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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번째 실패다. 1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놀지도 못하고 야구도 못하는 LG, '신바람 야구'는 어디로
올시즌 팀내 최고참 최동수는 후배들에게 "너무 여리다. 성적에 대한 마음 때문인지 기가 죽은 모습이 자주 보인다"며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화가 나고 안쓰럽다. 운동장에선 '싸가지 없게' 굴어도 된다"고 쓴소리를 내뱉은 바 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가을잔치에 초대된 2002년 이후, LG는 둘 다 잃었다.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야구를 잘하는 모습도 아니다. 과거와 달리 인터넷이 생활화되면서 놀다가 뭇매를 맞는 경우도 많아졌다. 야구장 밖에선 열성적인 팬들의 눈길을 피하기 바쁘다. 그런데 야구장에서도 기가 죽을대로 죽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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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초반 잘 나가다 중반 이후 급격한 추락을 하는 LG를 두고, 흔히 '기초 체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한다. 시즌을 치르면서 조금씩 밑천이 드러나는 LG를 상대로 다른 팀들은 조금씩 '해볼 만 한데?'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착시효과가 사라지면, 추락은 순식간이다. 팬들은 언젠가부터 이를 두고 DTD(Down Team is Down)이라는 정체 불명의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어느새 LG의 추락은 당연한 듯한 조롱거리가 됐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전임 감독들은 시즌 포기의 수단으로 '리빌딩'을 꺼내놨다. 4강 진출이 힘들어진 뒤론 주축 선수들의 기용 시간을 줄이고, 가능성 있는 젊은 유망주들에게 기회를 줬다. 이 과정에서 선수단엔 쉽게 포기하는 '현실 안주'라는 나쁜 습관이 생겼다. 주축 선수들에겐 투지와 근성 대신 무의식 속에 '또 이렇게 한 시즌이 가는구나'라는 생각이 자리잡았다. 매년 같은 패턴이 반복 되면서도 경쟁은 없었다. 리빌딩이란 미명 하에 기용했던 선수들은 이듬해 벤치에 앉거나 2군에 머물렀다. 또다시 이름값 대로 자리가 결정됐다.
흔히 팬들이 언급하는 '스탯 쌓기'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시즌 중에 '4강은 힘들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하면, 선수들은 프로로서 기록으로 가치를 받아야 하기에 개인 성적에만 신경 쓸 수 밖에 없다.
입쥐 효과와 탈쥐 효과, 너 그거 아니?
언젠가부터 야구팬들 사이에선 '입쥐 효과'와 '탈쥐 효과'라는 말이 나돌았다. LG를 벗어난 선수들은 환골탈태하고 LG로 이적해온 선수들은 몸값을 못하는 사례가 쏟아지자, 팬들이 뒷 글자를 '쥐'라고 표현하면서 만든 은어다.
온라인상에서 LG팬을 조롱하기 위해 만든 말이지만, 그 실상을 뜯어보면 LG의 선수단 개편이 허술했다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다. '탈쥐 효과'로 최근까지 언급되는 이들은 현재 KIA에서 뛰고 있는 이용규 김상현, 넥센의 박병호 서건창 등이다. 서건창은 부상으로 방출된 뒤 군입대했으니 논외로 치자. 이용규는 2년차 시즌을 앞두고 트레이드됐다. 선수 보는 눈을 운운할 수 있지만, 첫 시즌이 실망스러웠고 비슷한 외야자원이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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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모두 트레이드 후 상대팀에서 주전기회를 보장받았다. 트레이드는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야만 성사될 수 있다. LG에선 '잉여 자원'이란 생각에 둘을 트레이드카드로 썼고, 상대팀은 필요한 선수라는 생각에 이 카드를 받아들인 것이다. 김상현은 같은 3루수였던 FA(자유계약선수) 정성훈이 입단한 뒤 팀을 떠났다. 박병호는 외야 BIG5(이병규 박용택 이진영 이택근 이대형)가 1루수와 지명타자 자리까지 꿰차자 기회가 사라졌다.
'사서 쓰지 뭐…' 근시안적인 선수구성, 회복도 힘들다
선수단 구성은 먼 미래까지 내다봐야 한다. 신인부터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고참급 선수까지, 철저한 설계가 필요하다. 하지만 LG의 선수단 구성은 근시안적이었다. 구멍이 나면 키워 쓰기 보다는 사서 썼다. 수차례 FA 잔혹사에 시달린 뒤에야 내부 육성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나란히 2009년 영입한 이진영 정성훈이 준수한 활약으로 FA 잔혹사를 깼지만, 너무 늦은 뒤였다.
이미 속은 곪을 대로 곪아있다. 아직도 LG 타선의 중심은 30대 이상 중고참 선수들이다. 라인업에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20대 선수는 4년차 오지환 정도다. 그렇다고 단숨에 기량 미달의 선수들을 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미 리빌딩을 외쳐봐야 쉽게 치유되지 않을 정도로 노쇠화가 진행됐다.
반면 '투수 FA는 안된다'는 속설을 증명한 진필중과 박명환 이후 투수 쪽은 '키워 쓰자'는 생각이 강했다.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LG의 순위는 6-6-6-8-5-8-7-6-6. 하위권을 맴돈 탓에 매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상위 순번을 차지할 수 있었다. 서울을 연고로 하는 덕에 1차 지명(2009년까지 시행)에서도 비교적 선택의 폭이 넓었다.
하지만 최근 LG의 선택은 모두 투수였다. 2009년 현재 주전 유격수인 오지환을 1차 지명한 뒤로 상위라운드에서 야수 지명은 보이지 않았다. 전면드래프트가 시행된 2010년엔 1~4라운드를 모두 투수로 채웠다. 2011년도 마찬가지. 연고지에서 오지환을 찍은 2009 드래프트 때도 2차 1~4라운드는 모두 투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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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구단은 당장 즉시전력으로 활용할 선수와 미래의 가능성을 보고 지명하는 선수를 전략적으로 나눠 지명한다. 현재 팀 사정이 반영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너무나 근시안적인 태도는 LG처럼 불균형을 부를 수 있다. 가까이는 2~3년 뒤에서 멀리는 5년에서 10년 이후까지 내다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최근 들어서야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포스트 조인성'에 대한 생각을 뒤늦게 하면서 지난해 1라운드에서 포수 조윤준을 지명했고, 올해는 내야수 강승호의 이름을 불렀다. 2~3년 안에 주전으로 키울 선수들이다. 지명 계획도 대폭 수정됐다.
LG 김기태 감독은 올시즌 팀 체질 개선에 팔을 걷어붙였다. 잃어버린 근성을 되찾기 위해 선수들에게 '포기'라는 단어를 먼저 입에 올리지 않기도 했다. 체질 개선 작업은 올 겨울에도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엔 확실히 바뀔 수 있을까. '올해는 다르다'는 말이 더이상 조롱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LG는 피나는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