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르빗슈 유는 박찬호의 대기록에 잠재적인 도전자가 될 수 있을까.
왕첸밍, 한때 박찬호를 위협했던 기세
한화에 입단한 박찬호는 미국에서 동양인투수 통산 최다인 124승을 기록했다.
2008년까지 메이저리그 4시즌만에 54승을 따냈으니 좋은 기세였다. 19승을 기록하던 시점엔 시속 155㎞를 넘나드는 포심패스트볼을 던졌고, 톱 레벨의 하드 싱커를 주무기로 사용해 땅볼 유도 능력이 탁월했다. 좋았던 시절의 하드 싱커는 90마일(145㎞) 언저리를 기록하기도 했다.
2007년 2월에는 대만 신문 연합보가 '일어선 왕첸밍 대 늙은 박찬호'란 비유를 했다. 당시 왕첸밍은 만 27세. 왕첸밍에 대한 대만의 자부심, 게다가 최고 투수로 롱런할 것이란 믿음이 엿보이는 문구였다. 왕첸밍의 주된 동양인 라이벌은 박찬호가 아니라 마쓰자카 다이스케라고 제시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왕첸밍의 통산 승수는 59승. 최근 2년간 5승에 그쳤다. 발목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 등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아지면서 메이저리그가 중시하는 '내구성(durability)'이 확연히 떨어졌다. 빅리그에서 100승을 넘기 위해선 가진 재능 못지 않게 부상 회피도 동반돼야 한다. 불과 몇년만에, 왕첸밍은 '과연 100승은 할 수 있을까'란 시선을 받는 상황이 됐다.
마쓰자카 사례와 다르빗슈의 가능성
박찬호는 2001년까지 다저스에서만 통산 80승을 쌓은 뒤 2002년 텍사스 시절부터 허리 통증과 햄스트링 부상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만 29세부터 조금씩 내리막길을 탄 셈이다. 부상이 찾아오기 전에 비교적 많은 승수를 적립한 게 결국 100승 돌파에 큰 밑바탕이 됐다.
2007년에는 일본프로야구의 자존심인 마쓰자카 다이스케의 보스턴 입단이 성사됐다. 당시 만 27세 투수였고 전성기였다. 마쓰자카는 첫해에 15승12패 방어율 4.40으로 시동을 걸더니 2008년엔 18승3패, 방어율 2.90으로 존재감을 확실히 내보였다. 첫 두해 동안 33승으로 치고 나갔으니, 페이스가 대단했다.
하지만 마쓰자카 역시 잦은 부상으로 급격하게 성적이 나빠졌다. 2009년부터는 3시즌 합계 16승에 그쳤다. 어깨, 팔꿈치 등에 지속적으로 부상이 생겼다. 지난해 6월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고 재활중이다.
결국 왕첸밍과 마쓰자카의 사례에서 보여지듯, 일단 100승을 돌파하려면 부상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르빗슈는 이란계 일본인이다. 1m96의 큰 키로 체격조건이 매우 좋다. 주무기는 역시 155㎞짜리 포심패스트볼이다. 직구 평균 구속이 마쓰자카보다 3~4㎞ 빠르다. 두번째 구질은 슬라이더다. 릴리스포인트가 비교적 낮은 것도 강점이다. 마쓰자카에 비하면 부상 위험이 적은 투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장 눈에 띄는 변수는 있다. 다르빗슈는 지난 5년간 일본에서 한시즌당 25차례 정도 선발 등판했다. 일본프로야구는 6선발 체제로 운영되는 곳이 많고 휴식일을 5~6일로 잡는 경우도 대다수다. 관리를 받은 셈이다.
박찬호는 대학 재학중에 미국으로 건너갔고 메이저리그 스케줄과 스타일을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익혔다. 반면 다르빗슈는 익숙한 일본 리그를 떠나 다른 여건에 놓이게 됐다. 4일만 쉬고 등판하는 일이 잦아질 게 분명하다. 마쓰자카의 경우 미국에서 2007년에 32차례, 2008년에 29차례 선발 등판했다. 이전 4시즌 동안 일본에선 평균 25경기에 선발로 나섰다.
현 기대치를 감안하면, 다르빗슈는 앞으로 6시즌 동안 80승 정도는 거둬야 박찬호의 124승에 도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좋은 공을 갖고 있는 투수다. 결국엔 세대를 건너 뛴 다르빗슈의 빅리그 통산 승수 쌓기도 리그 적응과 부상 여부에 좌우될 것이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