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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화 선수단에는 외모가 크게 달라진 투-타 두 선수가 있다.
김태균은 위를 잘랐고, 안승민은 밑을 확 밀었다.
안승민은 올해 스프링캠프 때부터 수북하게 턱수염을 길렀다. 같은 방을 쓰던 대선배 박찬호를 따라하기 위해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상대 타자에게 강인하게 보여야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는다"며 올시즌 내내 애지중지 관리해 온 수염을 완전히 밀어버린 것이다.
그럼 다시 기를 수염을 왜 깎았을까. 안승민은 "올시즌도 다 끝나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보통 남자들이 새롭게 각오를 다질 때 머리나 털을 밀어버리 듯이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비해 김태균은 좀 다른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에게 2012시즌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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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아도 스포츠형 짧은 헤어 스타일이던 김태균은 양쪽 옆머리를 확 밀어버리고 가운데 머리를 남겨놓았다.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이 한때 유행시켰던 이른바 '모히칸 스타일'과 흡사하다.
하지만 김태균은 "칭기스칸 스타일"이라며 모히칸 스타일과 차별화를 강조했다. 그러고 보니 영화에서 가끔 등장하는 몽골제국 전사의 머리와 비슷해 보이기는 한다.
이에 대해 주변에서는 "김태균이 야망의 정복자 칭기스칸의 장점만을 골라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싶은 모양"이라고 해석했다.
농담이지만 그럴 듯한 해석이다. 칭기스칸은 12∼13세기 몽골제국을 건국하고 유라시아 대륙을 호령했던 황제다. 더구나 일개 부족의 수장이었던 아버지의 대를 이어 부족을 제국으로 끌어올린 그는 9만명의 병사로 금나라 45만 대군을 무찌르며 아시아, 유럽 정복을 시작했다.
여기에 김태균이 벤치마킹을 하고 싶은 구석이 있다. 우선 올시즌 타자의 황제가 되겠다는 야망을 끝까지 이룩하고 싶은 것이다.
23일 현재 김태균은 시즌 평균 3할7푼1리로 타율 선두를 달리고 있다. 꿈의 4할 타율은 사실상 물건너 갔다. 이 부분은 김태균도 인정한다.
하지만 지난 2009년 박용택(LG)이 타격왕을 차지할 때 작성했던 3할8푼2리의 높은 타율에 근접한 기록으로 복귀 첫 해 타격의 황제가 되고 싶은 마음은 숨길 수가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팀도 잘나가야 한다. 남은 경기에서 한화가 '약자'의 이미지서 탈출해야 김태균의 방망이도 춤을 출 수가 있다. 사실 한화는 올시즌 한 번도 꼴찌에서 탈출하지 못한 '약자'다.
하지만 칭기스칸이 금나라에 비하면 수적으로나 전력상으로나 '약자'였는데도 불구하고 '강자'를 정복했다. 한대화 감독 사퇴 이후 14경기 동안 8개 구단중 최고 승률(0.643·9승5패)을 자랑하는 한화가 '약자'의 설움에서 탈출하고 있는 점과 비교하면 칭기스칸과 비슷한 것이다.
김태균은 비록 최하위이지만 시즌이 끝날 때까지 더이상 '약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어 칭기스칸을 마음에 새긴 것이다.
공교롭게도 김태균이 지난 17일 칭기스칸 스타일로 변신하기 전과 후가 크게 달랐다. 9월 들어 16일까지 김태균의 타율은 2할6리에 그쳤다. 이 때의 갑작스런 부진이 4할 꿈에서도 멀어지게 만들었다.
한때 올시즌 처음으로 3경기 연속 출루에 실패하다가 다시 안타를 치기 시작했을 때 칭기스칸 스타일로 변신했다. 이 머리로 변신한 이후 18일부터 23일까지 4경기 동안 타율은 4할5푼5리(11타수 5안타)로 급상승했다.
김태균에게 칭기스칸은 불굴의 의지를 상징하는 올시즌 마지막 화두인 셈이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