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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즈의 착각, 이장석 대표의 자아도취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2-09-18 09:12 | 최종수정 2012-09-18 09:12


2012 프로야구 삼성과 넥센의 경기가 10일 대구 시민구장에서 열렸다. 3회말 1사 만루 넥센 장효훈이 삼성 조동찬에게 좌익수 앞 1타점 역전타를 허용하자 김시진 감독이 포수 허도환을 불러 이야기를 하고 있다. 대구=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야구전문기업인 넥센 히어로즈가 전반기 돌풍을 일으켰을 때 신선하게 느껴졌던 것은 만년 하위팀 히어로즈의 이질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히어로즈는 NC 다이노스를 포함해 한국 프로야구 나머지 8개 구단과는 확연히 다른 팀이다. 유일하게 모기업의 지원없이 철저하게 독자생존을 하고 있다. 그래서 히어로즈 프런트는 다른 팀 보다 치열하게, 효율적으로, 스마트하게 일을 처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른 팀 보다 히어로즈는 프로들이 모인 진짜 프로집단이라는 말을 듣곤 한다. 마케팅의 프로, 운영의 프로, 홍보의 프로들이 똘똘 뭉쳐 새로운 형태의 프로구단 모델을 만들어 갔다.

구단 규모가 작아도, 팀이 출범한 후 지난 5년 간 히어로즈는 늘 좋든 싫든 주목을 받았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는 히어로즈는 늘 다른 구단들의 견제를 받아야 했다. 분명 튈 수밖에 없고 튀어야 사는데도 역설적으로 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노력을 해왔다.

이번 시즌 초반 히어로즈는 한때 1위를 달렸고, 3위로 전반기를 마감했다. 홈런타자 강정호, 중심타자로 거듭난 박병호, 신고선수로서 세상에 이름을 알린 허도환과 서건창, 그리고 2년 만에 친정팀에 복귀한 이택근. 히어로즈는 사연있는 선수들의 스토리로 가득찬, 이야기가 되는 팀이었다.

운영자금이 부족해 스타선수를 팔아서 팀을 꾸려간다는 비난에 시달렸던 히어로즈다. 그랬던 히어로즈가 한해 구단 운영자금을 두 배 이상 쓰는 '있는 집 자식' 기업구단들 위로 훨훨 날았다. 기업구단들도 부쩍 커버린 히어로즈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전반기 천덕꾸러기 미운오리새끼 히어로즈가 백조로 거듭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김시진 감독 경질을 보면서 히어로즈 수뇌부가 조급증에 빠진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히어로즈가 출범 5년째인 올시즌 첫 포스트 시즌 진출 가능성이 높았던 게 사실이다. 전반기 히어로즈는 무서울 게 없는 팀이었다. 투타 밸런스가 잘 맞아 떨어졌고, 새로운 스타들이 등장해 팬들을 끌어모았다. 막내 히어로즈가 당당하게 형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불꽃은 순식간에 타올랐다가 슬그머니 잠들었다. 히어로즈는 17일 김시진 감독을 후반기 성적 부진을 내세워 경질했다. 계약기간이 2년이나 남은 김 감독은 말 한마디 못하고 짐을 싸야 했다. 과대평가만큼 무서운 내부의 적도 없다.

성적이 안 좋으면 당연히 책임을 져야하는 게 감독의 숙명이다. 하지만 계약기간이 2년이나 남은 김시진 감독을 서둘러 시즌이 종료되기도 전에 경질할 필요가 있었나 의문이 든다. 더구나 히어로즈 말대로라면 남은 2년 간 연봉을 보전해주면서까지.

김시진 감독 경질과정을 보면서, 구단 수뇌부가 지나치게 전반기 성적의 달콤한 맛에 도취해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들이 구상하고 꿈꿨던 일들이 실제로 구현되는 걸 보면서 착각하는 것 같다. 히어로즈 전력이 상위권을 노릴만한 수준이 아닌데도, 전반기 기대하지 못했던 선전이 '히어로즈는 4강 전력'이라는 착시를 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지나친 자신감도 의심해봐야할 것 같다. 감독만 바꾸면 이제 해볼만하다는 그런 자신감 말이다.

히어로즈는 구단주에 구단주대행이 있고, 프런트 수뇌부가 주주로 참여하고 있지만 사실상 이장석 대표의 일인기업이나 마찬가지이다. 다른 기업구단 사장들은 감독을 경질하거나 선임을 하려면 모기업 고위층으로부터 재가를 받아야 한다. 때로는 고위층과 인맥을 통해 지도자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히어로즈는 이런 구태와는 거리가 있다. 이 대표의 의중대로 신속하게 결정을 내리면 된다.

이 대표는 야구에 조예가 깊고 전문가 수준의 식견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프로야구 구단 운영이라는 필생의 꿈을 이룬 이 대표다. 그런 그가 자아도취에 빠져 독선적으로 구단을 쥐락펴락한다면 한국형 프로야구 모델 히어로즈는 영원히 그저그런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김시진 감독 경질이라는 이 대표의 승부수가 어떤 결과를 낳을 지 모든 야구인이 지켜보고 있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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