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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호의 본색이 드러나고 있다.
LG는 지난주 두 차례의 파격실험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 20일 두산과의 시범경기서 왼손투수 6명만으로 경기를 끝냈다. 주키치-신재웅-류택현-봉중근-이상열-최성훈이 마운드에 올라 10이닝을 1실점(비자책)으로 막았다. 이틀 뒤인 22일에는 선발 임정우에게 오로지 직구만 던지도록 주문해 5이닝을 소화하게 했다.
시범경기기에 가능했던 실험이지만, 초보감독의 시도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차명석 투수코치와 함께 한 작품. 하지만 김 감독의 강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김 감독의 공격 지향적인 성격을 엿볼 수 있었다. 투구에서도 공격적인 피칭을 하도록 주문한다. 야수 출신으로 투수 파트는 차 코치에게 일임하고 있지만, "안타 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은 김 감독이 유일하게 투수들에게 강조하는 대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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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감독은 지난해 시즌 중반 수석코치로 1군에 올라오기 전까지 1년 반 가량 2군 감독을 맡았다. 그래서 LG 선수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동안 LG는 제대로 된 신인선수 하나 제대로 못 키워내 '유망주의 무덤'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원인을 인식하고 있던 김 감독은 외부 FA(자유계약선수) 영입을 시도조차 않는 것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우리 선수들 만으로도 해볼 만 하다"는 생각이었다. 선수들에겐 강한 동기부여가 됐다. 여기에 내부 FA 3명까지 놓쳤지만, 2011신인 3명을 보상선수로 영입, 먼 미래를 내다봤다. 김 감독은 "내가 없어도 LG는 영원한 것 아닌가"라는 말로 이를 설명했다.
시범경기가 후반전을 맞이했지만, 김 감독은 새로운 얼굴들에게 아직까지 기회를 주고 있다. 단순히 테스트가 아닌, 1군 백업멤버로 쓰겠다는 생각이다.
27일 KIA전에서는 왼 무릎 수술 후 재활에 매달려 온 김재율(김남석에서 개명)에게 처음 선발출전 기회를 줬다. 김재율은 홈런포로 김 감독의 믿음에 화답했다. 김재율 외에도 강력한 주전포수 후보인 유강남과 백업유격수 정병곤 등이 지난해 김 감독의 손을 거친 '구리 멤버'들이다. 모두 2011신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2군에서 좋다는 보고가 올라오면, 적극적으로 1군으로 불러들인다. 시범경기를 통해 경찰청 제대 후 재활조에 포함돼 한번도 보지 못한 왼손투수 이승우의 깜짝 호투를 봤고, 올시즌 6라운드 전체 57순위로 지명한 우완 신동훈의 강속구도 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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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의 최고참은 94년 입단동기인 최동수와 류택현이다. 71년생인 둘은 김 감독과 겨우 두 살 차이. 또한 91년 쌍방울에서 데뷔한 김 감독은 93년 해태에 입단한 이대진과 입단연도도 불과 2년 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팀내 고참들과 함께 현역으로 뛴 시간이 길다.
선수들과 터울이 크지 않은 최연소 감독의 장점은 친화력이다. 김 감독은 선수들 곁에 다가가 가벼운 농담을 하며 긴장을 풀어주곤 한다. 수석코치 시절부터 그의 장기였다. 게다가 김 감독은 현역시절 때도 '보스형 선수'였다. 후배들을 응집시키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하지만 한없이 분위기를 풀어주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대원칙에 어긋난 선수들에겐 "그럼 그냥 쉬어라"는 식이다. 날이 선 정도가 아니다. 두려움을 줄 정도의 발언이다. 이러한 김 감독의 모습을 한번이라도 봤기에 선수들은 알아서 움직인다. '밉보이면 끝'이라는 인식이 알게 모르게 선수단에 퍼져있다.
김 감독은 27일 KIA에게 2대7로 패한 뒤 "시범경기가 다섯 경기 밖에 안 남았다는 것을 선수들이 잘 알았으면 한다"고 짧게 말했다. 분위기 메이커로 나설 땐 수많은 말을 하다가도 질책할 땐 한마디 이상 할 필요가 없다. 김 감독의 큰형님 야구, 올시즌 LG를 지켜보는 또 하나의 재미가 될 것 같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