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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권에서 멀어진 KIA. 상대적으로 관심이 뚝 떨어질 뻔 했다. 서재응이 아니었다면….
'2005년 서재응'으로의 귀환
2005년. 서재응으로선 잊을 수 없는 해다. 2002년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그해 뉴욕 메츠에서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프로 입문후 최고의 전성기였다. 14경기에 선발 출전해 8승2패, 평균자책점 2.59. '컨트롤 아티스트'란 별명답게 완벽한 제구력을 자랑했다. 90⅓이닝 동안 볼넷은 단 16개. 탈삼진은 59개로 삼진/볼넷 비율이 3.69에 달했다.
9월 한달 간 보여준 서재응의 피칭이 바로 7년 만에 재현된 '2005년 메츠 버전'이다. 스트라이크존 좌-우 경계선을 핥는 제구력과 절묘한 완급조절을 통한 타이밍 싸움이 메츠 전성기 때 모습을 꼭 닮았다.
아슬아슬한 '좌-우 놀이'의 진수
서재응을 극찬한 좌완 톰 글래빈은 서재응과 비슷한 스타일의 투수였다. 강속구는 없지만 뛰어난 제구력과 체인지업, 절묘한 수싸움으로 메이저리그를 평정했다. 글래빈은 가운데로 몰리는 공을 거의 던지지 않았다. 좌-우 경계선상에서만 놀았다. 주심이 경계선상의 공에 스트라이크 콜을 하지 않으면 공 반개씩 안으로 밀어넣으며 그날의 타깃을 잡는 두뇌피칭을 했다.
최근 서재응도 마찬가지. '좌-우 놀이'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가운데로 몰리는 공이 경기 당 손에 꼽을 정도다. 서재응의 피칭을 지켜본 타 구단 전력분석원들은 이구동성으로 "가운데 공이 거의 없다. 10개 던지면 9개가 몸쪽과 바깥쪽의 좌-우 경계선상으로 형성된다"며 혀를 내두른다.
사실 전반기 서재응은 스타일 변화를 시도했다. 파워 피칭이었다. 몸이 좋아지면서 왼쪽 다리를 크게 키킹해 상체를 꼬았다 던지는 코일링을 통해 힘을 극대화했다. 그 덕분에 패스트볼 구속이 3~4㎞ 빨라지는 효과를 봤다. 인하대 시절 파워피처로의 귀환 과정처럼 보였다. 하지만 잃는 것도 있었다. 아무래도 완벽한 좌-우 놀이는 힘들었다. 장-단점이 교차했던 변화. 그러던 가운데 문제가 생겼다. 허리에 통증이 찾아 왔다. 통증을 안고 파워 피칭을 계속하기는 무리였다. 힘빼고 원래 스타일로 돌아오니 오히려 제구력이 더 쉬워졌다. "운이죠, 뭐. 사실 요즘 계속 허리가 좋지 않거든요. 그래서 100% 세게 못던지는데 오히려 힘을 빼고 던지는 것이 제구에는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완봉승 후 최근 호투 비결에 대한 서재응의 설명. 그의 설명 속에 변증법적 진화 과정이 숨겨져 있다.
스피드로 구분할 수 없는 직구와 변화구
투수와 타자 간 대결의 기본은 타이밍 싸움이다.
그런 측면에서 투수의 공이 무조건 빠르다고 좋은 건 아니다. 빠르기만 하면 타자는 금방 적응한다. 중요한 것은 빠른 공과 느린 공의 속도 차다. 비슷한 궤적처럼 보일수록 속일 확률이 높다. 패스트볼 궤적과 흡사하게 날아오는 포크볼이나 스플리터가 대표적이다. 결국 속도 차가 얼마나 나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서재응의 피칭은 완급 조절의 진수를 보여준다.
완봉승을 거둔 23일 넥센전. 서재응의 포심 패스트볼 최고 시속은 144㎞에 불과했다. 하지만 같은 패스트볼이라도 최저 129㎞(사실 패스트볼이라 부르기 어색한 속도지만)짜리 느린 직구도 있었다. 이 정도 스피드면 흔히 선수들이 '직체(직구 체인지업이란 합성어의 줄임말, 한화 김혁민 등도 이런 구종을 던진다)'라고 부르는 혼합 구종이다. 아무튼 똑같은 구종인데 속도 차가 무려 15㎞다. 슬라이더도 최고 128㎞, 최저 113㎞로 15㎞ 차이가 난다. 체인지업성으로 던지는 투심 패스트볼 역시 최고 128㎞, 최저 118㎞로 10㎞ 차이다.
구종 간 스피드도 타자를 헷갈리게 하기 충분하다. 슬라이더와 투심의 최고 시속(128㎞)과 포심 패스트볼 최고 시속(129㎞)이 비슷하다. 포크볼(125~132㎞)도 마찬가지. 공이 타자 앞에서 쭉 밀고 들어올지, 마지막 순간 고개를 살짝 숙일지 스피드만으로 구종을 구분해 배트를 내미는 것이 도무지 불가능하다. 눈으로는 별로 빨라 보이지 않는데도 배트의 스윗 스팟을 절묘하게 피해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