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대타 삼진'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김용 기자

기사입력 2012-05-04 10:49



경기를 지켜보던 롯데팬들이 한숨을 내쉬었을 장면이 있었다. 장면 하나. 2일 목동 넥센전에서 4-6으로 뒤지던 9회초 선두타자로 대타 이승화가 나왔지만 허무하게 삼진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장면 둘. 3일 넥센과의 경기에서 1-2로 리드를 당하던 7회 1사 만루의 천금같은 찬스에서 손용석이 대타로 등장했지만 역시 삼진을 당하고 말았다. 롯데가 역전승을 거두지 못했다면 두고두고 아쉬움을 남겼을 만한 순간이었다.

롯데와 넥센의 경기가 열렸던 목동구장은 규모가 작은 구장이다. 기자실에서 화장실에 갈 때 양 팀의 덕아웃 뒤편이 훤히 보인다. 특히 라커룸이 없는 원정팀 선수들의 장비가 쭉 놓여있고 경기 중간중간 왔다갔다하는 선수들의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2일 경기 5회말 종료 후, 클리닝 타임 때 화장실에 가는데 복도에서 롯데 유니폼을 입은 두 선수가 쉼 없이 방망이를 돌리고 있었다. 이승화와 손용석이었다. 주전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지 못해 언제 자신에게 기회가 찾아올지 모르는 두 사람이었다. 경기 내내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더욱 컸다. 하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고 방망이를 묵묵히 돌렸다. 서너번 롯데 덕아웃 뒤편을 힐끔 바라봤다. 형식적인 연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똑같이 스윙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이닝이 끝날 때면 덕아웃 밖으로 뛰어나가 밝은 표정으로 동료들을 맞이하는 역할도 두 사람의 몫이었다. 주전 선수들보다 더욱 분주했다.

이들의 노력은 경기장에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난 4월25일 대구 삼성전이 우천으로 취소됐을 때 롯데 선수들이 훈련을 한 경산 삼성 2군 훈련장을 찾았다. 이날 훈련은 자율적인 성격이 강했다. 많은 고참 선수들이 피로를 풀기 위해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젊은 선수들 틈 사이에서 배팅 훈련을 하는 이승화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82년생인 이승화도 이제는 어느새 중고참. 그에게 "힘들텐데 쉬지 뭐하러 나왔느냐"라고 말을 건네자 "내가 쉴 틈이 어딨겠나. 경기를 뛰며 팀에 공헌한게 없기 때문에 쉴 자격도 없다. 공 한 개라도 더 쳐야 한다"며 구슬땀을 흘렸다. 개막 전 물집으로 만신창이가 된 이승화의 손바닥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너무 많은 스윙 훈련을 한 탓이었다. 그래도 훈련을 먼추지 않았다. 이승화는 "이제는 모두 굳은살로 변해 괜찮다"고 담담히 말했다.


손용석은 올시즌을 누구보다도 의욕적으로 맞았다. 신인이던 2006년 이후 해외 전지훈련 명단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기 때문. 손용석은 당시 "훈련하는게 너무나 즐거웠다. 원 없이 훈련하고 왔다"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1군에 그의 자리는 없었다. 신인 신본기의 가세로 치열해진 내야 경쟁을 뚫지 못했다. 하지만 2군에서도 의욕을 잃지 않고 훈련에 매진했다. 롯데가 3연패를 당하기는 했지만 NC와의 3연전에서 손용석은 홈런을 치는 등 고군분투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번 넥센전을 앞두고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2군에서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보완하기 위해 애썼다. 1군에 올라오니 좋다"며 밝게 웃었다.

두 사람은 이번 3연전 중 자신들에게 돌아온 딱 한 번씩의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대타로서의 인생이 얼마나 힘든지는 일반팬들이 쉽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프로 선수들에게는 매 타석이 부담의 연속이다. 대타는 더 하다. 대부분 중요한 찬스 때 기용된다. 모든 이목이 집중돼 부담이 더욱 가중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이들에게 주어진 한 타석은 천금같은 기회다. 코칭스태프에게 눈도장을 찍어야 주전으로 발돋움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이 기회를 꼭 살려야 한다는 부담감에 몸은 더욱 움츠러들게 된다.

이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해줄 선수가 있다. 바로 올시즌 주전 1루수로 도약한 박종윤이다. 박종윤은 시즌 초반 매서운 타격감을 과시하며 롯데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박종윤 역시 지난 11년간 대타 인생을 살아야 했다. 그는 "경기에 뛰지 못하다 갑자기 타석에 들어서 투수들의 공을 완벽하게 쳐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일은 아니다"라면서 "일단 공을 맞혀야한다는 생각이 앞서게 되면 절대 좋은 타구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대타로 나서 삼진을 당하지 않으려면 그렇게 소극적인 배팅을 할 수 밖에 없다"면서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올시즌 경기에 자주 나가다보니 자연스럽게 타격감이 조금 오른 것 뿐"이라고 말했다.

백업 선수들이 대타로 나서는 한 타석을 위해 흘리는 땀방울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대타로 나서 좋은 결과를 거두지 못했을 때, 팬들도 아쉽겠지만 그 순간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은 바로 선수 본인일 것이다. 이제는 안타를 치든, 삼진을 당하든 그 한 타석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