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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선수는 도대체 누구죠?"
1군 데뷔는 2009년이었다. 당시 김재박 감독은 순위싸움에서 밀려난 뒤 젊은 유망주들에게 계속 등판 기회를 줬다. 이승우도 5경기에 나섰다. 결과는 처참했다. 승리없이 3패만을 거뒀고 방어율은 무려 8.31. 13이닝을 던지면서 4사구 16개를 내줄 정도로 제구가 불안했다.
경찰청에 입대한 뒤 마음껏 공을 던졌지만, 또다시 팔꿈치에 문제가 생겼다. 결국 지난해 4월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 시즌 막판이었던 9월 복귀해 5경기에서 3⅓이닝을 던지며 2홀드 방어율 0을 기록했다. 전역 후 LG에 합류한 뒤 통증이 도졌다. 이승우는 "다시 공을 던지던 9월, 몸이 너무 좋다 보니 오버페이스한 것 같다"며 "그동안 부상은 정말 다 내 잘못같다. 몸관리를 잘 못한 게 후회된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승우는 "1군에 올라갔을 땐 시범경기니까 중간에서 조금 던지겠거니 했다. 그런데 며칠 뒤엔 아예 선발로 나가라고 하셨다"며 "그 말 듣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던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이승우는 처음 만난 삼성 강타선을 상대로 씩씩하게 공을 던졌다. 3회초 2사 후 9번타자 김상수에게 첫 안타를 내줄 때까지 퍼펙트한 피칭이었다. 하지만 다음 타자 배영섭에게 스트레이트 볼넷. 모두가 '역시나' 하는 순간, 이승우는 곧바로 김현곤을 3구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이닝을 마쳤다.
이승우는 당시 상황에 대해 "계속 와인드업 상태로 던지다 주자가 나간 뒤 세트포지션으로 던지면서 밸런스가 흔들렸던 것 같다"며 "공을 던질 때마다 내 밸런스, 내 리듬대로 던지려고 애썼다"고 설명했다.
이날 이승우의 직구 최고구속은 137㎞에 머물렀지만, 오히려 변화구와 얼마 차이 나지 않는 느린 직구가 먹혀들었다. 대부분의 직구가 투심패스트볼이나 싱커처럼 볼끝의 변화가 심했다. 정상적으로 오다 떨어지는 느린 직구가 연신 삼성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어냈다.
모든 투수들이 갖는 강속구에 대한 꿈, 이승우 역시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강속구보다는 자신의 장점을 살리는 피칭을 할 것이라고. 그는 "나도 빠른 공을 던지고 싶다. 고등학교 때까진 볼이 빨랐는데 프로와서 수술받고 하면서 느려진 것 같다"며 "이제 실전 2경기를 했을 뿐이다. 구속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 이승우의 목표는 확실해졌다. "무조건 1군에 남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부유하지 않은 가정환경 탓에 고생하신 어머님을 꼭 호강시켜드리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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