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험버(30·시카고 화이트삭스)는 9회말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잡고 머리를 마운드에 쳐박았다. 지난 7년, 고생했던 기억들이 주마등 처럼 스쳐지나갔기 때문이다. 가는 곳마다 찬밥 취급을 받았다. 그의 프로필에는 트레이드, 웨이브(지명권양도 가능) 공시, 마이너리그 추락이 전부이다시피했다. 지난해 화이트삭스에서 풀타임 선발로 출전하고부터 그는 메이저리거였다.
험버는 공 96개로 27타자를 요리했다. 한 명의 타자를 처리하는데 평균 3.56개의 공을 던진 셈이다. 험버의 투구수는 퍼펙트 게임을 달성한 선수들 가운데 두번째로 적었다. 1999년 7월 19일 데이비드 콘(당시 뉴욕 양키스)이 몬트리올(현 워싱턴)을 상대로 기록한 88개가 퍼펙트게임 최소 투구수다. 험버의 직구는 자로잰듯 스트라이크존의 구석에 꽂혔다. 또 예리하게 휘어지는 변화구는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았다. 야수들의 호수비도 한몫했다. 4회 시애틀 애클리의 잘 맞은 타구는 화이트삭스 리오스의 글러브에 빨려들어갔다. 몇 차례 안타로 이어질 수 있는 타구가 있었지만 화이트삭스 야수들의 집중력이 험버의 대기록 달성을 도왔다.
험버는 2006년 뉴욕메츠를 통해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이후 2008년 미네소타, 2010년 캔자스시티를 거쳐 지난해부터 화이트삭스 유니폼을 입었다. 지난해 거둔 9승9패가 한 시즌 올린 최고 성적이었다.
하지만 험버의 인생은 꼬였다. 200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로 뉴욕메츠 유니폼을 입었다. 바로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 2006년 2경기 중간 계투로 뛰었다. 결국 메츠는 2007시즌을 마치고 에이스 요한 산타나를 미네소타에서 데려오면서 험버를 포함 선수 4명을 미네소타로 넘겼다. 미네소타에서도 험버의 자리는 없었다. 지난해 화이트삭스로 오고부터 그의 인생은 달라졌다. 화이트삭스 투수코치 돈 쿠퍼가 험버의 숨은 자질을 인정했다. 험버는 처음으로 선발 투수로 한 시즌을 치렀다. 그때까지만 해도 메이저리그에서 완투승 한번 없었다. 이번 시즌에도 험버는 선발 로테이션의 한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평생 한 번 하기도 어려운 퍼펙트게임의 대기록을 수립했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