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화수분인가, 유배지인가. 넥센 2군 강진구장을 가다

남정석 기자

기사입력 2012-07-13 10:21 | 최종수정 2012-07-15 15:33



지난 90년대 중반, 당시 화제가 됐던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한권을 끼고 찾아갔던 전남 강진은 수도권에서 무척 멀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200여년전,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으로 유배를 갈 때는 한양에서 천리길을 하염없이 내려왔을 것이다. 월출산이 뒤에 버티고 있고, 강진만이 앞을 가로막고 있으니 섬과 다름없는 조선 제일의 오지였던 셈이다.

요즘 야구계에서 새삼 강진이 부각되는 이유는 넥센 히어로즈의 2군 본거지가 강진 베이스볼파크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최하위에 불과했던 넥센이 올 시즌 중위권을 유지하는 탄탄한 전력을 과시하고 있는데다 '화수분'처럼 낯선 선수들이 계속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어 더욱 그렇다.

그래서 넥센에는 부진에 빠질 경우 "강진 한번 내려갔다 와야겠다"거나, 반대로 실력이 좋아졌을 경우 "강진 다녀오니 달라졌구나"라는 말이 농반진반처럼 퍼져있다. 하지만 강진을 다녀온 선수들은 "다시 내려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잘해야겠다"라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과연 어떤 곳인지 궁금증이 들었다. 2군 올스타전 브레이크를 앞두고 찾은 강진은 야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인 것은 분명했지만, 프로 선수들이 머물기엔 상당한 아쉬움이 남는 곳이었다.

멀고도 먼 그 곳

요즘 수도권에서 출발, KTX나 비행기로 도달할 수 있는 지역이 많아졌지만 강진은 여전히 육로 교통이외엔 뾰족한 수가 없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강진버스터미널까지는 376㎞. 경부고속도로로 시작해 천안논산, 서천공주, 서해안 그리고 영암순천까지 5개의 고속도로를 번갈아 탄 끝에 4시간20여분만에 강진에 도착했다. 그나마 도로 사정이 좋아져서 예전보다 30여분 정도 빨라졌다고 한다. 그래도 교통사정이 계속 나아지고 있는 요즘, 수도권에서 육로로 이르는 가장 먼 길 가운데 하나는 분명했다.


생활의 본거지가 수도권인 넥센 선수들은 집을 오가거나 1군과 2군을 오르내릴 때 대부분 광주까지 비행기나 KTX를 타고 이동, 강진까지 차를 타고 1시간여를 더 들어가야 한다. 8개 구단 가운데 1군과 2군 본거지의 거리가 유일하게 1시간이 넘어가는 곳. 컨디션과 몸 상태 유지가 경기력에 관건인 선수들에겐 긴 이동거리가 상당한 부담임은 물론이다.

스프링캠프지가 따로 없다

강진베이스볼파크는 강진읍에서도 10㎞가 떨어져 있다. 하루에 버스가 2번 들어가기에,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선수들은 자신 혹은 동료들의 차를 타고 읍내를 왔다갔다 해야 한다.

첫 느낌은 해외 스프링캠프지에 온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쪽면이 바다에 접해있고, 야구장만 4개면에다 2개의 실내연습장을 보유하고 있다. 마침 11일에는 우천으로 인해 NC 다이노스와의 2군 경기가 취소됐기에 야구장은 적막했다.

"휴양지에 온 것 같다"는 첫마디에 넥센 관계자는 "그런 소리 하지마라"며 손사래를 쳤다. 바다의 정취를 맛보며 하루 이틀 정도 머무는 것은 좋을 수 있어도 생활을 해야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얘기. 이를 느끼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2군은 2군이다?

숙소 한켠에 참개구리, 청개구리가 담겨 있는 통이 보였다. 여기에 잠자리를 잡아 먹이로 넣어주기도 한다. 도시에선 좀처럼 보기 드문 장면. "비가 오면 개구리나 두꺼비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일종의 소일거리다." 경기가 취소된 후 저녁 식사 전이라 휴식 시간이지만 별달리 할 일이 없다. 몇몇 선수들은 삼삼오오 모여 읍내에 나가 차를 마신다거나, PC방을 들르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드물다.

