가 가시권에 들어온 팀이 있었다면 이런 기록이 나왔을까. 죽자 살자 덤벼드는 팀을 상대로 제 아무리 '괴물 투수'라도 완투 완봉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잔여경기 일정, 투수는 유리하지만 타자는 불리하다?

들쭉날쭉한 잔여경기 일정도 갑작스런 완투 폭발에 한 몫 했다. 시즌 종료 후 아시아시리즈를 국내에서 개최하면서 올시즌은 유독 촉박한 일정을 소화하게 됐다. 아무리 늦어도 11월 초에 한국시리즈 7차전까지 모두 끝내야만 한다.

하지만 기후가 점점 변하면서 올시즌에도 우천취소 경기가 증가했고 결국 정규시즌은 10월6일에 종료될 예정이다. 포스트시즌은 미뤄지는 경기가 없다는 가정 하에 11월1일 종료된다.

9월 잔여경기 일정 역시 상당히 빡빡하게 짜여졌다. 매번 팀을 고려하는 것도 어려웠다. 둘째 주부터 매주 월요일 경기를 치렀으며, 2010년 이후 2년여 만에 더블헤더까지 열렸다.

가장 힘든 건 선수들이다. 매번 해오던 루틴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정을 받아들였다. '휴식일=월요일' 공식은 사라졌다. 잔여경기 수에 따라 팀별로 휴식일은 천차만별이었다. 단 한경기를 위해 1박2일 원정을 떠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연전 중간에 하루를 쉬기도 했고, 이틀을 쉬기도 했다.

하지만 등판 간격을 유지해주는 선발투수는 여기서 자유롭다. 정 일정이 안 맞으면, 로테이션을 거르면 그만이다. 하지만 타자는 잔여경기 일정에서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을 수 밖에 없다. 투수, 그것도 선발투수가 절대적으로 유리해지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두산 노경은에게 완봉패 당한 한화는 지난 주말 이틀 내내 경기가 없었다. 이틀 동안 KIA 김진우와 윤석민에게 농락당한 삼성은 지난주 5연전 뒤 월요일 대신 일요일에 휴식을 취하고 다시 4연전을 시작했다.

월별로 완투 횟수를 살펴봤을 때 타자들의 힘이 떨어지는 전반기 막판, 7월에 6회로 급증한 것도 이와 비슷한 이유다. 장기레이스를 펼치는 타자들이 체력 문제를 호소하는 여름, 완투 횟수는 증가했다.


이번 주 나란히 완투를 해낸 두 KIA 선발투수. KIA 서재응(오른쪽)은 23일 목동 넥센전에서 프로 데뷔 첫 완봉승을 거뒀고, 김진우는 이틀 뒤인 25일 대구 삼성전에서 2005년 이후 7년여만에 완투승을 신고했다. 여기에 윤석민마저 26일 경기서 완봉승을 올려 세 명의 토종 선발투수가 릴레이 완투를 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목동=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2012.09.23.
또한 지난 5년간 완투 횟수를 보면, 올시즌엔 오히려 완투가 증가한 모습이다. 이번 주 4일 간 6차례나 나온 게 컸다. 2007년 나란히 6회씩 기록한 류현진(한화), 리오스(당시 두산)에 힘입어 완투는 총 23차례 나왔다. 이후 2008년 21회, 2009년 20회로 조금씩 감소했다. 이 과정에서 완투형 투수도 줄어갔다.

2010년에는 다시 정점을 찍었다. 총 27번 나왔다. 류현진과 장원준(당시 롯데)이 5회, 3회씩 기록했고 무엇보다 1회 완투를 기록한 투수가 많았다. 지난해엔 고원준(롯데) 류현진 윤석민이 나란히 3회를 기록했지만, 다시 22회로 줄었다.

올시즌에도 고만고만한 양상이다. 니퍼트 이용찬(이상 두산) 윤석민이 3회씩 기록했지만, 완투 횟수에서 누구 하나 치고 나간 이가 없다. 완투형 투수가 사라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시즌을 통틀어 완투가 적게 나오는 것, 그리고 4일 만에 6회나 완투가 쏟아지는 것. 두 가지 현상 모두 시즌 내내 나온 '프로야구 수준이 떨어졌다'는 말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월별 완투(완봉) 횟수

월별=4월=5월=6월=7월=8월=9월

완투=3=3=4=6=3=9

완봉=1=1=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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