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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표 야구, 시범경기 통해 본색 드러내다

이명노 기자

기사입력 2012-03-27 23:45 | 최종수정 2012-03-28 08:35



김기태호의 본색이 드러나고 있다.

시범경기가 절반이 지났다. 새로이 LG 사령탑에 오른 김기태 감독 역시 조금씩 자신의 야구를 펼쳐가고 있다. 초보 감독임에도 빠른 시간 내에 자기색이 나오는 모습이다. 김기태표 야구의 특징은 무엇일까.

투수들이여, 맞는 걸 두려워하지 마라.

LG는 지난주 두 차례의 파격실험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 20일 두산과의 시범경기서 왼손투수 6명만으로 경기를 끝냈다. 주키치-신재웅-류택현-봉중근-이상열-최성훈이 마운드에 올라 10이닝을 1실점(비자책)으로 막았다. 이틀 뒤인 22일에는 선발 임정우에게 오로지 직구만 던지도록 주문해 5이닝을 소화하게 했다.

시범경기기에 가능했던 실험이지만, 초보감독의 시도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차명석 투수코치와 함께 한 작품. 하지만 김 감독의 강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김 감독에게 파격실험을 한 이유에 대해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는 "어떤 투수든 안타를 맞지 않는 투수는 없다. 맞는 게 일인 직업이다. 하지만 우리 팀엔 자꾸 안타를 맞지 않으려고 도망가는 투수들이 있다"고 답했다. 김 감독은 "1점에 연연하는 야구는 하지 않겠다. 내 성격과도 맞지 않는다. 실점할 땐 실점하는 게 당연하다"고도 했다.

김 감독의 공격 지향적인 성격을 엿볼 수 있었다. 투구에서도 공격적인 피칭을 하도록 주문한다. 야수 출신으로 투수 파트는 차 코치에게 일임하고 있지만, "안타 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은 김 감독이 유일하게 투수들에게 강조하는 대원칙이다.


프로야구 KIA와 LG의 시범경기가 27일 광주 무등야구장에서 펼쳐졌다. 7회초 무사 김재율이 솔로포를 터뜨리고 김기태 감독의 손가락 축하를 받고 있다.
광주=전준엽 기자 noodle@sportschosun.com/2012.03.27/
LG에서도 화수분 야구가 시작된다?


김 감독은 지난해 시즌 중반 수석코치로 1군에 올라오기 전까지 1년 반 가량 2군 감독을 맡았다. 그래서 LG 선수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동안 LG는 제대로 된 신인선수 하나 제대로 못 키워내 '유망주의 무덤'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원인을 인식하고 있던 김 감독은 외부 FA(자유계약선수) 영입을 시도조차 않는 것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우리 선수들 만으로도 해볼 만 하다"는 생각이었다. 선수들에겐 강한 동기부여가 됐다. 여기에 내부 FA 3명까지 놓쳤지만, 2011신인 3명을 보상선수로 영입, 먼 미래를 내다봤다. 김 감독은 "내가 없어도 LG는 영원한 것 아닌가"라는 말로 이를 설명했다.

시범경기가 후반전을 맞이했지만, 김 감독은 새로운 얼굴들에게 아직까지 기회를 주고 있다. 단순히 테스트가 아닌, 1군 백업멤버로 쓰겠다는 생각이다.

27일 KIA전에서는 왼 무릎 수술 후 재활에 매달려 온 김재율(김남석에서 개명)에게 처음 선발출전 기회를 줬다. 김재율은 홈런포로 김 감독의 믿음에 화답했다. 김재율 외에도 강력한 주전포수 후보인 유강남과 백업유격수 정병곤 등이 지난해 김 감독의 손을 거친 '구리 멤버'들이다. 모두 2011신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2군에서 좋다는 보고가 올라오면, 적극적으로 1군으로 불러들인다. 시범경기를 통해 경찰청 제대 후 재활조에 포함돼 한번도 보지 못한 왼손투수 이승우의 깜짝 호투를 봤고, 올시즌 6라운드 전체 57순위로 지명한 우완 신동훈의 강속구도 접할 수 있었다.


LG 트윈스가 첫 국내 훈련에 들어갔다. 2달여간의 해외 전지훈련을 마치고 지난 10일 귀국한 LG는 17일부터 열리는 시범경기에 앞서 구리 LG구장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김기태 감독이 이병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구리=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2012.03.12.
큰형님 김기태, 친근함과 무게감을 모두 갖추다.

LG의 최고참은 94년 입단동기인 최동수와 류택현이다. 71년생인 둘은 김 감독과 겨우 두 살 차이. 또한 91년 쌍방울에서 데뷔한 김 감독은 93년 해태에 입단한 이대진과 입단연도도 불과 2년 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팀내 고참들과 함께 현역으로 뛴 시간이 길다.

선수들과 터울이 크지 않은 최연소 감독의 장점은 친화력이다. 김 감독은 선수들 곁에 다가가 가벼운 농담을 하며 긴장을 풀어주곤 한다. 수석코치 시절부터 그의 장기였다. 게다가 김 감독은 현역시절 때도 '보스형 선수'였다. 후배들을 응집시키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하지만 한없이 분위기를 풀어주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대원칙에 어긋난 선수들에겐 "그럼 그냥 쉬어라"는 식이다. 날이 선 정도가 아니다. 두려움을 줄 정도의 발언이다. 이러한 김 감독의 모습을 한번이라도 봤기에 선수들은 알아서 움직인다. '밉보이면 끝'이라는 인식이 알게 모르게 선수단에 퍼져있다.

김 감독은 27일 KIA에게 2대7로 패한 뒤 "시범경기가 다섯 경기 밖에 안 남았다는 것을 선수들이 잘 알았으면 한다"고 짧게 말했다. 분위기 메이커로 나설 땐 수많은 말을 하다가도 질책할 땐 한마디 이상 할 필요가 없다. 김 감독의 큰형님 야구, 올시즌 LG를 지켜보는 또 하나의 재미가 될 것 같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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