숙소에 남아 밀린 빨래를 한다든가, 평소에 못보던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한다. 밤에는 꼭 넥센 1군 경기를 챙겨보는 것도 중요한 일과.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선수들이 식당으로 몰려든다. 이날의 특식은 안동찜닭. 하지만 이외에는 김, 김치, 나물, 생선, 오징어국 등 일반인들의 식단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국내는 물론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1군과 2군의 처우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고 한다.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오기를 키우라는 일종의 자극제일 수도 있다.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새삼 아쉬움이 든다.


프로 선수들에겐 열악한 환경

숙소에 들어가봤다. 유니폼, 배트, 글러브 등 장비가 여기저기 쌓여 있다. 복도에는 빨래 건조대가 가득했다. 설계 당시 프로가 아닌 학생 선수들이나 일반 동호인들의 전지훈련지로 만들어진 곳이라 비교적 협소한 방에 2층 침대 2개씩 놓여 있다. 여기에 2명씩 생활하지만 프로 선수들이 생활하기엔 여건이 열악하다. 침대 길이가 짧아 키가 큰 선수들의 발은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다.

실내연습장에 놓인 웨이트 장비 중 러닝머신은 선수들이 이용하지 않아 먼지가 쌓인지 오래. 선수들이 재활 훈련을 하거나 마사지를 받은 트레이닝실은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해 활용하고 있다. 그나마 낡은 선수단 버스는 최근 신차로 교체됐다.

A선수는 "2군 선수들이라도 대부분 1군에 붙어 있기에 자신의 집이나 구단에서 마련한 숙소에서 다니는데, 여기에선 할 수 없이 숙소생활을 하지만 너무 시설이 좋지 않다"며 "빨래를 말리기 위해 난방과 에어콘을 동시에 트는 것이 이해되냐"고 되물었다. B선수는 "여기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서 꿈을 키우는 것보다는 스스로 포기하는 선수들도 많이 봤다"며 "프로 선수들에겐 야구만큼이나 개인 생활도 소중하다"고 하소연했다.

넥센 2군 양승관 감독도 이를 안타깝게 생각했다. 양 감독은 "야구에 전념할 수는 있지만, 가족이나 지인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선수들이나 스태프들에게 가장 힘든 부분이다. 최상의 경기력을 가진 선수들을 만들기 위해선 2군이 1군과 가까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넥센 관계자도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홈구장 근처인 경기나 강원권에서 대체지를 물색하고 있는데, 마땅한 곳이 아직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꿈은 포기하지 않는다

상황은 열악하지만 1군에 올라가 그라운드를 누빌 꿈까지 포기하지는 않았다. 야간 자율 훈련에는 주로 5년차 이하의 선수들이 참가해 배트를 휘두르거나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며 땀을 흘렸다. 포수 지재옥은 "강진에 내려올 때면 마음을 다잡게 된다"고 했고, 내야수 장영석은 "1군에서 언제든 부를 수 있기에, 늘 긴장을 하고 경기에 나선다"고 말했다. 군에서 제대한 전동수도 오후 9시까지 배트를 쉼없이 돌렸다.

12일에도 전날 내린 비로 경기장 사정이 좋지 않아 NC와의 경기가 취소되자 오전 9시부터 3개 구장으로 나뉘어 훈련이 시작됐다. 투수조와 야수조로 나뉘어 수비와 배팅 훈련을 하는데, 스프링캠프지에서와 같은 여유로움 속에서도 진지함이 흐른다. 함께 모여 러닝을 하며 2시간여의 훈련을 마쳤다.

올스타 브레이크를 앞두고 오랜만에 갖는 2박3일의 휴식. 양 감독은 "프로 선수라는 생각을 잊지말아라. 잘 쉬고 일요일 훈련 때 반갑게 다시 만나자"고 선수들에게 당부했다.

'천혜의 고도' 강진에서 만난 넥센 선수들의 눈빛에는 희망과 아쉬움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과유불급'(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이라는 말이 있다. 야구에만 전념하고 다른 것은 당분간 잊어야 한다는 것은 프로 선수들에게 너무 가혹한 말은 아닐까. 2군이 더욱 힘찬 팀의 원동력이 되기 위해선 1군 못지 않는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강진=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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